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쓸데없는 걱정
SF영화에 자주 나오는 설정중 하나는 "인간이 게을러지는 미래"이다. 간단하게, 기술의 발달로 사람이 하던 모든 일을 기계가 하게 되어서 할 일이 없어진 인간들이 그냥 놀고먹기만 하다 보니 게으름과 나태함에 찌들게 된다는 류의 설정이다.
이런 사회를 진지하게 걱정하는 이들이 있을진 모르겠으나 만약 이런 미래가 실제로 가능하다면, 그 사회는 반드시 사회주의적인 사회일 것이다. 아무 일도 안 하고 놀고먹는 이들에게까지 사회가 의식주를 제공한다는 이야기니까.
복지와 재분배가 너무 사회주의스러워 싫다는 이들의 견해를 적극 반영한 자유시장사회였다면 설정은 조금 바뀌어야만 한다. 사람이 할 일을 전부 기계가 하기 때문에, 쓸모를 상실한 다수의 노동계층은 편하게 놀고먹는 게 아니라 쓰레기통이나 뒤지다 굶어 죽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것이 전자보다 훨씬 현실적인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술발전 단계 하에서 여전히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들은 생산수단을 소유한 최상위 자본가 그룹일 것이며, 이들은 실제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게' 펑펑 놀고먹으며 지내고 있다.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정말 사람이 해야 할 일을 기계가 전부 해버리는 초 미래 사회에서조차 "인간은 땀을 흘려야만 밥을 먹을 자격이 있다."는 고전적인 노력주의 논리 하에 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복지를 받지 못해 굶어 죽어야만 하는가? 기술의 발전이 이런 식으로 사람에게 고통을 줄 뿐이라면 기술발전 왜 하고 4차 산업혁명 왜 하냐? 사람에게 실업의 고통을 주려고?
기술발전 속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미래란 것이 기껏 시장으로부터 버림받고 굶주리는 것뿐이라면, 우리는 무슨 이유로 기술의 발전을 축하해 주어야 하는가?
기술 발전의 본질적 목표는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래, 심하게 말해서 놀고먹게 해 주려고 발전하는 거라고. 근데 언제까지 "땀 흘리지 않았으니 먹지도 말아야지!"라는 고전적 노력주의 도덕률 하에서 살아야만 하나?
정말로 "땀 흘리지 않았으니 먹지도 말아야지"라는 고전 보수주의적 도덕률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땀 흘림을 숭고히하고 쉼을 죄악시할 것이라면, 우리는 기술발전을 정말 해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 보아야만 한다.
이를테면 자동차는 걸어서 일주일 걸리는 거리를 반나절만에 주파하고 남은 날들을 편히 쉬게 해 주기 위해서 개발되었다. 다만 시장이 그 여유분을 '다른 방식의 땀 흘림을 위해 소모하도록' 강제했을 뿐이다.
기술발전으로 발생하는 '여유'가 여유 그 자체가 아닌 다른 방식의 땀 흘림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야만 한다면, 그런 식으로 '땀 흘림'자체가 도구가 아닌 궁극적 삶의 목표로 자리매김 해 버린다면,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노동계층의 삶은 나아질 수 없다. 여유는 여유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야만 하며, 그렇게 (기술발전에 비례해) 여유가 커지다 종국엔 모두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먹을 수 있는 세상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이것은 절대 죄악이 아니다.
+마르크스가 했던 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