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휴가, 육아휴직. 법으로 정해져 있으면 뭐하나?
어느 날,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미연씨, 우리 회사처럼 여자 직원들이 다니기 좋은 회사 없어~ 출산휴가든 육아휴직이든 다 쓸 수 있게 해 주는 회사가 어디있어? 감사히 여기고 오래 다녀!"
참 재밌고도 기가 막히는 문장이었다. 모성보호제도인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은, 근로기준법과 남여고용평등법, 고용보험법으로 보장된 당연한 제도다. 이런 제도를 쓰게 해 준다는 자체로 감사히 여기라니!
내가 입사하기 전, 육아휴직으로 쉬고 계시던 대리님이 복직을 위해 회사에 들렸을 때 일이다. 인사팀장과 과장님은 그야말로 '비상'이라는 듯 복직 예정인 대리님의 팀장님과 팀원들을 불러 모아 일장연설을 했다. 휴직 할 때 복직 의사 있었던 거 알았냐, 복직을 하게 두면 어떡하냐, 나는 모르겠다 (복직자 팀의)팀장님이 알아서 윗선에 보고 해라 등등. 인사팀장의 논리는 이랬다. '1년동안 놀 거 다 놀고 다시 돈 벌고 싶으니까 복직 하겠다는 거 아니냐!' 저 논리가 어디서 부터 어떻게, 얼마만큼 빻(!)았는지 지적하기엔, 그때의 나는 '매우' 신입이었다.
내가 소속된 팀이지만, 인사팀은 정말 이상한 팀이다. 아이를 가졌다는 말에 축하 해 주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이아기가 나오면 적극적으로 권장 하지만, 복직 이야기가 나오면 갑자기 비상이 걸린다. 육아휴직의 경우 나라에서 휴직 급여가 나오는데, 마치 인사팀이 육아휴직을 '승낙'해 준 덕분에 받는 거 아니냐는 식의 논리가 펼쳐진다. 정작 육아휴직 확인서는 막내급인 내가 쓰고 접수하는데, 생색은 팀장이 내는 기이함이란! 어쨌든 우리
덕분에 쉬면서 받을 돈 다 받고 복직한다는 육아휴직자들이 매우 골칫덩어리라고 생각하는 팀장은 누가 봐도 눈에 보이는 치사한 수를 써 댔다.
최근에 육아휴직 후 복직한 윤아는 복직 한 달 전 예의차 사무실에 방문하여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녔다. 윤아를 보고 눈에 띄게 낯빛이 어두워진 인사팀장은 업무용 미소를 띄운 채 윤아와 면담을 시작했다. 아이는 잘 크고 있냐, 남편이 잘 도와주냐, 혼자 아이 보느라 고생이 많았다 등등 개인적인 인사치례 후, 윤아의 복직 후 회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인사팀장의 첫 질문을 들은 윤아는 어리둥절 했다.
"복직하면 무슨 일 할 생각이에요?"
당연히 본인의 부서로 돌아가 본인이 하던 업무를 할 생각이라고 하자, 인사팀장은 "윤아씨 없는 동안 포지션 분담이 다 끝나서 윤아씨가 딱히 그 부서에 가서 할 일이 없다. 돌아간다고 해도 포지션이 겹친다. 뭐 다른 업무 맡는다면 어떤 업무 할 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냐"며 윤아를 몰아 붙였다. 마치 윤아의 휴직으로 인해 회사 전체의 업무 분담이 조정 되었고, 때문에 네가 돌아갈 만한 포지션이 없어졌다 해도 그것은 회사 잘못이 아니
라 너의 휴직으로 인함이라는 듯. 불행인지 다행인지, 윤아는 그 전 부터 육아휴직자들이 복직 할 때가 되면 항상 이 과정을 거쳤다는 이야기를 듣던 중 휴직을 한 것이라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이미 우리 회사 여자 직원들사이에서 인사팀장과의 복직 전 면담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는, 일종의 '구전 매뉴얼'로 악명이 높아 있었다.
그래도 윤아 정도면 다행이었다. 육아휴직도 아닌 90일의 출산휴가 후 복직한 과장님에겐 '너 포지션 새로 뽑았다'는 이유로 알아서 업무를 찾아 일 하라며 빈 자리 하나만을 던져주었었다. 과장 정도 됐으면 알아서 업무 찾아 해야 되는 거 아니냐며 업무 지시도 내리지 않았고, 무슨 일을 하는지 감시도 하지 않았다. 처음 일주일이야 누가 이기나 보자 하며 인터넷 서핑을 즐기던 과장님은 시간이 갈 수록 멘탈이 깨져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주었다. 과장님은 때 마침 있던 조직개편으로 다른 부서로 이동했는데, 기존에 있던 부서와 유관 부서가 아닌 곳으로 발령이 났다. 그럼에도 과장님은 기뻐했다. 드디어 업무 다운 업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라면서.
뉴스에서나 보던 육아휴직 복직자에 대한 다양한 불이익 처분을, 이 회사에서 1년동안 있으면서 모두 본 것 같다. 대기업 정도로 직원들이 많은 것도 아닌 이 조그만 회사에서! 남자 직원들의 눈에는 출산휴가 보내주고 육아휴직 보내주는 좋은 회사지만, 그 휴가와 휴직을 위해 여자 직원들이 견뎌야 하는 눈총과 압박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수 많은 육아휴직자들 중, 인사팀장의 말 대로 아이를 돌보지 않고 놀 거 다 놀다가 휴직 기간이 끝나면 복직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당장 본인들도 자기 아내에게 휴직 후 놀 만큼의 재정적 지원을 해 주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아주 간간히 있는, 휴직을 이용해 진짜 휴식을 취했다는 몇 명의 예시만 듣고 모든 여성 직원들이 그럴 것이라고 여기는 아저씨들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기 위해 숨을 참는 생활에 지쳐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