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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Sep 08. 2023

알프레드 대왕과 독립군

물적 유산의 계승과 정신적 기념의 차이를 모르는 불쌍한 우익우파

*생일 축하를 해 준 이들 중 우익우파도 있고 해서 육사 흉상건으로 우익우파 그만 때리려 했는데 암만 생각해도 넘 괘씸하여 딱 한 번만 더 깜.


11세기 유럽. 프랑스 노르망디의 대공이었던 윌리엄은 군대를 몰고 영불해협을 건너가 영국(잉글랜드)을 점령한다. 그때까지 영국을 다스려오던 앵글로 색슨계 지도자들은 전부 도륙을 당했으며, 그 빈자리는 프랑스에서 건너온 프랑스계 귀족들로 탈바꿈되었다.


한족을 복속시켰으나 문화적으로는 한족에 역흡수당한 청나라 만주족과는 다르게 중세 유럽 프랑스는 변방 깡촌 섬나라 영국보다 문화적으로 훨씬 앞선 선진국이었기에, 종래의 '낙후된' 앵글로 색슨 문화는 유무형의 탄압 속에서 빠르게 소멸되었고 영국은 그렇게 프랑스화 되었다. 우리가 지금 '영어'라는 이름으로 배우고 있는 언어는 전체 어휘의 80%가 프랑스어에 의해 오염된 근본없는 언어이며, 프랑스 침공 이전의 '정통 영어'가 어떻게 생겨먹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그 영국은, 그렇게 중세 프랑스 총독부(?)의 식민통치(?) 하에서 기틀을 잡아 내려온 나라인 것이다.


위대한 색슨왕 알프레드의 물적 유산은 그렇게 윌리엄과 프랑스의 침공으로 끝장이 났다. 하지만 오늘날까지도 영국(잉글랜드)인들은 자신들이 앵글로 색슨족이며, 위대한 알프레드대왕의 후예라고 주장한다. 이는 논리적 모순인가? 알프레드 대왕의 물적 유산들이 윌리엄 프랑스의 침공으로 단절되었고 '프랑스 침략자' 윌리엄과 그 후예들의 물적 기반이 오늘날 영국으로 계승되어 내려오고 있는데, 이를 이 악물고 무시하면서 끝끝내 자신들을 '앵글로 색슨 알프레드 대왕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영국인들을, 우리는 우습다고 말해야 할까?





루마니아라는 나라가 있다. 원어 그대로 해석하자면, '로마인들의 땅'이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물리물질적으로 냉정하게 말해서, 로마제국이 그 지역을 통치했던 건 2세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 지역에 식민지를 건설했던 로마인들은, 그러나 방어가 여의치 않아 2세기 만에 물러났던 것이다. 그런 루마니아에서 지금까지 계승되는 로마의 물적 유산이랄 게 있어봐야 얼마나 있겠는가? 루마니아보다 훠얼씬 오래 복속되었던 이탈리아나 프랑스, 스페인만 할까? 그럼에도 루마니아 인들은 자신들이 로마인의 후손이라는 생각을 꿋꿋하게 유지하고 있다.


역사가 1000년이 넘는 나라 중, 물적 유산이 계승되어 온 계보와 그들이 정신적으로 기념하는 계보가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전무하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전부 다 무덤 속 백골이 진토 되다 못해 가루로 빻아져 애저녘에 강물로 쓸려 내려간 어떤 위대한 군주 내지 대장군들의 계보를 정신적으로 계승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논리적으로 옳지 못한 주장이니 잘못되었다고 해야 하는가?




현대 한국이라는 나라는 누구를 계승하는가? 물리물질적이고 실질적인 물적 유산의 계승으로만 따지자면, 한국은 지난 반세기 남짓한 시간 동안 무에서 유로 창조된 근대화 국가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일제시대와 625라는 전무후무한 대격변 속에서, 수천 년간 이 땅에 계승되어 왔던 물적유산들은 완벽하게 쓸려나가게 되고 나라의 문명 수준은 신석기 급으로 퇴화되고야 만다.(다들 625 전쟁의 지도를 보았을 것이다. 저 아래 낙동강 하구에서부터 저 위의 압록강까지, 전 한반도의 90%가 화마에 휩슬리며 주인이 바뀌는 경험을 했다.)


이렇게, 구 시대로부터 계승되는 잔재가 완벽하게 소멸된 신석기사회 위에서, 한국은 미쿸을 기반으로 한 성공적인 근대화 국가를 완전히 새롭게 쌓아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아닌 게 아니라 이 '초토화'는 한국의 성공적인 근대화 이유로 꼽힌다. 한국만큼 처참한 초토화의 역사를 겪지 않은 다른 제3세계 국가들은 전근대의 유산들이 지워지지 않고 계승되는 통에 근대화가 '한국만큼'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다.)


다시 말 하지만, '근대화 국가 한국'의 많은 물적기반들은 그 이전 단계인 전근대 조선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채 625 전쟁과 그 후 재건기간을 거치며 미쿸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계승되어 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이전 한반도 국가들이 아니라 미쿸을 정신적으로 기념해야 하는가? 고려나 조선이 아닌 미쿸과 워싱턴을 기념해야 하는가?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이 아닌, 조지 워싱턴 내지 에이브러햄 링컨을 기념해야 하는가?




이번 홍범도 흉상 난동 사태 속에서 우익우파들이 주장했던 바들을 복기해 보자면, 마땅히 그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현대 한국군의 물적기반엔 독립-광복군으로부터 계승되는 부분이 거의 없으며, 거의 다 625 전쟁기간 중 이승만정권과 미쿸에 의해 생성/계승되고 있음을 퍽 자랑스럽게 주장했으니 말이다. 현대 한국군 물적 기반의 99%가 광복군이 아닌 미쿸과 이승만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1%도 반영되지 않은 독립군의 계보를 한국군이 왜 기념해야 하냐고 말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영국으로 가서, 버킹엄궁을 지키는 친위병들에게 다가가 "느그들은 프랑스 식민통치의 후예들인데 왜 그 물적 유산이 단절되다 못해 가루로 빻아져 하수도에 뿌려진 지 오래인 알프레드대왕을 계승한다고 되지도 않는 개드립을 치냐며 근엄한 일갈을 날리고 오시면 된다. 그리고 루마니아에 가서는 나라이름으로 되도 않는 개드립 좀 그만 치시라고 전해라.  


그러면 나도 "현대 한국군은 독립-광복군을 계승하지 않는다."라는 느그들의 주장을 조금은 더 진지하게 고려해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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