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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과 가격에 관한 오래된 거짓말

시장쟁이들의 거짓말 장치들

by 박세환

시장 쟁이들이 퍼뜨리는 거짓말 중에는 "한 사회집단 내에서 특정 재화나 서비스의 수량이 많아지면 희소가치 하락으로 인해 그것의 가격이 떨어지게 된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를테면, 한 사회 내에서 포도의 수량이 많아지면 포도의 가격은 떨어지게 된다는 것. 그러나 이것은 정확한 분석이 아니다.


세상에 재화와 서비스가 A와 B 두 가지밖에 없고, A 한 개는 B 한 개로 교환된다고 하자. 이 상황에서 생산기술 개선으로 인해 A의 물리량이 두배로 폭증해 버릴 경우, (다른 변수가 없을 시) 희소가치 변동으로 인해 A의 교환비는 절반으로 떨어져야만 한다(2A = 1B). 이것이 주류적인 설명이다.


실재론 그렇지 않다. 실재 재화 서비스의 가치는 시장에서 발생하는 무수한 줄다리기의 결과로써 발생하며, 각 재화 서비스의 공급주체들은 자신들이 생산하는 재화&서비스가 시장에서 더욱 높은 가격을(교환비를) 얻기 바란다.

재화 B를 생산, 공급하는 업자들은 B가 더 높은 교환비를 얻길 바란다.(1.5A=1B 이상) 그러나 A 업자들은 1B 당 1A 이상 교환해주려 하지 않는다.


A 업자들과 B업자들 간에 가격 줄다리기가 발생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더 오래 버티는 측이 이기기 마련이다. 먼저 쪼들리는 쪽이 진다. 이 과정에서 일반적인 전쟁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난다. 대가릿 수가 많은 쪽이 먼저 무너지는 것이다!


같은 재화의 공급업자가 많이 있을 경우, 그중엔 반~드시 "상황이 좀 더 쪼들리는 주체"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 쪼들리는 주체는 결국 자기 재화의 가격(교환비)을 낮추는 것에 합의하고 먼저 거래를 성사시켜버리려 한다. 소위 말하는 '가격 카르텔'은 그렇게 무너진다.

가격 카르텔은 머릿수가 많을수록 잘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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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 들었던 경제학 수업에서 교수님은 항상 학생들에게 딜을 걸곤 하셨다.


"너희들이 모두 합의하여 과제를 단체로 포기한다면 나는 너희들에게 공평한 B학점을 나누어주겠다. 그러나 만일 단 한 명의 카르텔 이탈자라도 나타나서 과제를 제출하기만 한다면, 나는 제출자에게 후한 학점을, 남은 이들에겐 F를 주겠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과제 안 하기 카르텔"은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고 한다.

만약 강의를 듣는 학생이 두어명즘 밖에 안된다면 그 카르텔은 성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30명만 되어도, 그런 카르텔은 달성되기 어렵다.



A 공급업자가 100명인데 B 공급업자는 10명뿐이라면, 이런 시장 속에서의 가격 경쟁은 반드시 B 쪽의 승리로만 끝날 수밖에 없다. 100명보단 10명 쪽의 가격 카르텔이 오래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재화 A, B의 절대량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A공급업자가 100명인데 B공급업자가 단 한 명, 독점 상태라면, 재화 A B의 절대 수량과는 상관없이 가격경쟁은 언제나 B 쪽의 승리로 끝날 수밖에 없다. 100명 중엔 항상 "조금 더 쪼들리는 주체"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선 재화 B의 물리량이 아무리 증가해도 재화 B의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다. 당연히 이것은 전통적 희소성 원리로는 아예 설명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B의 가격이 떨어지려면 재화 B의 물리량이 아닌, 공급자가 증가해야만 한다. 간단하게 재화 B의 독점 구도가 깨져야만 한다고. 독점구도가 깨져서 재화 B의 공급주체가 5개로 늘어난다면, 전체 재화 B의 물리량이 감소한다 하더라도 B의 가격은 떨어진다. 그리고 이는 전통적 희소성 원리에 위배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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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량이 늘어나면 노동계층의 화폐 소득도 증가한다."가 매번 실패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화폐량 증가가 잘못이 아니라 증가되는 화폐를 소수 주체가 독점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화폐량은 증가했지만 그 증가분의 대부분을 이거늬랑 태워니가 일방적으로 선취해버렸기 때문에 화폐 증가분만큼의 노동계층 소득 향상은 일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이 부분을 해결하려는 기획중 하나가 기본소득)


+시장쟁이들은 독과점의 폐단을 숨기기 위해 이 부분을 의도적으로 회피한다.


++초반에 언급한 포도의 경우는 공급주체의 독점 여부와 상관없이 희소성 원리에 의해 절대량 증가가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왜냐면 포도는 쉽게 상해서 보관이 어렵거든. (독점이건 아니건) 공급자는 보유한 포도를 빨리 처분해야만 한다.

그러나 포도와 달리, 감가상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재화&서비스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화폐&부동산이 이 범주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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