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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들의 혁명 2

여성의 해방과 남성의 해방

by 박세환

새로운 세대(이를테면 지금 우리들)는 '바람직한 새 교육 '을 받았다. 새 교육을 받은 우리는 '정절을 잃은 여성'을 무시하거나 힐난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만일 이것을 따르지 않는 이가 있다면, 그는 아마도 주변으로부터 "전근대적 사회에서 정절을 잃은 여자들이 받아야만 했던 그 대접"을 대신 받게 될 것이다.


'여성의 성'은 그렇게 해방되었다.


여성의 해방은, 그 여성 중에서도 가장 혐오받던 이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 과정이 오늘날의 '찐'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으리라 본다. 바야흐로 '찐 해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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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이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몸이 약하거나, 겁이 많다거나, 못생겼거나, 말이 어눌하거나, 눈치가 없거나, 한 가지 취미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성향이라던가, 정말 별 문제없었는데 어쩌나 잘 나가는 인싸놈들과의 관계가 틀어져 먹잇감으로 전락했다던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으나 한 가지는 분명한데 자기가 원해서 그리 되는 놈은 없다는 것이고, 죄를 지어서 그렇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명백한 사회의 '피해자'들인데도 사회는 이들을 혐오스럽게 생각하며, 여성의 패배와 좌절보다 남성의 패배와 좌절을 더 죄악시 여기는 가부장적 풍조 때문에 그 고통은 보통 남자'찐'쪽이 훨씬 더 심하다.


혐오를 하고 싶은데 혐오의 근거가 없으면 애매하니까 사람들은 그 근거를 애써 만들어낸다. 이를테면, 비록 무시하고 괴롭힌 게 남이라 할지라도, 본인 스스로 보다 인싸스럽게 보이기 위해 노오오오오오력을 했어야만 했다는 식이다. 태권도라도 배워서 싸움실력도 키우고, 집 밖으로 나와 사람도 만나고, 외모도 좀 가꾸고, 패션도 좀 신경 써야만 했다는 등 블라블라. 어찌 되었건 때린 나의 잘못이 아닌 맞은 너의 잘못^오^.


그것이 정당한 이유가 되건 안되건, 어쨌건 '우리들'은 평생 동안 그렇게 모멸과 멸시 속에서 수치스럽고 굴욕적인 삶을 살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우리 '찐'들은 이제 '몸이 더럽혀진 여자들'이 걸어갔던 그 길을 뒤따라 가야만 한다.
사람들이 애써 말하려 하지 않는 지점을 들추고 찌르는 것으로 우리의 여정을 시작해야만 한다.


우리는 가해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우리는 약자였고 피해자였던 것이다! 우리는 약자이고 피해자였을 뿐인데, 어째서 가해자들보다도 더 혐오받고 외면받아야만 하는가?!


물론 '찐'이라는 것을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으로 여기는 동세대의 많은 이웃(?)들이 우리를 적대시하고 억압하려 들 것이다. 그들은 기껏해야 자신들의 술자리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즐거운 먹잇감에 불구했던 천민들이 자신들을 향해 항의를 퍼붓는 이 상황을 무척이나 고깝게 여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신경 쓰지 말지어다. '몸이 더럽혀진 여자들'이 처음으로 저항의 깃발을 들었을 때, 그들의 구 세대 동년배들 역시 같은 반응을 보였으니 말이다. 오늘날 그들 대부분은 차디찬 무덤 속에서 속절없이 썩어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들의 목소리를 애써 비웃으려고 하는 이들 역시 조만간 그리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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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부터라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새로운 세대(우리 이후의 세대)는 '바람직한 새 교육 '을 받게 될 것이다. 새 교육을 받은 후손들은 '찐'들을 무시하거나 힐난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만일 그것을 따르지 않는 이가 있다면, 그는 아마 주변으로부터 "지금 시대 찐들이 받고 있는 그 대접"을 대신 감당해야만 할 것이다.

'찐들의 삶'은 그렇게 차츰 해방되어 갈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것은, 오랫동안 신좌파 스피커들로부터 죄의식을 강요받아온 남성 전체의 해방으로 이어질 것이다.


트럼프 당선, 브렉시트, 대안 우파의 범 세계적인 창궐, 노란 조끼, 그리고 영화 '조커'까지. 이제 나는 한때 우리를 비웃었던 사람들의 눈에서 공포가 자라나는 것을 본다. 아, 누차 말 하지만 그 공포는 지극히 합리적인 것이기도 하다!



물론 페미니즘이 우리에게 모든 면에서 긍정적인 루트를 제시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지금 그들은 너무 폭주하고 있다. 폭주했기 때문에 대중의 지지 역시 다시 상실해가는 중이다. 우리는 그러한 우를 범해선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어선 안 되는 것은, 그들이 지난 세기에 이룬 많은 것들 중 상당수는 "바람직했다."는 것이다. 적어도, 강간당한 여자가 강간범보다 더 혐오받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도식은 이제 우리(찐)에게도 적용되야만 한다.


"나 같은 사람을 계속 그렇게 무시하려 했다간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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