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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May 18. 2020

왜 기본소득이어야 하는가? 1

왜 현금 살포를 하는가?

완전한 자유시장을 거부하며, 정부에 의한 재분배 개입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한 상황에서라도 "어떤 방식의 개입과 재분배가 바람직한가?"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여기엔 다양한 이견이 있을 수 있는데 필자는 기본소득 지지자로서 어째서 기본소득이 가장 바람직한 재분배의 형태인지를 간략하게 설명해 보고자 한다.  


다른 형식의 재분배와 구분되는, 기본소득만의 명확한 특징을 집어보자면 크게 다음의 두 가지를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1. 대상자에게, 정부에 의해 '구매된' 재화와 서비스가 아닌 현금을 지급함으로써 대상자의 선택권을 최대한 존중한다. 

2. 특정 선별된 대상이 아닌 모든 시민을 복지의 대상으로 삼는다.

(청년 기본소득 내지 노인 기초연금의 경우는 비록 완전한 기본소득은 아니라 하더라도 대상자의 재화 서비스 선택권을 중시하며, 여타 선별적 복지에 비해 그 대상이 훨씬 광범위하다는 것을 고려하여 '기본소득형 복지'라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고로 위 두 가지 항목을 납득할 수 있다면, 기본소득 자체를 납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기본소득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위의 두 가지 특징은, 사실 굉장히 아이러니하게도 가능한 한 시장의 원리를, 그 장점을 유지하고자 하는 고민의 결과로써 나타난 것이기도 한데, 이는 기본소득이라면 그저 "빨갱이 정책"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다수 대중들이 잘 모르는 부분이기도 하다.


대상자에게 '(정부로부터) 구입된' 재화 서비스가 아닌 돈을 지불함으로써 대상자로 하여금 자신에게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당연히 '시장스러운' 방식이다. 

이는 단순히 대상자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중시함을 너머 이 과정을 정부에 맡겼을 시 발생할 수 있는 중간 손실(선택을 대리하는 별도의 공무원을 고용함으로써 발생하는 물적, 시간적 손실. 합법적, 불법적 측면에서 모두 발생한다.)을 최대한 방지하고자 함이기도 하다.


시장에서 경쟁을 겪지 않는 정부 주도 서비스의 놀라운 비효율을 논할 때 종종 언급되는 것이 바로 군대이다. 우리는 종종 수조 원을 투자(?)하고도 내무반 침상 하나도 제대로 교체하지 못한 국방부의 놀라운 무능력을 한탄하곤 한다. 이것은 구조 자체의 비효율성에 내부 비리가 합쳐진 결과물인데, 시장에서 경쟁을 겪을 필요가 없는 정부 관할 공공 집단의 흔하고 오래된 특징이기도 하다. 당연히 이는 국방부만의 문제가 아니며 정부가 주도하는 복지의 세계에서도 얼마든지 벌어지는 참극이다. 



정부는 백만 명의 대상자에게 십만 원어치의 재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복지 프로젝트를 발동하고 천억 원의 예산을 관련 부처에 전달하지만 각종 기관과 공무원 서류 결재 과정을 거치다 보면 실재 현장의 대상자에게 도달하는 재화 서비스의 가치는 채 일만 원어치가 안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이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비대한 공공기관 자체의 비효율로 갉아 먹혀들어가는 측면 + 관련 공무원과 연계를 맺고 있는 복지 재화 서비스 납품업계 비리의 결과물로, 당연히 이는 처음부터 대상자들에게 예산을 N빵 하여 뿌렸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손실이기도 하다. 

(복지를 비롯한 정부 주도의 사업에는 항상 여기에 기대어 먹고사는, "특화된 대감님"들이 존재하는데 많은 경우 이들은 비용 방만화의 원흉이 된다.) 



이재명이 왜 그렇게 적이 많은지 아는가? 적어도 이재명은 ‘그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정부사업에 빨대를 박아 넣고 자신의 배를 채우는 데 특화된 대감님들”을 대거 잘라냈다. 그렇게 남게 되는 돈으로 복지를 돌렸는데 당연히 그 복지는 엉뚱한 정부사업 프로젝트가 아닌, 그냥 돈을 왕창왕창 찔러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대상자들은 비로소 좌파들의 말뿐인 복지가 아닌, 내 호주머니로 들어오는 진짜 복지를 체험할 수 있었다. 아, 경험이란 실로 강력한 것이다! 내 호주머니로 직접 돈이 들어오는 이 강렬한 경험은 성과주의니 노력주의니 하는 공짜 복지에 대한 불편한 이론적 시각들을 일거에 침묵하게 만들었다. 궁극적으로 이는 이재명을 ‘복지’라는 수식어와 때어놓고는 언급할 수 없도록 만들어 주었다.


물론 반작용도 있었다. 태영건설과 같은 적이 생겨났으니까. 그간 정부사업에 기대어 먹고살았던 무수한 대감님들이 그의 치하에서 빈털터리가 되게 생겼는데 그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가 없다. 

정치가 이재명의 안티 형성에는 물론 이 밖에도 그의 개인적 성품이라던가 하는 다른 많은 문제들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측면 역시 있음을, 왜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N빵의 기본소득이 최고의 복지인지, 오죽하면 효율성에 목숨 거는 시장주의자들이 (어차피 복지를 해야만 한다면) 사업복지가 아닌 기본소득식 N빵 복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지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애써 신념적 자유지상주의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정부가 맨날 복지 한다 분배한다 그러면서 세금만 거두어가는데 정작 내게 돌아오는 게 없으니(복지 받으려면 관련 서류 책 한 권 분량으로 작성 해오라 그러고 정작 장석 해오면 틀렸으니 다시 해오라 그러고 다 맞추어 제출하면 석 달 뒤에 꼴랑 5만 원어치 복지 나오는데 "복지 한답시고 세금 거두는 좌파 놈들은 다 도둑놈!"이라는 소리가 안 나오냐?) 좌파 경제에 대한 불신이 달리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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