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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Feb 18. 2023

정신문화관념. 그리고 인문학

행복은 결코 빵 만으로 얻을 수 없다.


많은 무슬림들이 과거 중세 대 이슬람제국 시절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로망은 종종 중동식 극우라는 '과격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생각을 해 보자. 그들이 이상적으로 여긴다던 중세 이슬람 선지자들의 시절과 현대 중동 중 어느 쪽 사람들이 더 잘 살고 있을까? "잘 산다."라는 개념을 물리물질적이고 실질적인 측면으로만 논 하자믄, 당연히 현대 중동인들이 훠얼씬 잘 산다고 보아야 한다. 아무리 중동에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들이 있다곤 하지만 21C 현대 기술문명의 이기는 '그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현대 중동인들은 과거 초기 이슬람의 '그 위대한 선조들'이었으면 꿈도 꿀 수 없는 기술 문명들의 혜택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시리아처럼 파괴된 일부 분쟁지역에서의 삶은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전쟁과 파괴를 애완동물마냥 옆구리에 낀 채 평생을 살아가야만 했던 중세 이슬람 시절이 더 가혹하면 가혹했지 오늘보다 덜 하진 않았다. 오늘날 중동에선 시리아와 같이 일부 분쟁지역에서나 해당되는 전쟁과 파괴의 삶이 초기 이슬람 확장기 땐 훨씬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었다고ㅇㅇ


결과적으로 현대 중동 무슬림들은 평균적으로 그들의 선조들보다 훨씬 유복하게 살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도 무함마드 시절'을 그리워하는 무슬림들의 심리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를 유물론적 관점에서 어리석다고 말해야 할까?


기술적으로 지금과 비할 수 없이 낙후되어 있던 중세 초기 이슬람 시절엔, 그럼에도 오늘날 중동에선 얻기 힘든 긍정적(?) 요인이 있었다. 그건 바로..

우리가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한 채 어떤 위대한 길로 나아가고 있다 여겨지는 희열, 뽕. 그 길 속에서 서로를 하나로 묶어주는 거대한 형제애. 물리물질적이고 실질적인 결핍을 카바 쳐주고도 남아 넘치는 정신문화관념적인 만족감.


이것이 바로 오늘날 중동 무슬림들로 하여금 물리물질적인 곤궁함을 감내하고서라도 '그때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프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인인 것이다.  





누차 반복하는 말이지만 필자는 근대 이성 합리주의를 존중하며, 과거를 향한 터무니없는 낭만주의들을 경멸함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짚고 넘어갈 부분은 있다. 행복은 결코 '물리물질적이고 실질적인 요소'만으론 도달할 수 없다는 거. 소위 근대적 이성주의 운운하며 어려운 미분적분 계산부심 부리면서 물리물질적이고 실질적인 요소들의 위대함을 논하기 좋아하는 자칭 이성 합리주의자들이 너무나 자주 놓치는 부분이다.


현대 무슬림들의 '사도시절 과거 동경'은 '인간의 행복'이란 게 결코 물리물질적이고 실질적인 요인들로 결정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지천에 쌔고 넘치는 증거들 중 하나이다. 그리고 오늘날 전 세계에 만연한 중세시대의 향수들은, 현대 기술문명이 사람들의 '정신문화관념적' 만족감 조성에 완전히 실패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그리고 안타까운 징조들인 것이다.


이런 '중세적 퇴행들'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인간의 심리, 정신이라는 측면에 더욱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필자가 '인문학 무용론' 따위 '이공계출신 미분적분 계산기 유물론자들'의 겉멋만 쳐든 헛소리들을 특별히 경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칼이 사람을 찌른다 해서 칼이 나쁜 게 아니듯, 인문학이 "한남 유충 철학 논문"따위의 하찮은 페미 피씨 장사질에 활용되고 있는 쓰라린 현실이 있다 해서 그것이 인문학이라는 분야 자체를 무용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 반대이다. 우리에겐 우리의 정신문화관념을 진정으로 위로하고 보살펴 줄, '좋은' 인문학이 너무나도 절실하다.



+탈북자들의 재입북 사건이 심심찮게 일어난다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남조선 똥밭을 구르며 컵라면으로 세 끼니를 때운다 한들, 부카니스탄에서 배급받는 소금국 꽁보리밥만 몬할까? 그럼에도 그들은 애써 '따뜻한 수령님의 품'으로 돌아감을 주저하지 않는다. 반동분자로 처벌받을 가능성을 무릅쓰고서라도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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