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세환 Jan 03. 2023

아바타2 후기 - 우리 '민주진보'가 달라졌어요^^

가짜 다양성에서 진짜 다양성으로

1. 약간 음모론 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미쿸 정권의 색깔과 문화계 블록버스터 간엔 약간의 상관관계가 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조지고 부시는 그분'이 미쿸에서 대통 잡수실 적에 가장 끗발 날렸던 영화는 지금까지도 화자 되는 대작 '반지의 제왕'이었다. 당시로선 상상할 수 없었던 엄청난 CG효과로 어마어마한 웅장함을 연출해 냈었지. 하지만 '사악한 검은 동방'에 대한 '위대한 백인 서양'의 침공을 미화한 영화라며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더랬다.(아라곤 : '서쪽에서 온 인간들'이여! 적을 향해 돌겨어어어어억!!! - 영화의 가장 클라이맥스 장면中)



그러다 미쿸의 민주진보진영이라 할 수 있는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더랬다.


오바마가 대통을 잡은 지 얼마 안 되어 '아바타1'이 개봉했다. 그리고 다들 알겠지만 아바타1은 전형적인 미쿸 민주진보 리버럴의 서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사악한 제국주의 백인 절대악의 침공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려 분투하는 선량한 제3세계 원주민들의 저항과 투쟁 말이다. 


이 즘에서 지겨울 정도로 반복하는 말이지만, 민주진보 리버럴 놈들은 항상 말로만 상대주의와 다양성을 떠들어 왔다. 상대주의와 다양성을 말 하지만 그들의 머릿속엔 언제나 천편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선(여성, 유색인종, 이슬람, 개인, etc..)과 악(남성, 백인, 서구, 국가, etc.)의 이분법이 대악마의 성체마냥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런 그들의 내로남불이 대안우파의 분노를 만들어냈다는 이야기는 힐러리클린턴 운운하며 누차 반복해 온 이야기.


그들은 언제나 정답을 정해놓고 상대주의와 다양성을 말한다.


이후 문화산업과 완전히 척 진 대안우파 대통령이 잠깐 등장했다가 민주진보진영이라는 바이든 정부가 다시 들어서게 되었더랬다. 그리고 얼마 전에 아바타2가 개봉했지. 1이 나오고 무려 13년 만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간 13년 동안 미쿸 민주진보 리버럴 진영의 의식 변화'를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다.





2. 구술한 바데로, 힐러리 클린턴으로 상징되는 주류 민주진보 리버럴들은 언제나 말로만 상대주의와 다양성을 떠들어왔고, 그러한 그들의 사고방식은 아바타1의 서사 속에 너무나 잘 녹아 있었더랬다. 그런데 2는 좀 다르다. 물론 서사의 큰 줄기 자체는 지난 편과 별반 다를 바 없지만(사악한 백인 제국주의 침략자 물리치자!) 그 디테일을 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상당히 많아졌는데,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악당 빌런인 '쿼리치 대령'이다. 


작중에서 주인공의 아내(네이티리)와 쿼리치 대령은 서로의 자식들을 인질로 잡고 대립하며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인질을 죽이겠다고 상호 협박을 일삼는데, 결국 마음이 먼저 약해지는 쪽은 놀랍게도 쿼리치 대령이다. 인질을 정말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은 비인간적인 악다구니를 퀴리치대령보다 네이티리쪽에서 더 강렬하게 노출했거든. '이대로 가다간 저 미친 X 진짜로 사람 잡겠구나!' 


이 장면에서 네이티리가 특별히 더 사악했던 게, 비록 쿼리치의 자식이라곤 하지만 그 자식을 어려서부터 실제로 키우고 돌봐왔건 건 네이티리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쿼리치가 아닌 자신의 자식이라 해도 무방할 존재를 사로잡아 죽이겠다고 염병법석을 떨었다고. 반면 쿼리치가 사로잡은 주인공의 자식은 정말 쌩판 남인지라 쿼리치 입장에선 그 어떤 연민도 필요치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네이티리 쪽이 더 '악랄'했다.





