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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Jan 21. 2023

민주진보와 우익우파. 다양성과 폐쇄성

말로만 다양성

1. 

'사이비'라는 만화영화가 있다. '돼지의 왕'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의 명작이다. 


댐 공사로 인해 수몰 직전에 놓인 피폐한 마을로 '한탕해 잡수려는' 사이비종교 패거리 하나가 기어들어오면서 일어나는 해프닝들이 작품의 주 내용.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사이비패거리들의 실체를 알고서 마을 주민들에게 경고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주인공의 말을 무시한다. 주민들에게 중요했던 건 애초에 '진실'이 아니었으니까. 수몰 직전의 꿈도 희망도 없는 피폐한 삶들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 무언가 위~대한 길을 가고 있다고 느끼게 만들어 주는,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희열 뽕, 서로가 의지하고 있다는 연대감. 그저 그런 게 좋았던 거니까.


결국 주인공에 의해 사이비 패거리의 실체가 밝혀지고 이들이 물러나자 주민들은 '진실'을 가져온 주인공을 더 원망한다. 자신들의 연대감, 꿈, 희망, 희열, 뽕을 빼앗아갔으니까. 심지어 주인공의 딸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다.



2.

4년 전 세상 밖으로 나와 '민주진보'라는 사람들을 만나보며 느낀 부분이..


'민주진보'들은 원래 기독교계열 종교의 독실한 신자였던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어쩌다 믿는 신이 하느님에서 민주진보 신으로 바뀐 거지. 때문에 말로는 세속 자유 다양성을 논하지만 정서적으로는 여전히 종교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어떤 아름다운 꽃밭이 있고, 우리가 손에 손을 잡고서 그 아름다운 꽃밭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 연대감. 소속감. 일체감. 삶 속에서 그런 게 너무나 고팠던 사람들. 


3.

우익우파 쪽 사람들을 만나보면 나타나는 특징도 재미있는 게, 이들은 만날 때마다 항상 다른 '우익우파'에 대한 욕을 한다. 우익우파 진영 전체건, 국민의힘이건, 거기에 소속된 다른 누군가이건.. 때문에 우익우파 사람과 만날 약속이 생가면 항상 "이번에도 우익우파 욕을 실컷 들을 수 있게 되겠군."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이 기대(?)는 한 번도 빗나가지 않는다.


혹자는 상대방이 필자의 정치성향을 고려해서 말을 맞추어주려고 그러는 거 아니겠느냐 할 수도 있을 텐데, 필자도 바깥으로 나온 지 어언 4년이 되는 사람이고 또 정치적 목적으로만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기 때문에 마지못해 말을 맞추어주는 상황과 심중에 박힌 깊은 이야기를 꺼내는 상황이 어떻게 다른지 정도는 구분할 줄 안다. 이를테면 자신이 털어놓고 싶은 우익우파세계의 허물을 진영이 다른 필자를 통해서라도 소문내고파 하는 이도 있었다.



4.

반면 민주진보 사람들은 옳고 그름을 꼬치꼬치 따지는 걸, 진영 내부에서 어떤 문제를 제기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누가 어떤 이견을 제기함으로써 내부균열의 가능성이 증가하는 그 자체를 원하지 않는다. 


이들은 밖에 나가 외부인들을 만날 때에도 절대 자신들의 소중한 '종교'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지 않으며, 설령 외부인이라 할지라도(ex : 우익우파) 자신들 앞에서 자신의 소중한 민주진보교를 모독하도록 용인하지도 않는다. 그런 걸 즐기는 이는 오직 언제나 '이단자' 박세환 단 한 명뿐이다.


5.

좌건 우건 통치그룹의 수뇌부들은 내부분열과 불만 양상이 외부에 표출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저 내부단속에 있어 민주진보의 수뇌부는 성공하고 우익우파의 수뇌부는 실패하고 있을 뿐이다. 윤짜장도 내부단속을 하고 싶어 하는데 우익우파 '애새끼들'이 당최 말을 들어먹질 않는 거라고. 왜? 지지자들의 특성 때문에.


민주진보의 사람들은, 애써 최상위 수뇌부가 아니라 하더라도 일반 지지자 민중 층위에서 조차 내부불만 표출로 인한 균열이 외적으로 표출되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 때문에 '그런 문제'를 일으키려는 이들은 수뇌부가 움직이기도 전에 일반 지지자 층위에서 '알아서' 제압되어 버린다. 마치 작품 '사이비' 속 마을 주민들이 그러했듯.


민주진보진영에서는 반론과 이견을 자연스러운 미소로 절묘하게 숨기고 감추고 묻어버리는 사회적 스킬이 굉장히 발달되어 있다. 반면 우익우파진영의 투박한 이들은 반론에 대해 종종 거칠게 반응하곤 하는데("마! 니가 감히 지금 바악정이 가카를 모독하는 기가! 계급장 띠고 나가서 함 해 보까!") 바로 '그 투박함'으로 인해 반론의 존재가 외부에 노출되어 버리는 결과를 피할 수 없게 된다.


6.

이게 바로


"왜 대안우파 같은 것들이랑 접촉하려 그러냐"라는 핀잔을 들으면서도 필자가 계속해서 우익우파 쪽 사람들과 접하려 하는 이유이다. 애초에 옳고 그름을 꼬치꼬치 따지면서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분열과 다툼의 흙먼지를 애써 감내하려 하지 않는 이들과는 어떤 '새로움'을 창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종교는 바뀔 수 없다. 그러니까 종교이다. 때문에 종교에는 '새로움'이 있을 수가 없다.  


그리고 민주진보는 언제나 반 세기 전 68 혁명 때나 입고 다니건 낡은 외투 따위에 '최신 패션'이라는 딱지를 가져다 붙이길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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