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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Jun 17. 2023

표류하는 대안우파들

방향이 없어

1. 누차 반복하는 말이지만, 원래 대안우파는 페미 피씨 민주진보들이 앗아간 '시민자유'를 되찾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되었다. 코로나시국 때 "코로나를 명분으로 우리의 '자유'를 빼앗지 말라!"라고 외치며 거리를 가득 매우던 서구의 대안우파 시위대들이 대표적.

하지만 대안우파 내에 푸틴의 영향력이 노골화되면서 '자유'라는 말을 거부하는 대안우파들이 나타났다. 페미 피씨와 같은 '오류들'은 근대적 자유와 해방의 파생물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민주주의를 폐지하고 자유가 없던 전근대 왕조시대로 되돌아가 인간들은 채찍질에 뚜드려 맞으면서 피라미드 벽돌이나 나르다 죽어야 한다고 말이다.

전자와 후자는 상호 대립이며, 모순된다. '대안우파'는 자유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지?


2. 이슬람에 대한 거부 역시 대안우파들의 주된 테마였다. 하지만 페미 피씨를 혐오하는 그들의 '근본(Based. 뭐만 하면 "근본이다."이러는 거, 서구 남초 커뮤니티 대안우파들로부터 파생된 세계적인 밈)'은 역설적으로 이슬람의 '근본'주의적 성향과도 겹친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 180도 터닝해서 "페미 피씨에 반대하기 위해선 이슬람을 동료로 삼아야 한다!"라는 목소리가 서구 대안우파들 사이에 급격히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아예 이슬람으로 개종한 앤드류테이트가 대표적.

자, '대안우파'는 이슬람에 대해 어떤 모션을 취해야 하지?


3. 중국에 대한 거부 역시 대안우파들의 오랜 특성 중 하나이다. 하지만 대안우파 내 푸틴의 입김이 강해지고, 그가 삽질한 전쟁에서 유일한 구원자(?)로 등극한 게 중국인 이런 애매한 상황에서, 푸틴을 빠는 극우NL 대안우파들이 '중국을 향한 혐오'라는 오랜 포지션을 유지할 수 있을지 역시 의문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중국은 딥스테이트에 맞서는 좋은 나라^^"이러는 것도 너무 웃기지 않은가?

'대안우파'는 중국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여야 하지?



4. 러시아 푸틴에 대한 대안우파들의 지지가 절대적이냐? 하면 이 역시도 심히 의문스럽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세계의 대 러시아 여론을 보면 부정 일색이며 미쿸에 대한 관점은 상당 부분 긍정적으로 개선되었다.(ex : 올 3월 미쿸 내 러시아 긍정 여론 9%, 부정 59%) 이는 모든 대안우파들이 합심하여 러시아를 '빨아주고' 있다면 나올 수 없는 수치이다.

물론 대안우파 내 러시아 푸틴을 지지하는 이들의 힘이 다 빠졌다고 할 수는 없고 이들은 계속해서 서방 자국 내 친러 반 우크라 시위를 주도하며 우크라에 대한 자국정부의 군사지원을 막아서고 있다.   

그럼 '대안우파'는 러시아의 전쟁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여야 하는가?


5. 러시아의 푸틴과 두긴은 이슬람과 중국과 대안우파, 이 모든 것들을 '반미 반서방'이라는 이름하에, 러시아의 영향력으로 통합시키고 싶어 한다. 이게 가능한 이야기인가? 정말로 이슬람과 중국과 대안우파들이 '반미'라는 슬로건 하에서 러시아를 중심으로 통합될 수 있는가? 현실적인 실현 가능성은 몇% 인가? 쏘오오오련 아프간 전쟁 때 "공산주의에 맞선다."라는 명분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이슬람이 힘을 합쳤던 그런 상황이 다른 방향으로 다시 구현될 수 있는가?


6. 자, 지금 전 세계의 대안우파들은 거대한 혼란에 빠졌다. 페미 피씨에 대한 거부감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이상의 사상체계를 가지지 못했던 그들은, 시간이 흐르며 기틀을 잡아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욱 혼란스럽게 분열되고 있다.

당선되기 전엔 마치 3차 세계대전이라도 일으킬 법했던 이탈리아의 멜로니가 정작 당선 후엔 너무나 조용한 요조숙녀처럼 되어버린 것 역시 이러한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이슬람? 중국? 푸틴? 자유? 전쟁? 정작 집권을 하고 보니 아~무런 대답도 내줄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7. 물론 그럼에도 우리는 디즈니의 인어공주가 실패했음을 알고 있다. 페미 피씨에 반대하고자 하는 정서적 기류는 여전히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페미 피씨에 거부감을 느끼는 그 엄청난 대중적 여론들은 구체적인 방향성을 가지지 못한 채 정처 없이 표류하고 있다. 


문제는 이 '떠도는 흐름'을 최종적으로 거머쥐게 되는 이가 누구일까 하는 점이다. 이 임자 없이 떠도는 에너지가 부디 '좋은 임자'를 만나 바람직한 방향으로 쓰이게 되길 바라지만 역사를 보면 이런 떠도는 에너지의 최종적 임자가 되는 이들은 대게 좋은 사람보단 또라이가 많았다는 걸 잊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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