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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Apr 13. 2024

총선 - 단지 우익우파의 실책만은 아니다.

인구구조의 변화

어찌 보면 매 선거가 끝날 때마다 한 번씩 떠들어왔던 이야기를 이번에도 한 번 더 해보고자 한다.


선거가 끝나면 으레 승자와 패자가 나오기 마련이며 세간에선 이를 승자의 덕행과 패자의 실책으로 설명하기 마련인데, 이를테면 이번 선거 우익우파 폭망에 대해서는 선거 직전 벌어진 대파 해프닝이 민심에 큰 영향을 주었네 어쩌네 하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런데 좀 더 생각을 해 보자. 정말 그러한가?

물론 어느 정도 영향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과연 '절대적'이었을까?


이를테면 이번 총선의 결과물은 흥미롭게도 지난번 총선의 결과(민주진보 vs 우익우파의 수치적 구도)와 비슷하게 겹치는데 그럼 지난번 당시 우파진영에서도 이번과 같은 '대파 해프닝'이 존재했었나?

당시 우익우파의 황교안 체제와 이번 우익우파의 굥-한동훈 체제가 각자 나름의 실책들이 있었다 한들 그 성향은 여러 가지로 같지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둥 결과는 거의 유사하게 이어졌다.


좀 더 적나라한 비유를 들어보겠다. 누군가가 실책을 한 만큼 무너지고 덕행을 쌓은 만큼 성공한다는 마치 도덕적 전래동화식 공식이 진정 들어맞는 교과서적인 한국정치였다면, 이십여 년 전 IMF라는 625 이래 최대 환란으로 일제강점기 이후 최초의 국권피탈(?) 사태까지 초래했던 우익우파진영은 왜 그때 몰락하지 않았는가? 황교안의 부정선거 놀이나 용산 굥사장의 대파삽질이 고깝다 한들, 그것이 진짜로 나라를 말아먹을 뻔했던 초유의 사태보다 더 실책이라 말할 수 있는가?





물론 혹자는 그 이후 김대중이라는, 최초의 민주진보 정부가 들어섰으니 실책에 대한 민심의 심판이라는 교과서적 공식이 한국정치에서도 작동했던 것이라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절반만 알고서 하는 이야기이다.


당시 우익우파진영은 하나의 단일후보를 도출하는데 실패해서 경선에 참여했던 이회창과 이인제가 각자 딴살림을 차린 체 본선까지 나오게 되었다. 이로 인해 우익우파진영은 표가 쫘악 갈려버렸고 어부리지로 민주진보 김대중이 당선되는 결과까지 이어졌지만 득표수만으로 환산하면 이회창과 이인제가 받은 '우익우파표'는 민주진보 김대중의 표를 훨씬 능가했다.

... IMF로 나라를 아예 망하게 할 뻔했는데도 국민들은 우익우파를 여전히 더 지지했던 것이다.


대통령이 바뀌었다 해도 국민의 정치지향이 이러하니 민주진보진영은 줄곳 우익우파진영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후 민주진보진영은 어찌어찌 간신히 노무현이라는 새로운 대통령까지 탄생시켰음에도 국정주도권은 대체로 우익우파에게 있었고 실재 노무현은 탄핵 직전까지 가는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어지간하면 선거에선 우익우파진영이 승리했고, 민주진보진영은 도저히 용서가 불가능한 우익우파 실책이 있을 적에나 그저 간신히, 한 끗 차의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기울어진 운동장'은 비로소 '영감님들의 영원한 아이돌' 박근혜 정부와 함께 피크를 찍는다.





박근혜정부시절, 필자의 많은 좌파친구들은 좌절하고 있었다. 세상 무슨 짓을 해도 우리는 이제 저 미친 돌아버린 또라이같은 무지성 우익우파 콘크리트 40%를 꺾을 수가 없다고. 이제 세상 망했으니 모든 희망을 접겠다고 말이지. 그때 필자가 말했다.


지금 박근혜 우익우파 정권이 짱짱한 건 우익우파들이 잘해서가 아니라 인구구성 때문이라고. (당시) 506070의 산업화 세대가 (당시) 3040 민주화세대를 3:2의 숫자비로 누르고 있기 때문에 저들이 저렇게 설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영원할 수 없다. 산업화세대는 민주화세대보다 나이가 많기에, 저들은 곧 세상을 뜰 수밖에 없다. 그러면 민주화세대가 인구구성상에서 주류가 되는데 그때는 세상이 달라져있을 것이다.

그리고 필자가 공언했던 '그 시점'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다들 우익우파 정부는 최순실의 만행과 탄핵으로 무너졌다고 알고 있다. 역사는 그렇게 기억할 것이다. 물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좀 더 거시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거시'에는, 인구구성의 변화가 들어간다. 필자가 공언했던 데로, 인구구성의 변화라는 큰 바탕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던 해프닝이었던 것이다.


산업화세대의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고 있었다.


산업화세대는 이제 더 이상 민주화세대를 숫적으로 압도하지 못했다.


3:2였던 숫적 우위는 5:5 정도로 비등비등하게 맞추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숫적 역전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해질 터였다.


현재 시점에선 민주화세대가 산업화세대를 숫적으로 압도하기 시작했으며 이 격차는 계속해서 벌어질 것이다.


그렇게, 우익우파는 두 번의 총선에서 처참하게 발렸다.



물론 중간에 용산 굥사장 정권 탄생이라는 비화가 있지만, 이는 젠더갈등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 속에서 (원래 친 민주진보 성향인) 무수한 남성표를 '일시적으로' 빨아먹고서야 '0.7% 차로' 간신히 가능했던 승리였을 뿐이다.    




우익우파 너네는 이제 과거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꿀 빨면서 승리할 수가 없다. 민주진보가 나라를 팔아먹고 이를 우익우파가 이순신처럼 간신히 막아내야 기껏 1% 내외의 차이 정도로 간신히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50이 꺾이고 나이를 먹으며 우경화되는 영감님들을 최대한 열심히 포섭해 보아도 쉽진 않을 것이다. 지금 한국의 4050은 너무나 강경한 신념적 민주진보라 포섭이 쉽지 않다.


결국 우익우파가 살 길은 새롭게 솓아오르는 젊은 층에 있다.

이 젊은 세대중엔 상위 민주진보세대의 지긋지긋한 관성적 화법에 경멸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대체로 페미 피씨를 싫어한다. 이들을 최대한 끌어들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페미 피씨를 싫어하고 민주진보의 오래된 관성들에 환멸을 느끼는 젊은 이들은

이승만 박정희 반공과 같은 우익우파의 오래된 관성들에도 거의 동등한 환멸을 느낀다.

젊은 층에도 '이승만 박정희 반공 애국'을 뿌려 보고자 했던 주류 우익우파들의 많은 시도들이 전부 실패했음은 이번 총선을 통해 더욱 명확히 확인되었다.(우익우파진영의 전반적 몰락과 이준석의 당선)


자, 선택을 내려야 할 지점이다.

이미 줄어들고 있고 미래에는 더 적어질 영감님 표를 고수하기 위해 계속해서 철 지난 이승만 박정희 반공 애국 타령을 할 것인가?

아니면 젊은 사람들과 전 세계적 우익우파 추세에 발맞추어 '반페미 반피씨'라는 새로운 테마를 적극 활용할 것인가?


지금 우익우파는 초유의 갈림길에 서 있다.

그리고 이들이 어떤 선택을 내리느냐에 따라 우익우파의 내일이 결정될 것이다.(당장 다음 지선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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