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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Jan 23. 2024

대리운전 이야기 - 경유 진상

호의를 권리로 아는 자들.

대리운전의 목적지가 하나가 아닐 때, 최종 목적지 이전에 들려야 할 곳이 또 있을 때, 이를 '경유'라고 한다. '경유'가 있을 경우, 대리기사를 부르는 고객은 사전에 이를 공지하여야 하며, 경유지를 돌아가는 추가적인 시간/거리분을 감안한 금액을 책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기사 요청에 '경유'가 찍혀있을 경우 대리기사들이 이를 기피하는 풍조가 생겼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필자가 대리를 뛰기 전부터 생긴 풍조라..


문제는, 사전에 '경유'를 공지할 경우 기사가 잡히질 않기 때문에 고객들도 이 '경유'를 기피하는 현상이 생겼다는 것이다. 진짜로 '경유'를 안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는 경유가 있음에도 기사가 도착할 때까지 말을 안 하고 있다가 나중에 스리슬쩍 요구한다.


"거, 뒷좌석에 앉아있는 내 친구가 이 근처에 사는데 잠깐만 우회전해서 저짜로 들어갔다가 친구 좀 내려주고 다시 갑시다."


이렇게 되면 경유하는 위치가 멀건 가깝건, 기사는 주행의 시공간적 길이가 늘어나는 상황을 얼떨결에 감내해야만 한다. 당초 시간 예상이 틀어지는 것 자체로도 이미 불쾌한 일이며(대중교통 막차시간을 아슬아슬하게 염두에 뒀을 경우, 마지못해 택시를 타야 하는 참극이 발생하기도 한다.;;) 애써 고객한테 뒤늦게 추가운임을 요구하며 실랑이를 해야 한다는 점은 더욱 껄끄럽다.


"저.. 이런 말씀드리기 좀 죄송하지만.. 그렇게 하시면 주행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추가 요금을 주셔야 합니다."


이렇게 말했다가 고객 표정 일그러지는 게 보기 싫기 때문에 종종 이렇게 첨언하기도 한다.


"그 추가 요금은 뭐.. 그냥 별 다섯 개 추천 한 번 눌러주시는 걸로 대신하겠습니다."


사실 이건 기사가 양보를 해 주는 거라 보아야 한다. 원래는 돈 받아야 하는데 안 받고 그냥 서비스로 해주겠다는 거니까. 그런데


.. 집에 와서 보니까 별점테러와 차단이 박혀 있었다..


거 돈 없어서 두 명치 이동을 한 명 값으로 끝내려고 눈치껏 가고 있는 건데 애써 까칠하게 추가운임 이야기 꺼내면서 자기 찐빠 준 게 내심 괘씸했다는 거지ㅇㅇ 자존심 상하게 꼭 그딴 얘기를 면전에서 꺼내야 하냐는 거지. 꼴랑 두 블록 더 돌아가는 건데.


그런데 있잖아요. 도심주행에선 두 블록 세 블록만 돌아가도 10분 15분이 더 늘어져요.. 모퉁이 한 번 돌 때마다 신호 받아야 하니까. 고속도로라면 5km 즘 더 내달려도 티가 안 나겠지. 그런데 도심주행에선 이야기가 완전 다르다 이거야. 그리고 15분이 더 늘어나면 기사 입장에선 20000원짜리 주행을 연달아 한 번 더 하는 거라고요. 근데 그걸 돈 안 받고 그냥 별 다섯 개 한 번 찍어주는 걸로 서비스해 준다 한 건데 그게 그렇게 억울했나보다.


+이런 상황이 한 번만 있었던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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