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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된 언어

정신분열의 전초

by 박세환

정치 사회를 논하는 장에서 돌아다니다 보면 종종 논리력이 많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접할 때가 있다. 이를테면, A는 나쁘다(혹은 좋다.)라는 논조로 글을 쓰기 위해 나름의 논거들을 제시하는데, 그 제시한 사례들이 전혀 적합하지 않으며, 논리 전개의 과정에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그런 경우들 말이다. 이런 사람들과 언쟁이 붙으면 상당히 성가시다. 순환논법을 쓰며 이미 논파된 논리를 끝도 없이 들고 나오거나, 혹은 사소한 말꼬투리를 잡으며 끝없이 늘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순히 "성가시다."정도가 아니라 무서워지는 상대가 있다. 똑똑하고 박식하며 논리 정연한 상대? ㄴㄴ. 내가 말하려는 건 소위 "해체된 언어"라는 것을 구사하는 상대.


아무리 상대의 지식이 빈약하고 그 논리 전개가 어색하기 짝이 없다고 해도, 자신이 무슨 주장을 펴려고 하는 것인지를 스스로 인지하는 상태라면 최소한 그것은 병은 아니다. 그런데 더러는 태초에 자신이 무엇을 주장하고자 했는지 자체를 아예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말을 이어가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병'을 의심해 볼 만한 상황이다.



"나는 페미니즘을 지지한다. 왜냐하면 여자들은 그동안 많은 핍박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마치 흑인들이 백인들에게 핍박을 받았던 것처럼. 오랫동안 흑인들은 백인들 사이에서 노예로 거래되어 왔다. 그리고 이 노예들은 주로 아프리카 대륙으로부터 아메리카 대륙으로 실려가곤 했다. 이 흑인들을 아메리카의 백인들이 구매한다.

아메리카 대륙에는 백인들이 도착하기 전에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원주민들은 인종적으로 동북아시아 황인종과 유사하다고 한다. 황인종들이 빙하기 때 베링해협을 통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빙하기는 많은 생물의 멸종을 가져왔지만, 또 새로운 생물종이 진화하고 발전해갔던 시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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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익살맞게 표현한 측면도 있지만, 대충 저런 것이 "해체된 언어"의 증상이다.

페미니즘의 정당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온 가지 바보 같은 논거들을 동원하려 한다면, 이것은 분명 '정상'의 범주에 속한다. 최소한 자신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를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위에 제시한 예시는 다르다. 위의 예에서 발화자는, 말이 끝나는 시점에서 '태초에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러한 '해체된 언어'는 정신분열증의 전초 증상이기도 하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하나의 굵직한 주제, 테마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을 수가 없다고 한다. 위의 발화를 예로 들자면, 페미니즘 이야기를 하다가 흑인 노예 이야기가 이어지게 되고, 흑인 이야기, 아프리카 이야기가 나오자 발화자는 더 이상 '페미니즘'이라는 초기 주제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을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환자들의 호소에 의하면, 머릿속에서 끝없이 새로운 심상들이 떠 올라 기존의 주제에 대한 집중을 흩뜨려놓는다고 한다.


"머릿속에 다른 존재가 들어있어 제게 끝없이 다른 생각을 강요하는 것만 같아요."



온라인 공간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사람들의 흔적을 심심찮게 접하곤 하는데, 만약 논쟁이 붙는다면 대화가 원활하게 통하지 않음은 둘째 치고서라도 무척 섬찟한 느낌을 받곤 한다.


말이라는 것은 형태가 없기에, 상황에 따라서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질 수도 있겠으나, 명확히 '글'이라는 시각적 형태로 의사를 표현하는데도, 자신이 작성하는 글이 이상하게 흐트러지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한다면 그건 촘 위험한 레벨 아닐까?


+특 : 쓸데없이 장황한 것치곤 기승전결의 맥락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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