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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Mar 11. 2023

학교폭력과 찐따

학교폭력의 가장 주된 피해자층은 '찐따'이다.

이제 '학폭'이라는 죄악은 어지간한 성범죄와 맞먹는 급으로 취급된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지. 일전에도 말했지만 성범죄의 경우 "어째서 이 정도를 성 '범죄'로 보아야 하는가?!"라는 반발이 생기는 반면 학폭이슈가 터졌을 땐 그러한 반발이 거의 일어나지 않으며, 이는 젊은 층일수록 더욱 두드러진다.

그럼에도 아직은 좀 아쉬운? 의아한 부분이 있다.


학폭을 당하는 이들은 보통 어떤 이들일까? 전부라곤 할 수 없지만 주로 '찐따'라 분류되는 계층이 주된 희생양이다. '찐따'는 같은 종류의 인간이 아니니까, 아무렇게나 때리고 짓밟아도 되는 인간 이하의 가축이니까, 이러한 인식 하에 '폭력'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불행히도 이 '인식'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인터넷 커뮤들을 조금만 둘러보아도, '찐따'의 약자성을 조롱하고 무시, 모멸하는 내용의 게시물들을 한 바가지로 구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들 특유의 말투, 행동, 옷차림, 대인관계의 미숙함, 이성경험의 빈약함 등은 여전히 값싼 웃음거리로 손쉽게 소비된다.(그리고 그들의 대부분은 '남자'이다. 당연히 학폭경험의 비율도 남자가 더 높다.)


세상이 바뀌어 이제 소수인종, 장애, 실업과 가난, 더 나아가 성소수자 등등은 이제 함부로 조롱할 수 없으며, 만약 그리 할 경우 사회적 매장까지도 각오해야 하지만, '찐따'에 대한 조롱은 여전히 너무나 손쉽게 이루어지며 소위 약자 인권에 목숨 건다는 '힐러리 클린턴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만큼은 눈곱만큼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찐따'가 그렇게 인간 이하의 하등 동물이며 개 돼지 가축과 같은, 혹은 그보다 못 한 존재에 불구하다면, 그런 '찐따' 한 둘 즘 두들겨 팬다 한들 어째서 그걸 '죄악'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학폭 이슈에 그렇게 민감하게들 반응하면서, 그 주된 피해자층이 되는 '찐따'들에 대해선 또 다른 가해를 가함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문화 풍조는 정말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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