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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Dec 22. 2023

영화 '나폴레옹'

뭔가 포커싱을 잘못 한 듯..?

"소재가 무려 '나폴레옹'인데 어떻게 영화가 재미없을 수 있지?"


12월 초, '서울의 봄'과 거의 유사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 '나폴레옹'이 예상밖 졸작이라는 악평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고서, 호기심을 참을 수 없어 영화관으로 발길을 옮겼더랬다. 그렇게 감상을 했는데,


.. 일전에 필자가 "만약 서울의 봄이 이렇게 나왔다면 망했을 것이다."라고 빈정거렸던 '민주진보적 정서' 있잖아? '서울의 봄'이 아니라 '나폴레옹'이 좀 그렇더라고ㅇㅇ




사실 그래. 섬구석 촌동네에서 파리와 모스크바를 거쳐 대서양 한가운데 세인트헬레나까지 이어진, 코르시카 촌뜨기에서 유럽의 황제까지 나아가는 나폴레옹의 삶이란 워낙에 파란만장하기에 사실 3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을 다 동원해도 그 삶의 전부를 다룬다는 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방대한 소재로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이라면 마땅히 관점을 축소해야만 한다. 나폴레옹의 '정치'에 관점을 맞추던가, 그 압도적인 군재에 임팩트를 준다던가, 아니면 인간관계 위주로 썰을 풀어나가던가.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 영화 역시 특정 영역 하나에 포커스를 맞추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을 취하긴 했는데, 그렇게 선정된 게 바로 '나폴레옹과 황후 조세핀의 알콩달콩 사랑이야기'이다. 이 즘 되면 대충 감들이 오실는지..??



나폴레옹의 사랑 황후 조세핀은 제멋대로 엉망진창 센 언니의 전형에다 나폴레옹은 그녀를 향한 사랑의 포로로 나오는데 사실 이게 역사적 고증이기도 해서 할 말은 없다. 둘의 알콩달콩 러브스토리에 너무 비중을 두다 보니 사람들이 보통 더 관심을 가지게 되는 다른 분야, 정치나 군사가 터무니없이 축소되서 그렇지.


이집트 원정, 쿠데타와 권력탈취, 황제 즉위, 연합군과의 일전, 러시아 원정, 엘베섬 유배, 탈출 및 정권 재획득, 워털루와 몰락, 이 모든 이야기들이

나폴레옹을 잘 아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너무나 얕고 피상적인 수준으로

나폴레옹을 잘 모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너무나 바쁘게 정신없이

휙휙 지나가버린다.


트라팔가와 스페인 침공은 대사 한 줄도 없이 깔끔하게 '삭제'됬는데

조세핀이랑 '분가분가' 하는 장면은 쓸데없이 많이 보여준다ㅇㅇ


아니, 이집트에서의 갑작스러운 철수와 엘베섬 탈출을 '조세핀 다시 보고 싶어서 그랬던 것'으로 퉁친 건 그렇게 쳐도

나폴레옹 하면 다들 떠 올리는 저 저명한 이탈리아 원정을 대사 하나로 치워 넘긴 건 촘 너무하지 않나?



보급도 안되고 사기도 바닥인 오합지졸의 무리를 가로질러 나온 코르시카 촌뜨기가 "나를 따르면 누구든 이탈리아 파스타를 배 터지게 먹게 해 주마!"라고 외치고, 그렇게 한니발 이후 두 번째로 알프스를 넘으며 또 위의 근사한 그림 한 점과 함께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명언을 남기는 상황을 어떻게 그냥 스킵할 수가 있는가. 나폴레옹의 전설이 어떻게 시작되었는데..!


고려거란전쟁에서 왕의 명을 받은 강감찬이 각 잡고 갑옷을 걸치면서 전의를 다시다가 검은 화면으로 바뀌고, "그날 강감찬은 그렇게 귀주에서 거란군 주력을 맞아 열심히 싸워 그들을 격파하였다."라고 대사 한 줄 뜨고 끝나면 사람들이 폭동 일으키지 않을까?


+뭐 그래도 아예 눈이 썩을 졸작까지는 아니긴 하다. 기대에 못 미쳐서 그렇지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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