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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Dec 14. 2023

'서울의 봄'과 금기시된 정서

'민주진보'가 한동안 놓치고 있던 지점들

<서울의 봄>은 분명 '민주진보적인 소재'를 다룬 영화다. 문화계의 흐름이 정치계의 흐름과 완벽하게 독립적일 수 있음을 믿는 순진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다들 이를 어느 정도는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민주진보 영화'라고 퉁 치고 넘어가기엔 다소 흥미로운 지점들이 있다. 간단하게, 이 영화가 대중들에게 호소를 하는 방식은 종래 다른 민주진보물들의 그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기존의 민주진보 느낌'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면 어떤 요소들이 들어있어야 할까?


1. '도도한 센 언니' 스타일의 제멋대로 이태신 아내

2. 부하에겐 엄격하면서도 부부사이에서 만큼은 이 '센 언니' 앞에 그저 '저밤저' 해주는 남편 이태신

3. 그런데 어느 날 부인이 우연찮게 마주친 전두광에게 부당한 처사를 당함

4. 정치도, 사실 군사도 사실 별 관심 없던 이태신, 갑자기 '센 남자'로 돌변


 "전두광. 네놈이 안보보다 정치에 더 관심이 많고 권력을 탐하며 나라를 훔치려들 건 말건 난 상관없어. 하지만.. 하지만 내 사랑하는 XX 이를 그따위로 취급하는 것만큼은.. 남자로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단 말이다!"


5. 여자들의 잡담, 주로 남편과 여타 남자들을 소재로 한 잡담을 다루는 비중이 40% 이상


익살스럽게 말해 보았지만, 오늘날 대중의 뇌리에 각인 '민주진보틱한? 스토리텔링 이미지'를 다소 과장되게 표현해 보자면 대강 저런 느낌이다.




하지만 '서울의 봄'에는 그런 거 일절 없다! 이태신의 아내가 나오긴 하는데 '전형적인 그 시대 현모양처' 스타일로 나오며, 그 마저도 거의 비중이 없다. 페미 입장에선 분명 고까울 수도 있으리라.



영화는 시종일관 관객의 '남성'에 호소한다. 충성, 복종, 조국, 안보, 군인, 사명, 고독, 그리고 거친 싸나이들의 의리를 보여준다. 주인공 일행이 '악당 전두광'에게 맞서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군인이고 그것이 의리이며 또한 충성과 애국이기 때문인 것이다. 다들 알겠지만 오랫동안 민주진보가 금기시해 왔던 그런 정서와 가치들이다.


특히 많은 이들이 마지막 엔딩부와 크레딧에서 나왔던 군가 '전선을 간다.'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https://www.youtube.com/watch?v=wWAYD1qJysg&list=RDwWAYD1qJysg&start_radio=1


사실 '어떤 민주진보(ex : NL)들'이 그간 '서구 제국주의 침략의 앞잡이 괴뢰 남조선 군대'를 금기시해왔음을 떠올려볼 때, 대한민국 군대의 군가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노래를 '민주진보 영화'의 엔딩부에 삽입한 건 이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상징적인 지점이 아닐까 한다.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지금 영화는 누적관객 755만 명을 기록 중인데 이 관객의 절반은 소위 말하는 MZ이다. 평점은 네이버기준 9.5점. 관객 전 연령대에 걸쳐 특별히 빠지는 데 없이 그러하다. 이러한 상황으로 볼 때, 일부 우익우파들이 이 악물고 진행한 '서울의 봄 안티 프로젝트'는 유감스럽게도 실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전반적인 정서적 기조와 작금의 흥행상은, 그간 민주진보진영이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해 주는 것이다.


+일전에 호평했던 '고려거란전쟁'도 그렇고, 방송 문화계에서 한동안 볼 수 없었던 어떤 정서들이 되돌아오는 것 같아서 무척 반갑다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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