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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Mar 21. 2023

물리적인 보호통제와 정신적인 자유방임

초인은 '정신적으로' 만들어진다.

혹자는 정신문화관념적으로 자유(방임) 상태를 추구하는 필자의 지향이 물리물질적 영역(경제)에서의 강한 통제와 보호를 추구하는 필자의 '좌파경제'와 상충되는 거 아니냐고 궁금해한다. 차피 정치적 자유, 문화적 자유, 경제적 자유 이 세 개의 개념을 서로 독립된 것으로(심지어는 상호 대립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지금 시대에 애써 이 부분이 그렇게 궁금해야 할 진 모르겠으나, 그래도 이 부분에 대해 언급을 해 보련다.




역사적 위인들의 위대함은 대부분 정신문화관념적 측면에서 나왔다. 인간이 '물리적으로' 위대하려 해 봐야 타고난 육신의 틀을 극복함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라 해도 총 맞으면 죽는다. 창에 찔려도 죽고 병 걸려도 죽는다. 3분 동안 숨 못 셔도 죽고 3일 동안 물 못 마시면 죽는데 3주 동안 밥 못 먹어도 죽는다. 그게 물질로써의 인간이다.


때문에 인간이 극한 수행 내지 개조를 통해 (정신적 한계가 아닌..) 물리적,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는 류의 이야기들은 언제나 사람들의 상상으로만 존재할 수 있었다. 극한 수행을 했더니 사람이 장풍 쏘고 축지법 쓰고 공중부양 했다더라 이런 거 다 거짓말이다.(다만 축지법은 기밀성이.. 읍읍)


만인지적이었다는 관우 장비? 그거 전형적인 고대 중국식 슈퍼히어로 창작 서사일 뿐이고 실제로 그런 무용이 등장했던 건 연의 '소설'에 등장하는 비중의 1할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런 장수들은 대부분 적군의 화살이 닫지 않는 안전한 본진 막사에 틀어박혀 전황을 분석하고,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병사들을 지휘했을 뿐이다. (그런데 믿기진 않지만 장판파의 장비는 진짜라고 한다..)


'신의 아들' 조차도 십자가에 못 박고 매질을 하니까 죽었다.(사흘 만에 부활하긴 했지만..) 깨달음을 얻어 존귀한 자 '부처'가 된 이 역시 음식 하나 잘못 공양받아먹고서 식중독으로 죽었다. 이게 바로 물질로써 인간의 한계이며, 이러한 물리적 한계는 애초에 극한 수행 따위로 초월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이다.


위대한 수행을 통해 극복하고 초인이 될 수 있는 영역은 철저하게 정신문화관념적인 영역이지 물리물질적이고 실질적인 영역이 아니다.




사아람이 일단 물리적으로 살아 있어야 정신적인 수양도 하고 깨달음도 얻고 (살아서) 해탈도 할 거 아닌가! 때문에 석가모니 역시 제자들에게 "(공양) 잘 받아서 잘 먹고 그렇게 수행에 임 하라."라고 했던 것이다.


때문에 물리물질적이고 실질적인 영역(대표적으로 경제)에서의 인간은 가능한 한 세심하게 보호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자유주의의 황량함이 주는 정신적인 수행은 어디까지나 정신문화관념적 영역에서.


그리고 언제나 말했지만 필자는 완전히 방임된 자유시장에 대해 결코 자연 생태계와 같을 수 없는, 극도로 불안정하며 자생 불가능한 개념으로 본다. 폭망이 예정된 시한폭탄 같은 거지ㅇㅇ



반복하는 말이지만 무한경쟁으로 돌아가는 완전한 방임시장을 '정글'에 빗대는 건, 너무 심한 모욕이 아니라 너무 심한 예찬이기 때문에 잘못되었다. 아무런 규제를 가하지 않는 순수한 방임 시장이 정말 '정글 생태계씩이나' 안정적일 수 있다면, 필자가 자유방임경제에 대해 애써 그렇게 반대해야 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필자는 (물리적인) 생명권을 자유권보다 위로 보는 경향이 있으며, 성적 자유주의 의제 중에서도 유독 낙태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이유 역시 낙태를 단순한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문제로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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