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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May 08. 2023

누가 학교폭력의 주체인가?

'모범생 일진'이라는 민주진보식 허상

좌파경제를 주장하면서도, 필자가 기성 제도권 민주진보진영에 격한 반감을 가지게 된 여러 사연중 하나가 학교폭력이다. 좀 더 정확히 말 하자믄, 각종 매체에서 학폭의 주체가 되는 '일진'을 묘사하는 방식.


한국에서 학교폭력이 본격적으로 이슈화된 건 민주화가 이루어진 90년대부터였다. 이때부터 약한 학우들 따라다니면서 찐따라고 이유없이 때리고 괴롭히는 괴현상이 교육계에 출몰하기 시작했으며 자살자가 속출하게 된다. 


당연히 이에 관련된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졌는데 당시(아마 94년?) 만들어졌던 한 학폭 다큐 픽션 스토리텔링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싸움을 잘하는 아이들 중심으로 일진그룹이 형성되고, 다른 학우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다니는 모습이 실제 학교폭력 양상과 상당히 유사하게 잘 묘사 되었거든. 지금 보아도 별로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시대적 한계로 휴대폰이나 온라인 공간을 활용한 폭력 행각들을 묘사할 수는 없었겠지만 말이다.)


이후 한국에서 정권이 교체되었다.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소위 '민주진보' 정권이 창출된 것이다. 

그리고 학교폭력을 다루는 대중매체의 방식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는데..


폭력의 주체가 되는 '일진'에 대한 묘사가 바뀌었다.

일진들은 싸움을 잘하기보단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로 묘사되기 시작했다.

일진들은 용모가 빼어나기보단 타고난 출신성분이 우수한(귀족출신) 아이들로 묘사되기 시작했다.

일진은 불량 그룹이라기보단 모범생 그룹인 걸로 묘사되기 시작했다.



싸움을 잘하는 외모가 출중한 불량아가 아니라, 공부를 잘하는 귀족출신의 모범생들이 폭력의 가해자로 묘사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범생이들'에게 핍박받던 힘없는 찐따들이, 싸움을 잘하고 다혈질이지만 약한 친구를 아껴주는 마음씨 착한 불량배 학우를 중심으로 힘을 합쳐 저 사악한 모범생 군사독재를 타도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가곤 했다.


학우들을 억압하는 사악한 모범생 그룹 vs 제도권을 거부하지만 마음 따뜻한 멋진 힙스터 체게바라 저항자. 

전형적인 지난 세기 민주진보식 반문화 저항 이데올로기.. 


하지만 포스트민주화세대의 첫 자락 즘 되는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보았을 때, 저런 건 더 이상 현실이 아니었다. 민주진보세대(60~70년대 출신)의 성장기땐 저런 상황들이 있었다지만 적어도 포스트민주화세대의 성장기 때 실재했던 현실은 아니었던 것이다. 


일진들은 주로 싸움실력이나 용모를 중심으로 결성되었지 귀족출신 여부 내지 학업성적으로 결성되진 않았다. 그런 건 고려하더라도 한~참 후 순위였지ㅇㅇ 그리고 가장 지독한 가해를 일삼던 이들은 '민주진보 세대들이 좋아라 하는', 집안이 불우한, 사회의 제도권에서 밀려나있던 불량아들이었다. 반면 반장 부반장을 도맡아 하는 소위 '범생이들'은 찐따들이 뭘 하건 아예 관심도 없었고 말이다.


민주진보세대의 민주진보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그들은 대체로 이해하지 못했다. '모범생 일진'이 허상이라는 걸 말이다. 


다시 말 하지만 90년대 초중반에 나왔던 학교폭력물들의 현실반영이 더 뛰어났다. 민주진보 정권 이후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오히려 퇴행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이념에 의해 왜곡된 시선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데, 학교폭력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필자가 '더 글로리'식의 '귀족출신 일진들' 묘사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이다.


+짤방 : 연상호감독의 '돼지의 왕'은 학교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작품으로 극찬을 받았지만 민주진보식 묘사(범생이그룹이 가해자이며, 찐따들이 '착한 불량배'와 힘을 합쳐 이에 맞섬.)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볼맨 소리도 많이 나왔었다.("야! 솔직히 범생이들이 학폭 가해자인 경우가 몇이나 되냐?")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거의 조명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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