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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Feb 11. 2023

민중의 싸움 vs 직업적 투쟁꾼들의 싸움

싸움이 수단을 넘어 목적으로 바뀌면

'투쟁'은 싸움이고, 싸움 그 자체는 '나쁜 것'이다. 피할 수 없어 불가피하게 직면해야 하는 상황이 있지만 모든 싸움은 소정의 피흘림을 동반할 수밖에 없기에, 전투의 희열에 미쳐버린 코른의 신도들이 아니고서야, 싸움 그 자체를 목적으로 여기며 살아가지는 않는다.


때문에 처음엔 살기 위해 싸움을 시작했다 하더라도, 승리와 협상을 통해 여건이 나아지면 사람들은 하나둘씩 총칼을 내려놓게 되며, 사실 이게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때문에 진정성 있는 싸움이란, '총칼을 내려놓는 내일을 위해 오늘은 총칼을 드는 것'이어야 한다.




소위 급진적 내지 극단적으로 분류되 온 20세기발 어떤 정치적 사조들이 특히 최악이었던 건, '이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을 넘어 싸움 내지 투쟁 그 자체를 목적화해 버렸다는 점에 있다. "살기 위해 싸운다."가 아니라, "싸우려고 산다."가 되어버린 거지.


하지만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지속되는 싸움 속에서 지쳐갈 수밖에 없음을 알기에, 이들은 싸움과 투쟁을 목적화하며 이를 전문적으로 끝없이 수행해 나아갈 직업적 투사계급을 의도적으로 양성하게 되는데(ex : 시민운동가, 전문 시위꾼, etc.. 속칭 '전위 그룹')

이렇게 양성된 전문적인 직업투쟁가들은 싸움의 존재로 인해서만 살아갈 수 있는 용병과 같은 이들이기에, 의도적으로 끝없이 사회의 분열과 혼란을 유발하게 된다.


이런 '전문 투사계급'에 의해 일어나는 투쟁의 특징이 뭐냐면, 진정성 있는 일반적인 예와는 달리 투쟁을 통해 여건이 나아지면 나아질수록 투쟁의 강도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유지되거나 심지어 증가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투쟁을 통해 이권이 늘어나면 이 추가된 이권을 새로운 차후 투쟁을 위해 직업적으로 재 투자 해 버리기 때문이다.





아~무리 극단적인 민주진보라 해도, 68 혁명 이래 반세기동안 (그들이 그토록 우려먹어온..) 여성이나 흑인, 이슬람이나 LGBT 등의 인권은 향상되었지 절대 하락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투쟁 강도는? 대부분 유지되거나 오히려 강화되었다. 그리고 이는 '직업적 활동가'들이 주도하는 투쟁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의 페미니즘들이 하는 짓만 봐도..)


그리고 이러면 매번 그들의 '새로운' 요구질에 직면해야만 하는 일반 시민사회는 '그들'에게 점차 부정적으로 변해갈 수밖에 없다.


일전에 그들이 10을 요구했을 때 이를 허락했던 건, "요구를 들어주면 이제 좀 잠잠해지겠지."라는 사회적 기대가 있었기 때문인데 10을 허락해 주니까 이젠 20을 내놓으라며 달라드네? 싸움이 없는 평안한 사회를 만들려면 20은커녕 오히려 줬던 10도 다시 빼앗아와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나가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민주진보의 전문 투쟁꾼 '힐러리클린턴들'을 향한 반감이 증폭되는 이유일 것이다.



+일전에도 종종 언급했던 NL이나 나치, 사이비종교 광신도와 같이 극단적으로 소속되고 극단적으로 충성하는 그런 걸 좋아하는 이들은 역시나 필연적으로 끝없는 싸움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데, 그들이 원하는 소속감을 가장 극단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싸움터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극단적인 집단 소속 추구는 필연적으로 극단적인 싸움과 끝없는 분쟁으로 이어지곤 한다.  

그리고 '이들'은 대게 전문적인 직업적 시위꾼으로 성장하게 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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