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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Nov 03. 2023

대리운전 손놈과 손님

또 다시 하루를 살아가는 힘

대리기사를 부르는 악질 손놈 유형 중 하나가 다중계약이다. 간단하게, 대리기사부터 택시까지 여러 콜을 중복으로 올려놨다가 게 중 가장 먼저 도착하는 기사를 잡아 타고 나머지는 그냥 쌩까버리는 거ㅇㅇ


번화가에서 '당했'을 땐 그나마 상황이 낫다. 바로 다른 고객을 잡을 수 있으니까. 문제는 후미진 외지일 경우이다. 버스도 거의 없는 외지길을 낑낑거리면서 달려갔는데 이걸 '당해'버릴 경우, 기사는 한 시간이 넘는 타임을 그냥 날려버리게 된다. 




"아, 저는 그냥 택시 타고 갈 생각이었는데 실수로 대리기사 쪽에도 신청이 걸려버렸나 보네요^^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ㅎㅎㅈㅅ;;"


이미 한 번 취소를 당해 시무룩 한 중에, 애써 하나 잡은 고객 모시러 간답시고 공용 킥보드 타고 장장 이십 분 외지길을 달려갔는데 또다시 이 딴 소리를 들었을 때 내 기분. '그냥 끊자'라는 생각이 혓바닥에 올라오는 개 쌍욕을 실로 간발의 차로 앞지르는 바람에 전화를 그냥 끊어버렸는데 그게 잘한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찝찝한 기분을 뒤로하고 투덜거리면서 다시 씽씽이 끌고 돌아가다 핸들 잘못 꺾어 바닥에 자빠지고 무르팍 찍어 피까지 났다. 지나가던 아지매가 측은하게 바라보면서 "거 괜찮아요?" 하는데 "뭐, 그냥 괜찮습니다." 답 하면서도 설움이 치밀어. 인생이 뭐길래 나는 오늘도 아픈 몸 이끌고 나와서 이 고생인 걸까..


여튼 그렇게 최종 두 시간을 공치다 간신히 잡은 다음 고객. 원래 고객장소까지 20분이 넘을 상황이면 다른 기사에게 넘기는 게 불문율인데, 두 번 연짱으로 취소당한 게 너무 억울해서 무리를 해 내가 잡았더랬다. 사실 이러면 기다리는 고객한테는 실례거든. 


이십여분을 낑낑거리면서 간신히 가서 주행을 완료했는데, 이 고객분은 화가 나기보단 내 상황이 안쓰러웠는지 만원 추가 금액을 더 주고 귤 두 방울 더 얹혀주더랬다. 그리고 웃으면서 힘 내시라고. 


...이런 배려 한 점으로 하루를 더 버텨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올리려던 짤방도 피 흘리는 무르팍에서 찬 바람 속 따스한(?) 귤 두 점으로 바뀌었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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