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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Feb 17. 2023

반미주의의 논리적 근거가 뭔가?

서구 근대의 확산을 오직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게 옳냐?

역사적 유물론. 마르크스가 도입한 개념으로 인류사회가 일정한 도식을 거치며 발전해 간다는 내용이다. 여기 내용에 의하면, 전근대 봉건적 질서는 근대적 자본주의로, 또 그 근대적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를 거쳐 최종 '공산주의'라는 형태로 나아가는데 이것이 인류의 엔딩이며 역사의 완성즘 되시겠다.


이 이론에 따라 인류의 발전단계를 몇 등급으로 나누어보자.


1등급 : 사회/공산주의(엄밀히 말하면 마르크스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구분되는 개념으로 제시한다만 그 구체적 내용은 학자마다 조금씩 다르니까 일단 한 묶음으로 퉁침)

2등급 : 근대 자본주의  

3등급 : 전근대 봉건질서 이하 잡


이 도식 하에서, 서구 제국주의 열강에 의한 '근대'의 제3세계 침투는 적어도 3등급 세계를 2등급 세계까지 (폭압적으로) 격상시켜 놓는 효과를 가진다. 서구식 근대의 침탈로 인해 피침탈국가에서 왕실 내지 종교의 지배를 받던 전근대 단계 사회가 해체되고 서구 제국주의의 힘에 의해 2등급 근대 자본주의상태로의 이행이 강압적으로나마 이루어진다고. 서구 근대적 이성주의 합리주의 평등주의 인본주의 등등의 가치들이 껍데기로나마 이식된다.


위에 언급한 '역사적 유물론' 하에서 이는 오직 피해라고만 말할 수 없고, 초창기 사회주의자들 역시 이런 측면을 긍정적으로 인정했었다. 서구 제국주의에 의한 반 강제적 근대화를 통해 피침탈국의 신분 계급제가 무너지고 왕실, 종교의 권위로부터 사람들이 이탈해 가는 현상 자체는 나쁘게 볼 게 아니라고 말이지.





"우리 여성이 수탈자 남성에게 받은 것이라곤 오직 피해뿐!"


반미 반서방주의에선 '서구 근대의 확산'이라는 부분을 오직 '제3세계를 향한 수탈과 억압'이라는 '피해'의 측면으로만 논하려 하며, 그들이 가진 미쿸과 서방을 향한 극단적인 반감은 사실 이 극단적인 관점, 피해자서사를 통해서만 합리화될 수 있다. 하지만 위에 언급했듯, '이런 식'의 관점은 사실 마르크스의 논리에도 맞지 않는다. 마르크스의 관점대로라면, 최소한 3등급 질서를 2등급 질서까지 끌어올렸다는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사실 이러한 역사적 유물론으로 보면 오늘날 범 세계적인 트렌드인 극좌와 극우(전통 권위주의 우파)의 반미 연합은 논리적 정당성을 상당 부분 상실하게 되는데, 이 연합을 지지하는 속칭 '좌파'들은, 단지 '미 제국주의'로 상징되는 2등급 질서(자본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해 3등급 질서(전통 권위주의)와 손을 잡는 모양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해서 이런 거다. 서방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이 나쁘다 나쁘다 하는데, 그들의 침탈이 있기 전 왕실과 종교의 지배와 수탈을 받으며 살았던 '전통주의' 사회는 그럼 더 좋은 사회였나? 우가우가 신에게 하루에 열 번씩 절하면서 제사장 성직자들에게 아내와 딸들을 성 노리개로 상납하고, 귀족의 비위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저잣거리에 몸이 묶여 매질을 당하던 전근대 봉건질서 시절은 그럼 인간에게 좋은 시절이었나?


엄격한 브라만 계급제에 속박되어 있던 인도의 하층민들이 그나마 그 속박을 벗어나 IT산업에 투신, 개개인의 능력과 성취로 어느 정도 출세할 수 있게 된 이런 현상들도 따지고 보면 영국의 식민지배 이후 지속된 서방과의 접촉과 이로 인한 전통 질서 해체의 결과물로 나온 것이다. 이러한 변화들에 대해서 오직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게 맞는가? 만약 그렇다면, 엄격한 브라만 계급제도에 묶여 천출은 천출인 채로 그렇게 천년만년 살아가는 그런 '순수한 전통으로써의 인도'가 언제나 옳단 말인가?



반미주의에서 가장 이상적인 역사의 이프 상황이라는,

'그 어떠한 서구식 근대 오염'도 격지 않은 채 그대로 발전(?)한 한국에서 "딱 보니까 종놈의 자식 같은데 감히 건방지게 XX X씨 XXX파 XX왕 XX대손인 나님의 글에 감히 반박댓글을 달아?"이딴 소리나 주고받으며 치고받고 살아가는 삶이 그렇게 멋진 삶이겠는가?




반미주의 진영이 결국 승리하고, 당신들이 '서구식 자유질서'보다 더 좋은 어떤 체제를 도입해 세계 인류를 더 발전시켰다고 치자. 당신들 역시 역사를 집필하게 될 거고, 그 '새 역사' 속에 '미 제국주의(미영프, 근대정신, 대서양질서, 자유민주주의, 제국주의, etc.. 이 모든 것들의 총체)'에 대해 새롭게 논하게 될 텐데, 그 '새 역사'속에서 미쿸과 서방세계 질서를 오직 악으로만, 침략자, 수탈자, 오직 감정적 증오의 원천으로만 논 하려 한다면, 그러한 역사관 세계관은 당연히 찬성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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