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팅센세는 어째서 학교로 돌아오지 못하나?

교육문제는 경제 사회문제이다.

by 박세환

“한국 교육 참 문제 많다.”


한국 사람이라면 살아온 인생 길이만큼 지겹게 들어왔을 말이 아닐까 싶다.


새삼스러울 수도 있지만 함 진지하게 따져보자. 대체 무엇이 문제라는 것일까? 으레 나왔던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성적, 숫자로써의 결과치에만 집착하는, 지나치게 경쟁중심이라 바람직한 인성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매번 지겹게 들어온 이야기들.


그럼 그 문제를 누가 일으켰을까? 몇몇, 일부 타락한 교사 교육자들이 “으하하하, 난 미래세계를 타락시켜버리겠어!”하면서 아이들을 뒤틀리고 사악하게 키우기로 작당이라도 한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만일 아이들에게 교육을 통해 어떤 결과를 얻고 싶은지 물어본다면 어떤 대답을 듣게 될까? 아마 그 대답은 다음과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성같은 건 뭔지 사실 잘 모르겠구요. 그냥 옆 친구야 어찌되건 나만 좋은 성적 받아서 나만 좋은 대학가고 대기업 취직해서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되지 싶어요.”

(실제 본인이 뭔가 이 비스므리 하게 답했던 것 같다.)


이렇게 대답하는 학생이 있다면 당신은 그 아이를 특별히 못돼먹었다고 비난할 것인가? 그럼 당신에게 되물어보자. 이젠 더 이상 학생이 아닌 당신은, 저 아이와 특별히 다른 목표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다.


학생들의 뒤틀린 목표의식은 몇몇 뒤틀리고 타락한 교사 내지 학부모에 의해 주입된 것이 아니다. 적자생존, 무한경쟁 사회가 만들어낸 관념적 참극인 거지.


이 관념 하에 학생과 학부모들은 바람직한 인성교육이나 창의력 따위 보단 그냥 대기업을 가기 위한, 생존에 더 유리한 오지선다 정답 족집게 교육에 목을 맬 수밖엔 없다. 소비자(?)의 니즈부터가 그 모냥이니 일부 의식있는 교육자들이 이를 바꾸어보려 매달려봐야 효과가 있을 턱이 없다. 체제가 원하지 않는 키팅선생으로 끝날 수밖에.


카르페디엠.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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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항상 주장한다. 교육문제는 결코 교육계 내에서는 해결될 수 없다고. 시장자유만능주의가 만들어낸 무수한 모순은 노동계층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만들어버렸고 지옥같은 경쟁은 일상이 되었다. 우리 교육계의 모습은, 그렇게 이미 망가진 사회의 단면이 고스란히 투영된 것뿐이지 결코 그 내부의 일부 타락한 교육자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비극이 아닌 것이다.


결국 교육은 기껏해야 째드래곤 태원이에게 더 이뻐보일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줄세우기 과정으로 전환된다. 정시니 수시니 떠들어봐야 결국 줄 세우기 방식을 변경하는 것뿐이니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양성을 반영한다는 각종 미시적 전형들은 안 그래도 복잡해 미치겠는 입시전형을 한 번 더 꼬아서 학생과 학부모를 더욱 피곤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 속에서 그 복잡한 전형들을 일일이 꿰고 다니는 컨설턴트들이 돈을 벌게 되고, 또한 그 비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부유층 자제들은 경쟁에서 더 유리해진다.)



결국 전체 사회구조 자체가 바뀌어야만 한다.


늘 하는 말이지만, 패배자도 생존 가능하도록 복지 배려가 이루어져야만 한다. 사회안전망은 더욱 튼튼해져야만 한다. 생존 이상의 가치를 돌아볼 만큼의 삶의 여유가 밑바닥 서민 계층에게도 주어져야만 한다.


그렇게 사회가 만인 대만인 간 투쟁의 아수라장으로부터 벗어날수록, 학생과 학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니즈 역시도 변해갈 것이다. 오지선다의 정답 족집게보단 학생 자신을 한 번 더 돌아볼 기회를 바랄 것이다. 자기가 일방적으로 다 가져가기보단 아픈 옆 친구에게 하나 즘은 나누어 주기를 바라게 될 수도 있다.


그때가 되면, 그저 선량한 교육자들은 새롭게 변한 학생들의 니즈를 맞추어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 전체의 변화가 선행되지 못한 교육계 내에서의 개혁은 필연적으로 줄세우기 방식의 변화 이상의 의미를 내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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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캡틴 마이 캡틴

언젠가는 키팅선생이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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