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의 붕괴
적은 바로 당신의 침대 위에 있을 수도 있다. 때문에 모든 인간관계가 붕괴되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직 의심과 적대만이 감돌게 된다. 누가 누구와 내통하고 누구를 언제 어떻게 팔아먹을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아비가 자식을 팔고 자식이 부모를 찌르는 금수의 형국이 끝없이 이어진다.
신뢰의 상실과 관계의 파탄. 서로를 믿을 수 없는 형국은 사람들을 심리적으로 고립시키며 이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정서적 스트레스가 된다.
사내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고 여인들은 겁탈당한다.
'당신과 다른 생각을 가졌던 이들'은 더이상 당신을 '설득하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은 시리아 내전과 IS전쟁 속에서 있었던 몇 가지 일화들이다.
1. 바트당 과충성 군인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불순하다 여겨지는 이들을 검열하는데 이 과정에서 겁을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많은 깽판을 친다. 13살짜리 소년이 아비가 지켜보는 앞에서 군인들에게 겁탈을 당했다.
2. 이라크 내전의 혼란 속에서 극단 이슬람주의에 물든 아들이 어느 날 IS동료들을 데리고 집으로 찾아와 아버지에게 말하길 "빨리 엄마와 이혼하고 엄마와 여동생을 IS전사들을 위한 성노예로 헌상함으로써 알라에 대한 충성을 보여야 한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기뻐하며 "더 좋은 것을 주겠다."라고 안방으로 들어가 장롱 속에서 총을 꺼내 들고 아들과 동료들을 모조리 쏴 죽인 후 딸과 아내를 데리고 정부군 관할지로 도망쳤다.
3. 이라크 정부군 병사들이 IS포로를 잡아 이를 SNS에 올린 뒤 처형할지 말지를 네티즌들에게 물었다. ("얘 지금 죽일까여 말 까여?*^오^*") 만족스러울 만한 따봉수와 이들을 죽이길 원하는 네티즌의 리플들을 확인한 뒤 약속대로 포로를 처형했고 그 사진을 추가로 포스팅했다.
…
내전이 초래하는 물리적 손실 이상으로 무서운 것이 바로 정신적 손실, '이성의 상실'이다.
586세대 진보주의자들이 오늘날 비난받는 여러 가지 요인중 하나는 바로 그들이 가진 사고의 경직성인데, 많은 이들은 이 경직성이 그들의 청춘을 잡아먹은 거악의 존재(군부)와 이들에 대한 투쟁으로부터 나왔다고 한다.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던 시절에 혁명 수준으로 저항을 하다 보니 뇌가 이성이 아닌 이분법의 피아 구분 도식에 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투쟁이 얼마나 처절했다고 한들, 그것이 (5.18 잠시를 제외하곤) 내전의 범주에까지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내전과 정상 정치 사이의 어딘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만큼'의 생각의 장애를 남겼다면, 이성을 갉아먹는 정신적 외상을 남겼다면 시리아 수준의 내전이 남길 정신적 외상과 이로 인한 이성의 붕괴는 어느 정도의 레벨일까? 가히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오늘날 많은 내전 워너비들은 말한다. "쟤들이랑은 도무지 논리적인 소통이 안돼!"
민주화가 된 지 30년이 넘었는데도 이 정도일진대 내전이 일어난다면 사람들의 사고능력은 어떻게 될까? 10년 가까운 시간을 이분법 피아 구분의 도식과 상대에 대한 공포&증오만을 품고 살았던 사람의 뇌구조는 어떻게 변하게 될까? 그런 내전이 끝난다면, 그렇게 한번 상실된 사회적 이성이 다시 제자리를 찾는 데는 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게 될까?
+정말 내전을 하고자 한다면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남은 돈과 가족들을 해외로 빼돌려놔라. 당신 역시 수틀리면 언제든지 외국으로 빠 저나 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두라.
모든 계획은 틀어지기 마련이다. 최악을 상황을 대비해 언제든지 깨물 수 있도록 청산가리 캡슐 하나를 호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한다. 내전 중엔 언제나 전문적인 납치꾼들이 돌아다닌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