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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Sep 12. 2023

동양의 자유, 서양의 자유

엉터리 자유라도 없는 것 보다야.

서양을 디폴트값으로 놓고 동양을 이에 대한 대립항으로 만들어 더 열등한, 혹은 더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부여하는 오리엔탈리즘은 매 시대마다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 왔는데, 그 최신 버전은 작금 푸틴 두긴 러시아를 통해 많이 퍼져나가고 있다. 


"서양은 근대 이후 자유와 해방을 너무 추구하다 보니 방탕한 섹스에 찌들어 타락하게 되었는데 동양은 전근대 왕조질서, 권위주의, 보수주의 성향이 강해서 이러한 타락에 물들지 않았다. 이제 그 동양이 러시아 푸틴정권을 중심으로 하나로 뭉쳐 저 더러운 서양 리버럴 타락으로부터 세계를 지켜내야만 한다!"


물론 다른 버전의 오리엔탈리즘들이 그러했듯 이 역시 엉터리 억지 인상비평으로 가득 차 있지만 말이다.

(애초에 '동양'을 제대로 이해하는 인간이 오리엔탈리즘 같은 걸 할 리가 없다. 그 어떤 버전이건, 동양에 대해 철~저하게 무지한 인간들만이 오리엔탈리즘을 추구한다. 동양을 몰라야 가능한 근본 없는 사상이란 말이다.)


지금 반미주의자들이 밀고 있는 저 담론의 가장 심각한 결함은, '자유와 해방'이라는 테마를 오직 근대 서양의 산물로 가정한다는 것이다. 



사실 동양에는 2500년 전부터 자유와 해방이라는 개념이 존재하고 있었다.(용어는 조금 다를지라도..) 불가와 도가사상에서 특히 이를 추구했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상태를 의미하며 도가 사상에서 역시 아무것도 집착할 게 없는 자유로운 상태를 소위 득도한 신선이라 해서 예찬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개념들은 근대 이후 서양의 자유주의 학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는데, 특히 열반이라는 개념은 68 혁명 당시 신좌파 히피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너바나. 뉴에이지.


문제는 그러한 '동양식 자유'를 양놈들이 엉터리로 오해하고 개판으로 해석해 놓았다는 거.

쨋든 서양인들이 추구하는 근대적 자유와 동양에서 수 천년 전부터 추구해 오던 자유에는 분명 차이가 존재하긴 한다.




서양의 자유는 철저하게 '외압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게 막는 그 어떤 외압도 존재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당연히 국가권력, 왕실, 독재자 등이 제1표적이 되었고, 더 나가아 가부장제와 전통적 가족제도 역시 개개인의 다양한 성선택을 막는다며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좌파 자유주의에서는 시장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격차 역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장애물이라 여겨 극복의 대상으로 여긴다.

그리고 모두 방탕한 섹스를 즐기는 거지ㅇㅇ


동양의 자유 역시 '외압'을 부정적으로 여기긴 했다. 하지만 동양사상(불가, 도가)에선 진정한 해방상태에 이르기 위해 외압보다 더 중요한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고 여겼는데, 그건 바로 '내적욕망'이었다. 서양의 자유주의에선 극도로 추구해야 한다고 보았던 인간의 내적 욕구, 욕망들이 동양에선 '진정한 자유'에 이름을 방해하는 가장 극악한 장애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성욕'을 놓고 보자. 

서양의 자유주의에선 개개인이 자신의 성욕을 무제한으로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사람이 성욕을 무제한으로 추구하다 보면 금전적 손실을, 더 나아가 건강까지 상실하게 된다.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아니, 멀리 갈 것 없이 그냥 성욕에 찌들고 굶주려 있는 상태 그 자체가 사람에게 고통으로 다가온다. 저기 저 지나가는 여인의 자태가 너무나 매혹적이라 번뇌가 끝없이 일어나는데 정작 현실의 나는 저 여인에게 손도 댈 수 없으니 이 어찌 고통이 아니라 할 것인가! 결국 '성욕'의 존재로 인해 인간은 부자유스러운 상태를 스스로에게 강제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동양의 '자유'에선 뼈와 살을 깎는 금욕수행을 통해 성욕을, 더 나아가 모든 욕구와 욕망을 내려놓을 것을 제안했던 것.   

 


종국에 인간은 그 어떤 것도 추구하지 않는 궁극의 자유 상태가 된다. 이런들 어떠하고 또 저런들 어떠하리. 결국 삶과 죽음에 대해서 조차 초연해져 죽어도 상관없는 상태에 임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열반이며, 도가에서 말하는 신선의 경지였던 것이다.

(분명히 말 하지만, 자/살과는 다르다. 자살은 현세의 고통으로부터 회피하고자 하는 '욕구'의 표출이기 때문. 열반은 "죽고 싶다."가 아니라 "죽어도 상관없고 살아도 상관없다."이다.)




누차 반복하는 이야기지만, 양놈 리버럴들이 '자유'를 망쳐놓은 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자유로운 상태'라는 형상화 할 수 없는 개념을 '무절제한 섹스'라는 고정된 형태로 형상화해 새로운 우상으로 만들고, 그 우상을 정신문화관념적으로 사람들에게 강제(?)하면서 이게 사람들의 삶 속에 또 다른 외압으로 작동하게 되는("아, 남들은 다 연애하고 섹스하고 살아가는데 나만 그렇게 못 하고 있어서 너무 고민이야ㅠㅠ 나도 빨리 '더 많이 섹스하는 삶'을 쟁취해서 남들의 무시와 모멸로부터 벗어나야 할 텐데 너무 고통스럽다.ㅠㅠ") 이 형용모순의 수레바퀴는 그 자체로 한 편의 거대한 블랙코미디라 할 것이다.


하지만

서양놈들의 자유가 동양의 수천 년 된 위대한 자유개념을 오독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런 오독된 자유조차 없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양 리버럴 놈들이 망처 놓은 자유라 해도, 자유와 해방이라는 개념 그 차제를 부정하는 푸틴 전체주의자들보단 나은 것이다.


리버럴 양놈들이 팔아먹는 자유가 오독된 쓰레기라 한들, 그 오독을 극복해 더 좋은 자유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아예 극도의 억압으로 돌아가 고통받으며 살자는 그런 SM플레이가 어떻게 새로운 세상의 대안이 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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