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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May 19. 2020

왜 기본소득이어야 하는가? 2

왜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가?

기본소득의 주요한 두 번째 특징은 "대상자를 가리지 않는 보편성"이다. 그리고 여기엔 항상 선별 주의자들의 반발이 따라붙곤 한다.


선별복지 주의자들은 항상 “왜 이재용한테도 기본소득을 주어야 하는가?”하고 반문하곤 한다. 차라리 그 역량을 기존 하위층에게 더욱 집중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누락되어있는 부분이 있는데, 보통 기본소득형 보편 복지사회에서 이재용들은 어차피 자신이 받게 되는 복지의 양만큼, 아니 그보다 훠얼씬 많은 양만큼을 세금으로 다시 빼앗기게 되어있다. 애당초 기본소득형 보편복지 사회에서 무수한 이재용들이 근거도 없이 국가로부터 이득을 받는다는 이야기는 얼토당토 없는 주장이란 것이다. 


그럼 또 볼멘소리들이 나올 것이다. “어차피 줬다가 뺏을 거면 애당초 왜 주나? 걍 애초에 주지를 말지.” 다시 말해서, 줬다가 뺏는 그 과정에서 또다시 공무상의 행정절차가 추가될 것이고 이는 불필요한 행정비용 낭비를 의미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필자는 분명 전편에서 복지체제의 효율성 증대를 명분 삼아 현금 N빵 복지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 지금 기본소득형 보편복지는 아무래도 이 부분에서 어긋나지 않는가! … 정말?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 반대이다. 간단하게, 줬다가 뺏는 것이 복지행정절차의 효율 극대화를 위해 더욱 효과적이다! 왜 그런가? 

복지와 같이, 어떤 재화와 서비스를 사람들에게 제공함에 있어 대상자의 경제 사회적 지위에 따라 차등을 두어야 한다면, 누구에게 특별권을 두고 누구에겐 더 가혹권(?)을 두어야 하는가 하는 그 구분방식에 있어 끝없는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선별적 복지 현상에서 누차 일어나는 소위 ‘차상위계층’ 논란들을 보라.


이를테면, 누구는 한 달 소득이 60만 원이라 정부로부터 30만 원에 해당하는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누구는 한 달 소득이 80만 원이라 이 혜택에서 제외되게 된다면, 한 달 80만 원의 ‘성과’를 낸 사람은 말 그대로 “남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내었기 때문에 남보다 덜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모순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별적 복지현장에서 수도 없이 일어나는 갈등의 이유이다. 



경제 사회적으로 남들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남보다 더 가혹한 조건으로 재화와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의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정부로부터 제공되는 어떤 사회서비스에 있어서 특정 조건을 만족하는 부자들에게만 강요되는 특별 계산대를 두어 그들에게만 매번 더 많은 이용비용을 받아내는 이 기괴한 사회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또한 이러한 구조가 불러일으킬 무수한 갈등들과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행정상의 낭비들 역시도. 


그러나 유독 ‘세금’이란 분야에서 만큼은 이미 이 차별성이 당연스럽게 정착, 적용되어 있다! 고로 정부로부터 이루어지는 어떤 재화와 서비스는 항상 동일 가격 동일 조건으로 내려가게 하고,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이득(?)을 보게 되는 부자, 상류층들에겐 그 이득분에 해당하는, 혹은 그 이상의 비용을 (어차피 차별성이라는 것이 당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세금으로 청구하여 일괄 징수해 가는 것이 행정적으로도 훠얼씬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이즘 되면 느껴지겠지만 결국 복지시스템이란 것은 최종적으론 세금 시스템과 연동되어 결국 통폐합되는 것이 가장 최선이다. 소위 ‘음의 소득세’라는 이름으로 (복지를 긍정하는) 시장 자유주의자들에게 언급되는 이 이론은, 정부가 징수 대상자로써의 특정 국민에게 징수할 수 있는 세금의 최저치를 기존의 0원(경제적 역량이 제로여서 그 어떤 비용도 치를 수 없는 사람에게는 어떤 세금도 거둘 수 없다.)에서 마이너스 얼마(마이너스 세금이라 함은, 정부가 납세자에게 오히려 돈을 내 줌을 의미한다.)로 낮춤으로써 모든 국민에게 특정 레벨의 최저생계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여타 선별적 복지시스템들은 폐지된다.(음의 소득세 정책 하나로 통폐합된다.) 정부로부터 제공되는 모든 사회 서비스들은 당연히 부자와 빈자를 나누지 않고 동일비용 동일 조건으로 제공됨으로써 불필요한 행정적 잡음을 최소화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회가, (굉장히 아니러니 하게도) 성과주의를 추구하는 시장 자유주의자와 보편적 생존권을 중시하는 사회주의자 양쪽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이상적인 복지사회의 모습이다. (물론 그 ‘최저생계’의 레벨을 어느 정도로 측정하느냐에 따른 양측의 입장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 레벨을 어느 정도로 잡느냐에 따라 부자에게 추가적으로 부여될 세금의 증가폭이 결정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방법론적 기본 틀에선 양측의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효율과 생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다.)


보통 세간에서 기본소득 제라 하면 필자와 같은 극좌들이나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효율성이란 측면 때문에 (복지를 어느 정도는 긍정하는) 시장 자유주의자들로부터 상당히 각광받는 복지의 방법론이란 점은 세간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부분이 개인적으로 참 안타깝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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