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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Feb 20. 2023

가'족'같은 회사

응, 가족 아니야. 돌아가.

스타크래프트에서 레이너와 캐리건이 멩스크의 부하이던 시절, 멩스크의 명령이 부당하다고 항의하는 레이너와 캐리건에게 멩스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명령을) '좋아' 하라는 게 아냐. '하라'는 거지."


멩스크라는 캐릭터의 냉혹함과 함께, 참신한 혁명가에서 타락한 독재자로의 진행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중 하나로 여겨지는 데, 필자는 '약간' 다른 관점으로 이 장면을 바라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멩스크의 이 대사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좋아할 거 없고 그냥 하라."라는 건 "이 명령을 마음으로까지 좋아할 필요는 없다."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조직이고 공동체이니까 싫어도 의무를 수행해야 하지만, 우리가 하는, 그리고 해야 할 것들을 마음으로까지 다 동의할 의무는 없다는 의미인 것이다. 역설적으로 '인간적'이다.





인간은 모두 다르다. 절대로 다 똑같을 수 없으며, 전부 예수나 부처인 것도 아니다. 때문에 공동체의 억압과 통제가 없이 완전한 자유 상태로 인간들을 방치할 경우, 필연적으로 서로 배때지에 칼침 날리는 만인대 만인의 무한 투쟁 상태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공동체는 와해되고 모든 개별 인간들이 더욱 불행해지는 결과가 초래된다.    

모든 인간들은 칼 슈미트적으로 서로 다르지만 그 다름이 상호공멸의 투쟁으로 이행되서는 안되기에, 공동체는 불가피하게 구성원들을 억압하고 통제해야만 하는 것이다. 범죄를 막는 각종 법률, 세금, 병역과 같은 강제적 의무사항들, etc..


그리고 이 의무의 울타리는 당연히 수행자들에게 소정의 고통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런 '의무'들이 서로 다른 개개인들의 개별적 입장들을 하나하나 친절하게 고려해 주면서 부여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거의 대부분은 '싫어도 억지로' 해야만 하며, 이는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NL과 같은 '우리가 남이가 한국식 정리 좋아하는 따뜻한 공동체주의자들'은 여기서 문제의식을 느꼈다. 이왕에 하는 거, 좀 마음으로 우러나와서 좋아하며 할 수는 없을까? 이왕 하는 거 웃으면서 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거 같은 데 말이지.

결과적으로 이들은 가뜩이나 하기 싫은 일들에 대해 '웃으면서' 할 것까지 요구하게 된다.

"웃어.. 웃어.. 인상 안 피냐?"      

"자 보세요^^ 우리 모두 웃고 있잖아요. 우린 '한국식 정 넘치는 따뜻한 공동체'에요^^"

"음, 모든 구성원들이 웃으면서 사진을 찍었으니 여기는 '한국식 정 넘치는 따뜻한' 공동체로군! 너무나 아름다워!"

"야! 씨발 너 표정 그거 뭐냐? 내가 그거 하라 그래서 아니꼽냐?"
"반항심을 그딴 식으로 표출하지 마 새꺄"



다들 알겠지만, 공적인 규칙에 의한 폭압이 아닌, 사적인 정리를 중시하는 공동체일수록 서로 간에 암묵적인 눈치를 엄청나게 준다. 그런 '무형의 억압'이 없이는 공적 규범이 미진한 사적 정리 공동체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인데, 많은 경우 이런 '정리' 공동체가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딱딱 정해주는 '독일식' 공동체보다 훨씬 고통스럽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 모든 '서로 다름'들을 초월하여 모두 같은 마음을 가지게 만들려 할 경우, 역설적으로 오히려 더 강도 높은 정신문화관념적 억압과 세뇌작업이 불가피하게 동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에서, 필자는 '차가운 명령과 통제가 아닌, 마음과 마음으로 연결되어 마음에서 우러나온 자발적 동의들로 돌아가는 따뜻한 공동체'라는 운동권 NL식 낭만을 극도로 혐오한다.

그래, 구직목록에서 가장 먼저 거르라는 항목인 "가'족'같은 회사" 말이다.


그냥 깔끔하게 하라는 거, 하지 말라는 거 딱 딱 정해주고 업무수행에 대한 기계적 보상만 해 주면 된다. 그게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의 형태인 거고, 괜히 NL식 정리 들먹이며 '마음으로 우러나오는' 그런 '한국식' 염병지랄 좀 하지 말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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