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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Feb 23. 2023

모든 진보는 불가피하게 추할 수밖에 없다

추하지 않은 내일을 기대하지 말아라.

일전에 적었던 "예쁜 선(善)은 없다."글과 비슷한 맥락의 글이다. 그리고 다소 미래주의적 관점이기도 하고.


코로나 마스크 시즌을 거치며 느낀 흥미로운 부분인데, 처음엔 안 쓰던 마스크를 쓰고 사는 게 뭔가 너무 어색하고 이상했다. 그런데 쓰고 살다 보니 이제 마스크를 벗고 다니는 게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더라. 마치 바지를 벗고 밖에 나온 것 마냥 말이지.


사람들의 미(美)감이란, 결국 '기존의 삶'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그런데 모종의 이유로 삶의 형태가 바뀌게 되면, 처음엔 그게 너무너무 이상하고 기괴해서 강한 반발이 나오게 되는데 많은 경우 진보 보수 충돌은 이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특히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전에도 말했지만

왕이나 귀족이 없고 모든 남녀노소가 평등하며 능력껏 돈 벌어먹고사는 게 인생 최고의 테마가 되는, 옳고 그름을 성직자가 아닌 학자들이 학술적으로 결정하는 그런 시대 그런 삶은 근현대 농경사회에 머물러 있던 이들에겐 너무나 기괴하고 이상한 일이었다. 너무 기괴하고 이상해서 이 모든 게 그림자정부 내지 외계인의 음모라고 우기는 이들마저 나타났고 그게 프리메이슨-일루미나티-딥스테이트 음모론의 기본 틀이 되었다는 말을 예전에도 했던 바 있다.


막말로 우리나라만 해도 상투 안 자른다고, 머리 안 자르겠다고 얼마나 법석들을 떨었었냐고. 



그럼에도 '변화'는 이유가 있으니까 일어나는 법이다. 그런 이유에서 필자는 특히 사회문화적 측면에서의 보수운동들을 굉장히 싫어하는 편인데, 이 운동들은 기본적으로 "변화되는 양상들에 대한 '미학적' 거부감"을 주된 감정적 동력으로 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감정 내지 감성은 정신문화관념적으로 중요한 부분이며 면밀히 관찰해 이해와 공감을 주고받을 영역이긴 하지만 물리물질적이고 실질적인 옳고 그름을 엎을 정도로 중시되어서도 안되기 때문에.


새로운 변화가 강력한 정서적 거부감을 유발할 수는 있더라손, 이를 엎기 위해선 또 다른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논거가 동원되어야 할 것이다. 그저 "뭔가 기괴하고 정서적으로 거부감이 드네요." 그 자체만으로는 변화를 엎을 근거가 되지 않는다. 거부'감'만으로는 안된다.

그 변화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측면에서 정당하다면, 그 변화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보수적인 기괴감과 거부감들은 결국 최종적으로는 무너지고 척결되어야 하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반복하는 말이지만, 모든 미래는 (현재 기준에선) 기괴하다.


누차 반복하는 말이지만, 민주진보 리버럴의 '예쁜' 페미피씨들을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이 주류 언론과 매스컴에서 예쁘게, 호의적으로 등장한다는 거 자체로 이미 '그 가치들'은 더 이상 '진보'는 아닌 것이다. 우리에게 다가 올 미래란 것들은 현재 우리의 기준에선 대체로 예쁨보단 추함으로 여겨지는 게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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