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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Jan 04. 2023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교황성하의 안식을 기원하며

어느 종교 경전에 "붉은색 옷을 입으라."라는 조항이 나와있다고 하자. 기독교나 불교와 같은 종교에선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붉은 옷을 입으라 했지만 맥락을 따져볼 때 사실 그건 붉은색이 아니라던가, 붉은색 그 자체가 아닌 그 붉은색 속에 담긴 마음이 중요한 거라던가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이슬람은 다르다. 경전에 "붉은색 옷을 입으라."라고 나와 있거들랑, 혓바닥 긴 헛소리들 집어치우고 그저 닥치고 붉은색 옷만 입어야 한다. 그냥 빨간 옷 입고 죽는 거다. 원색적 해석과 기계적 수행 원툴의 종교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리적 깔끔함은 이슬람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했다.


교육 수준이 높지 않은 대중들은 일반적으로 선과 악의 구분이 깔끔 단순한 가치체계를 선호하는 경향성이 있다. 이 부분에 있어 이슬람은 대성공이었고, 이슬람의 빠른 확장은 이 부분에 기인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교리적 깔끔함은 한 끗만 돌려보면 예외와 이견을 용납할 수 없는 폐쇄성과 비타협성이기도 하며, 끝없이 변화하는 세속질서와 종교의 충돌이 이슬람에서 유독 심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반면 전술한 바와 같이, 유일신교로써 기독교는 다른 형제(?) 종교들이라 할 수 있는 유대교 내지 이슬람교보다 교리적으로 '모호한' 부분이 많은 편이다. 


신약에 기록된 예수의 행보를 이슬람의 무함마드와 비교해 보면 확실히 예수의 행보에는 그 본의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다.(ex: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들이 다양한 교리적 해석들을 불러일으켰고 이러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 덕분에 기독교는 격변하는 세속질서와 그때그때 적절한 타협을 해 나가며 지금까지 순항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걸 보면 정말 예수 그리스도는 구세주 그 자체.



하지만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는 법. 기독교의 다양한 해석 가능성은 분열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이슬람교에도 많은 세부종파들이 존재한다고는 하지만 이는 정치적 요인에 의한 분열에 가깝고 교리상의 이견은 거의 없는데 반해 기독교의 분파들은 철저하게 교리상의 이견에 기인한다. 




지난 이천 년 동안 가톨릭 교회 최고의 테마는 분열을 막는 것이었다. 분열을 막기 위해선, 다양한 생각들이 충돌할 때마다 이를 조율하여 하나의 합의를 도출해 줄 통제기구가 필요했고 이러한 '니즈' 속에서 역대 교황들은 성직자이면서 또 한편으론 능수능란한 정치꾼일 수밖에 없었다.


(이슬람교의 교황이라 할 수 있는 게 칼리프인데 이슬람의 칼리프직은 종종 소멸되며 가톨릭의 교황만큼 지속성을 가지지 못했다. 이슬람은 교리가 워낙에 깔끔하다 보니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없어서 '칼리프'와 같은 최고 종교권력자의 조율과 이에 의한 합의가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다.)


가면 갈수록 급변하는 세속질서는 교황들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원전의 근본정신과 급변하는 세상, 이 사맛디 아니한 두 가지 니즈의 충돌 속에서 운전대를 조금이라도 잘못 틀었다간 바로 분열/붕괴로 이어지게 되리라. 이러한 세파의 격랑 속에서 유독 고통받았던 이 중 하나가 바로 교황 베네딕토 16세였다.


이제 세상은 가톨릭 교회가 더 이상 '하나'가 아니라는 걸 안다. 한 마음 한 목소리로 뭉쳐있는 걸로 보였던 저 근엄한 추기경단은 진보좌파와 보수우파로 분열된 지 오래이다. 이들은 서로 반목하며 음해를 일삼는데 이는 마치 세속의 때 묻은 정치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사제들의 일탈과 부패 스캔들. 


이러한 속에서 '하나로 통일된 교회'를 끝까지 붙들고 있으려 고군분투 했던 베네닉토 16세였지만, 노화와 이로 인한 체력적 한계는 그로 하여금 더 이상 이 어려운 책무를 감당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대로 조금만 더 지나면 제갈량처럼 피토하면서 과로로 쓰러질 판이었기에, 그는 교황직을 사임하고 내려오길 원했다.


그리고 그저께 새벽, 결국 그는 주님의 품에서 그토록 그리던 안식을 찾게 된 것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여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많은 대중들에겐 

복잡한 내적 정치적 고뇌들이야 아몰랑이고 그저 "YOU MUST KNOW THE POWER OF THE DARK SIDE"를 외치는 스타워즈의 팰퍼틴 황제 그 자체였지. 

베네딕토 16세 특유의 진한 다크서클 때문이었는데 생각해보면 베네딕토 16세는 외모지상주의에 의한 최대 & 최악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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