3. 이 장면에서 집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은 또 있는데, 바로 '악당' 쿼리치 대령의 대사이다. 결국 마음이 약해지기 전, 한창 센 척 당당한 척하던 쿼리치 대령은 네이티리에게 대략 다음과 같은 대사를 날린다.


"(내 아들) 죽여도 상관없어. 어차피.. 이제 더 이상 같은 종족도 아닌데 뭘."


..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전편에서 인간의 몸으로 주인공과 맞서 싸우던 쿼리치 대령은 결국 패배해 죽임을 당했다가 후편에선 '나비족 아바타의 몸'을 빌어 나비족으로 부활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아직 인간일 때 잉태되었던 그의 아들은 당연히 인간종족의 몸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제 둘은 더 이상 같은 종족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뿐만이 아니다.


쿼리치 대령은 얼떨결에 '나비족'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인간진영에 충성을 바치고 있다. 반면 인간의 몸임에도 어려서부터 나비족 틈에서 살아왔던 그의 아들은 나비진영에 충성을 바친다. 


이렇게 이 둘은 


1. 물질적인 종족성과 정신적인 종족성이 반대이면서 

2. 서로 표면적인 종족 정체성이 엇갈리고 

3. 심지어 정신적인 종족 정체성마저 엇갈리는


서로 완벽하게 어긋나면서도 묘하게 일치되는 거울상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세상에서 선과 악의 진영이 (힐러리 클린턴들의 주장처럼) 천변일률적으로 나뉘지 않음을, 실상은 훨씬 복잡하고 디테일함을 보여준다. 



힐러리 클린턴들은 언제나 항상 세상이 선한 여성, 유색인종, 이슬람 등과 악한 남성, 백인, 서구 기독교세계 등으로 나뉜다고 말 하지만, 실제 세상을 들여다보면 실상은 이보다 훨씬 복잡함을 알 수 있다. 독실한 기독교 백인 리버럴과 MAGA를 외치는 흑인 대안우파, 공화당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동성애자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다양성의 세상이며, 쿼리치 부자의 비극적인 엇갈림은 이를 은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하는 세상은 말로만 다양성을 떠드는 힐러리 클린턴들의 인식 세계보다 훨씬 다양하며, 미쿸의 민주진보 리버럴들도 이를 '조금씩은' 인지해 가고 있는 것이다.




4. 자신을 추적하는 인간들을 피하다 난민이 되어 바다종족의 부락까지 도망쳐 들어간 주인공 가족의 삶도 흥미롭다. 


첫 만남부터 눈칫밥을 주던 바다종족에게 가족들이 끝없이 부당한 처우를 당하는 걸 지켜보면서도 가장으로서 당당하게 한 마디 항의하지도 못하고 굽신거리며 바다종족의 비위를 맞추려 노력하는 주인공의 처량한 모습은 오늘날 유럽 난민들의 입장을 민주진보 리버럴진영의 정형화된 시각으로 보여준다 하겠다. 그런데 여기서도 특기할 부분은 있다. 


주인공의 난민생활 장면에서, '텃세를 부리는 사악한 유럽 백인들'의 위계로 등치되는 쪽은 바다종족인데 이들 역시 엄연히 '나비족'이다. 나비족이라 해서 언제나 항상 선한 피해자의 모습만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걸 바다종족이 보여주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미우나 고우나 마지못해 주인공 가족을 난민으로 받아들인 탓에 '바다종족'역시 인간들로부터 무수히 많은 핍박을 당하게 되는데, 이는 난민을 수용한 이들은 반드시 소정의 피해를 보게 된다는 '난민 반대자들'의 상투적인 서사를 영화가 일정 부분 인정해 준 것으로 볼 수 있으리라.  


사실 위에 언급한 부분들은 생각해 볼 것도 없이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지만, 중세 신정주의 시절만큼이나 지독한 선과 악의 구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들' 입장에선 충분히 괄목할 만한 변화라 하겠다. 


아바타 시리즈는 앞으로도 계속된다는데, 차기작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다.


+추가로 영화 도처에서 가족주의와 '남성 가장의 무거운 어깨'를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 역시 전통적인 민주진보 리버럴 서사와 이격 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대안우파 메타인지 성공&실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