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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Mar 03. 2023

카르타고의 인식 한계

도시국가와 영토국가

포에니전쟁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최종 승리자가 될 로마의 국력보다 패배자가 되는 카르타고 국력이 월등했다는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는 '도시' 로마와 '도시' 카르타고의 단일비교일 뿐이고, 연계를 맺고 있는 다른 지역들까지 고려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카르타고는 지중해 일대에 많은 식민지들을 거느리고 있었지만, 이는 말 그대로 '식민지'에 불구했으며 그 취급에 있어 '본국' 카르타고와는 분명히 구분되어 있었다. '식민지'의 사람들은 그저 '본국' 카르타고의 이권을 위해 종으로 부려질 뿐. 때문에 전쟁 중 로마군이 카르타고의 여타 식민지역으로 진출했을 때, 거기서 그렇다 할 만한 저항에 직면했다는 이야기는 찾기 어렵다. 저항다운 저항은 마지막 카르타고 본성을 공격했을 때 그때뿐이었지.


반면 로마는 당근(시민권 부여, 인프라 구축)과 채찍(저항지역에 대한 무력행사)을 이용해 이탈리아 반도의 여러 지역들을 명백한 하나의 나라로 차근차근 묶어 나아가고 있었다. 결국 인구수 40만의 '도시국가' 카르타고(물론 단일 도시만으로 따지면 당대 지중해 세계 탑이긴 했다.)는 최대 가용병력이 75만까지 나온다는 '영토국가' 로마를 상대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승패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도시국가' 카르타고인들은 멸당당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영토국가' 로마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우리는 그저 '서울'과 싸우려 했을 뿐인데, 어째서 '대전'과 '대구'가 저렇게 열심히 서울을 도우려 나설 수 있단 말인가! 



...


1차 포에니전쟁이 패배로 끝난 후, 카르타고 인들은 이탈리아 각 도시 지역들이 열성적으로 로마를 도운(?) 게 자신들의 패인이라는 걸 인지하기는 했다. 그래서 (그 저명한..) 한니발은 전쟁을 이탈리아 본토로 옮겨 거기서 각종 '깽판'을 부리고 다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탈리아반도 구석구석을 쑤시고 다니다 보면 누적되는 피해에 지친 각 도시 지역들이 수도 로마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마지막에 홀로 고립된 로마를 접수하기만 하면 될 것이라는 계산. 


한반도로 처 들어가 대전 대구 부산을 열심히 쑤시고 있으면 피해누적에 지친 대전 대구 부산이 수도 서울로부터 독립을 선포하고 떨어져 나오게 된다는 식의 이야기인데, 우리는 이미 그 결과를 알고 있다. '명장' 한니발이 무려 14년 동안이나 퍽 열정적으로 이탈리아반도 전역을 이 잡듯이 쑤시고 다녔지만 이탈리아 남부의 그리스계 일부지역을 병합했을 뿐 '로마연합의 전방위적 해체'와 같은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결국 2차 포에니전쟁에서도 '도시국가' 카르타고는 '영토국가' 로마를 뛰어넘지 못했다.



...


정신상태의 차이도 빼놓을 수 없다고 보는 게, 카르타고인들은 멸망이 목전에 닿는 순간까지도 의견을 통합하지 못한 채 화친이냐 항전이냐를 놓고 의회에서 쌈박질이나 벌이고 있었다. '명장' 한니발이 이런 썩어빠진 본토인들의 마인드로는 백날천날 해 봐야 답이 없다고 느껴 머나먼 스페인지역으로 건너가 그 지역에 '또 다른 왕국'을 건설하고서야 비로소 새로운 전쟁을 시작할 수 있었을 정도였다.  

반면 로마인들은 전쟁이 시작된 시점부터 모든 이견을 내려놓고 일치단결하는 모습을 보였고 말이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로부터 비롯되었을까? 필자는 이게 '살아온 궤적'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로마인들은, 그 '조그만 부락'이 최초로 탄생한 시점부터 엄청난 피바람 속에서 살아가야만 했다. 켈트인(골족)의 침공에 전 도시가 잿더미로 변하는 뼈아픈 일도 겪어야만 했다. 로마의 성장은 피와 죽음의 길이기도 했고, 그 속에서 로마인들은 살아남기 위해선 위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뼈 저리게 깨달았다. 그렇게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때론 죽이고 때론 친구를 만드는 법을 배워갔다.


반면 로마와 거의 비슷한 시점에 탄생한 카르타고는 태초 디도여왕이 튀니지 북부 해안가에 자리를 잡은 이래 별 다른 고난이 없이 성장했다. 사막의 유목민인 누미디아 인들은 카르타고인들이 뭘 하건 관심이 없었고 켈트족은 바다건너에 있어서 애초부터 위협이 될 수 없었다. 때문에 카르타고 인들은 화살 한 번 맞아볼 일 없이 너무 편하게 클 수 있었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역대급 적과 사생결단을 내야 할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계속해서 우왕좌왕하기만 했던 것이다. 적의 칼이 자신의 목을 관통할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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