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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Aug 21. 2023

특정 죽음의 성역화. 그리고 최인호

특정 섹터의 죽음만 중요할 수는 없다.

사실 모든 삶은 다 소중하다. 그런데 정치판의 어떤 이들은, 자신들에게 중요한 특정 섹터의 죽음과 고통만을 끝없이 성역화하곤 한다. A, B, C 섹터에서 나타나는 모든 고통과 죽음, 핏방울들이 모두 중요해야 마땅하지만, 자신들에게 중요한 A섹터에서의 죽음과 고통만을 언론과 매스컴을 동원해 끝없이 강조하면서 A섹터에 대한 더 많은 지원을 따 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상황에 반대하는 이들을 '타인의 아픔과 죽음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로 몰아붙인다.


이를테면 "All lives matter"를 거부하는 "Black lives matter(BLM)"운동이 그러했고, 또 페미니즘이 그러하다. 모두의 삶이 중요한 게 아니라 흑인의 삶이 더 중요해야만 하여, 모두의 죽음이 아니라 '여성의 죽음'이 더 중요해야만 한다. '모두를 위한' 지원이 아니라 '여성을 위한' 지원을 더 중시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지금 기라성 같은 여성단체들이 최인호 관악구의원을 향해 총공세를 펼치는 중이다. 이유는? 최인호가 "Woman lives matter"를 거부하고 "All lives matter"를 추구했으니까!


모두의 삶과 죽음이 아니라 여성의 삶과 죽음만을 끝없이 신경 쓰고 지원해 주어야 하는데 감히 최인호 너 따위가 이에 반대했기 때문에 신림동의 무고한 여성이 강간살해를 당했다고 말이다.


만고의 역적 최인호가 감히 건방지게 여성안심귀갓길 예산지원에 퇴짜를 놓았기 때문에 신림동에서 무고한 여성이 죽었다고 한다. 그럼 여가부와 비동간과 여성안심귀갓길과 여성전용주차구역을 반대해 온 이대남 안티페미 전부가 신림동 여성 죽음에 대한 공범인가? 단 한 명의 억울한 여성 죽음도 없어질 때까지 여성을 향한 일방적인 우대와 지원은 계속되어야 하는가? 이에 반대하는 이가 있다면 '어떤 억울한 여성 죽음'에 대한 공범인 것인가?  



요 한동안 꼬리를 물고 이어진 무수한 칼부림 범죄행진 속에서 수많은 남성들이 어이없게 칼침을 맞았는데 그럼 이는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나? '남성안심귀갓길'을 별도로 책정하지 않은 모든 위정자들에게 그 책임을 돌리면 되는가? 


그럼 혹자는 이렇게 말하겠지! 남자가 남자를 죽인 거니 그건 문제가 아니지만 신림동 사건은 남자가 여자를 죽인 거니 문제가 된다고 말이다. 과연 이번 범죄들에서 해를 당한 남자들도 '음, 남자가 남자인 나를 헤친 것이니 나의 죽음은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니야.'이렇게 생각하며 죽어갔을까?


서방 대안우파 : "'중동에선 더 많은 이들이 내전과 테러로 죽어가고 있다!' 이런 식으로 억지공감 억지슬픔 유발하려 하지 마라. 무슬림이 무슬림을 죽이는 상황에 대해 왜 비 무슬림, 유럽인들이 신경써야 하는가! 우리는 무슬림이 '유럽에서' 테러를 유발하는 상황만 신경쓰면 된다."


+중요한 핵심이 뭐냐면

역사적으로 유구하게 이어져 온 '남성'들의 죽음에 대해선 어떤 남성도 "남자라서 죽었다! 남성에 대한 특별 지원 배려를 촉구한다!"라고 말하지 않는데 

'여성'의 죽음과 피해가 있을 땐 항상 "여자라서 죽었다! 여성에 대한 특별 지원 배려를 촉구한다!"라는 '꼬리'가 붙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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