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남편의 아기 냥이

by 레옴

“얘는 로즈골드 색상인데 한 번 안아 보세요.” 어렴풋이 펫샵 주인이 남편에게 아기 고양이를 안기는 소리가 들린다. 작은 투명 케이지 안에서 아기 고양이들이 자거나, 먹거나, 놀고 있다. 한 배에서 나서 동시에 젖을 떼고 그곳에 함께 온 녀석 둘이 포개고 잔다. 나는 앙증맞은 발을 작은 틈새로 열심히 내미는 아기 고양이와 ET 교감을 하며 온통 시선을 빼앗겼다. 매장에 있는 울타리 안에 주인이 풀어준 아기 고양이에게 중학생 딸은 물고기 딸랑이와 깃털이 달린 막대 장난감을 흔들고 있다. 조금 넓은 공간에서 뛰어노는 아가를 보는 내내 나는 엄마 미소를 짓는다.

남편 생일은 빼빼로 데이다. 주말에 미리 축하하는 저녁 식사를 마친 직후, 혈당 스파이크를 막아보자며 그 동네를 가볍게 산책했다. 걷다 보니 식당 바로 옆 건물에 있는 펫샵이 눈에 띄었고, 딸이 들어가자고 했다. 적당히 고양이들과 놀다가 나는 이제 그만 가자고 하려는 참이었다. 그러다 남편에게서 낯선 모습을 보았다. 조그만 아기 고양이를 커다란 자기 배 위에 올려놓고서는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엉덩이를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머리와 등을 쓰다듬고 있었다.

고양이도 남편 품에서 평온했다. 작고 차가운 케이지에서 나와 안착한 광활하고 따뜻한 그의 배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노사연의 노래가 생각났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경상도 싸나이’인 남편은 평소 개나 고양이와 뻣뻣하게 어울렸다. 시골에서 젖뗀 강아지나 유기견을 무지개다리 건널 때까지 키우던 집에서 자란 나로서는 그가 반려동물과 지내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런 그가 아기 냥이를 품에 안은 그 모습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생일 선물로 사줄까?” 나는 지극히 충동적이고도 진지하게 물었다. ”정말?“ “에엥?” 남편과 딸의 눈이 동시에 휘둥그레졌다. 명품엔 관심도 없고 평소에 갖고 싶은 것도 없는 남편에게 이번 생일에도 양말을 선물해야 하나 고민하던 터였다. 그 둘의 “운명적 만남”을 흘려보내면 안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부부와 딸은 가게에서 나와서 조금 걸으며 서로의 의견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아기 냥이 입양 서류에 서명했다. 딸은 이동 상자에 담긴 냥이를 소중하게 껴안고, 남편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차를 몰았다.

집에 온 남편은 몇 번이고 말했다. “맨날 생일에 빼빼로만 받았는데, 내 평생에 이렇게 마음에 드는 생일 선물은 처음이야. 내가 원래 로즈골드를 좋아하잖아. 지금 내 전화도 그렇고. 다리가 짧아서 다 커도 식탁에 못 올라온다니 집 안 어지를 걱정도 없고.” 진심으로 감동한 그의 흥분이 전해졌다. 평소 주중에 얼굴 보기도 힘든 사람이지만 3일 정도는 집에 일찍 오겠다 싶었다. ‘3일로 끝나면 어때, 저렇게 좋아하는데. 나는 그냥 집사 해주지, 뭐.’


나는 원래 그렇게 너그러운 아내가 아니다. 그 무렵 나는 남편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얼마 전 친정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서였다. 박사 논문 초안 마감을 이틀 앞둔 상황에서 그는 당연하다며 일정을 변경했다. 도와줄 친척과 가족도 거의 없었는데 남편이 묵묵히 여기저기 손을 보탰다. 장례 비용이 모자라지 않았냐며, 돈이 필요하면 보내주겠다고도 했다. 밥을 못 넘기는 나와 엄마가 고장 난 딸을 위해 그는 3일 동안 아침밥을 차려주었다. 텅 빈 냉장고를 탈탈 털었다. 그 경상도 ‘싸나이’가.

그는 내가 냥이 입양을 허락한 것만으로도 황송했다. 귀찮은 거 싫어하고 짠순이인 나를 너무나 잘 안다. 돈은 자기가 내겠다는 말에, 내가 선물하는 거라며 대범하게 굴었다. 그제야 그는 시모가 조의금 보낸 것을 실토하며 내게 돈을 보냈다. 냥이가 아니었으면 시부모에게 평생 서운했을 뻔했다.

3주째, 남편은 내 예상을 깨고 거의 매일 일찍 들어온다. 그의 일찍이란 다른 집과는 기준이 다르다. 9시 반쯤 집에 와서 고양이를 안아주고 먹이와 화장실을 챙긴다. 10시에 맞춰 딸이 다니는 집 근처 학원에 마중을 나간다. 딸이 오면 고양이를 중심으로 온 가족이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집에 얼마 없는 시간마저 보통은 각자 방에 머무느라 비어 있던 거실이었다.

밀림의 왕자 ‘레오’라는 이름을 갖게 된 냥이는 다리가 짧은 로즈골드 색 먼치킨 종이다. 고양이 인형이 거실 곳곳을 누비고 다닌다. 딸이 유치원 때 뜨개질하던 실과 다듬어 놓은 막대기를 찾아서 만든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조그맣고 보드라운 발로 장난감을 잡다가 구르고, 쥐처럼 납작 엎드려서 집사들의 손을 사냥하러 살며시 다가오다가 점프해서 바닥을 콩 찍는다. 피곤하면 발치에서 야옹대며 안아달라고 한다. 그러곤 품에서 5초 만에 잠들어 빨래처럼 늘어진다. 부부와 중학생 딸은 함께 조용히 혹은 하하호호 웃는다.

부부는 요즘 서로에게 고마운 일을 쌓고 있다. 나는 남편에게, 남편은 나에게. 결혼 생활이 전쟁 같았던 시절은 추억이 되는 중이다. 서로를 알아가며 지뢰를 피하고, 이제는 서로의 나이 든 모습을 보며 안쓰럽기까지 하다.

470그램에서 800그램으로 폭풍성장한 레오를 바라보며 셋은 신음한다. “귀여워, 웅…“ 그렇게 남편의 아기 냥이는 이 가정에 안착했다. 바쁘게 일하느라 집에서는 조금 외롭게 겉돌고 있던 남편을 데려왔다. 운명의 짝을 만난 남편은 요즘, 고양이 만큼 아주 말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