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한가로운 주말 풍경

by 레옴

급하게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는 토요일 아침이다. 아주 피곤한 것도 아니지만, 딱히 일어나고 싶지도 않다. 머릿속 계획과는 달리 이불 속에서 최대한 비비적댄다. 더는 누워있는 것도 힘들어질 때쯤 일어난다. 남편은 아침 일찍 치과에 갔다가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바로 염색하러 미용실에 가겠다고 한다. 그는 두세 시간 후에나 돌아올 것이다. 중학생 딸은 어젯밤 언제 잠들었는지 알 수 없다. 새벽 4시가 넘은 무렵 잠깐 잠에서 깼는데, 온 집에 불이 켜져 있었다. 딸이 여태 안 자고 뭐 하나 싶어서 나가 보았다. 방에서 태블릿 PC를 가슴에 소중히 올려놓고 ‘ㄴ’ 자로 목이 구겨진 채 잠들어 있었다. 금요일이라고 늦은 밤까지 뭔가를 신나게 보다가, 그대로 잠든 모양이었다. 내가 말끔히 펴놓은 딸은 언제 일어날지 알 수 없다.

가족의 식사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한다. 아침 식사는 건너뛰고 그냥 점심을 준비해야겠다. 그럼 나는 지난번에도 완성하지 못한 글을 다시 붙잡을까, 책을 읽을까 우왕좌왕하다가 세수부터 한다. 새벽에 깼을 때 다시 잠을 청하는 대신, 글을 쓰고 산책을 다녀왔더라면 좋았겠다는 후회가 밀려든다. 처음 하는 후회도 아니기에 나 자신이 더 한심하다. 책상에 앉기 전에 남편 방에 가보니, 그는 책상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 언제 나가냐고 물으니, 미용실에서 오후에 오라고 했단다. 남편의 주말은 당최 종잡을 수가 없다. 글쓰기는 뒤로 밀고 허겁지겁 주방으로 향한다.

명절에 선물 들어온 국거리 고기와 무를 썰어 소고기뭇국을 끓이고, 나물과 밥, 양념 고추장을 뚝배기에 담아 돌솥비빔밥 1인분을 불에 올린다. 마지막으로 계란프라이 두 개를 얹고, 참기름을 뿌리니 뚝배기가 요란하게 지글거린다. 식성이 다른 세 식구 중, 손이 가장 많이 가는 남편의 한식 메뉴는 완성되었다. 그사이, 새벽에 집에 돌아와 치과까지 다녀온 남편의 식욕이 음식 냄새를 맡고 폭발하고 말았다. 벽장과 냉장고를 뒤져 초콜릿과 과자를 삼키기 시작한다. 남편이 비만한 것이 늘 걱정이라, 과일 깎아 놓은 것을 대신 먹으라고 권하지만, 소용이 없다.

차라리 주방에 들어와 음식 준비를 도와달라고 했다. 뭘 해줄까 묻지만, 뭘 시켜야 할지 모르겠다. 잠시 뜸 들이다가 “이리 와서 백허그를 해봐.”라고 허튼소리를 했다. 손잡는 것도 간지러워하는 경상도 사나이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진다. 그는 진정하고 초콜릿을 하나 더 집어삼킨다. 이제 아이가 먹을 것을 준비할 차례다. 물만두 봉지를 뜯어 그에게 넘기며, 끓고 있는 물에 스무 개 정도만 넣어달라고 했다. 작은 냄비에 물만두 한 봉지가 거의 다 쏟아져 들어간다. 끙. 일부러 그런 건지 잠시 의심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걸 어떻게 다 먹…, 아냐, 자기가 있으니 우린 먹을 수 있어, 그지~?” 실수한 남편이 쪼그라들지 않도록 애써 마음을 다스린다. 딸도 부스스 주방에 들어와 자기가 먹을 볶음밥과 물을 담아 오는 동안, 나는 어제 1+1 쿠폰으로 사 온 차가운 카페라떼 한 잔을 들고 식탁에 앉는다. 오늘 아침에도 배가 안 고프다.


배고픈 남편은 딸이 나오기 전에 이미 허겁지겁 식사를 시작했다. 세 개의 메뉴를 준비하느라, 나는 남편이 혼자 유튜브를 보며 식사를 마칠 무렵 내 음식을 들고 식탁에 앉곤 했다. 늘 불만이긴 했지만, 이걸 바로잡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최근이었다. 지난 주말에 처음으로 모두의 식사가 준비되고 다 같이 식사를 시작하자고 선포했다. 그러려면 세 가지 음식 준비가 비슷하게 끝나도록 도와야 한다고도 했다. 하루아침에 바뀌기엔 내가 입맛 다른 우리 가족을 이렇게 길들였으니,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도 시작은 같이하자고 다시 한번 말했다.

식사를 가장 먼저 시작한 그는 가장 먼저 식사를 마쳤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딸이 이번 주에 만들었다는 초콜릿을 먹자고 말한다. 한창 식사 중인 딸에게 가져다 달라는 말이다. 별것도 아닌 일에, 갑자기 시아버님이 내 마음에 알고리듬으로 둥실 떠올랐다. 필터를 거치지 못한 말이 내 입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아버님이랑 똑~같아. 한창 차리고 있는데, 일등으로 앉아서 혼자 다 드시고는, 이제 한술 뜨려고 하는 사람에게 꼭 디저트 가져오라고 하시고!” 아뿔싸. 남편 앞에서 대놓고 시아버님 흉을 봤다. 다행히도 남편은 키득키득 웃는다. 아버지의 그런 해맑은 모습이 떠올라 웃겼던 모양이다.

지난 일요일 저녁 이후로, 우리는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다 같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은 같은 모임에 계신 좋은 분이 겪으셨다는 힘든 일을 얘기한다. 우리는 모르는 분이지만 잠시 슬픔을 나눈다. 딸에게는 초콜릿을 어떻게 만들었냐고 물으며, 맛있게 먹는다. 딸은 운동삼아 복싱장에 몇 번 나가더니, 팔을 걷어 올리며 아빠에게 이두근을 자랑한다. 복직근도 자랑하고 싶지만, 아빠에게 배까지 보여주긴 뭔가 부끄럽다. 그러더니 그 얇은 뱃가죽도 뱃살이라며 옷 위로 집어 올려, 부부의 비웃음을 산다. 그렇게 다 함께 식사가 끝나고, 남편이 설거지를 한다고 한다. 나는 거절하는 대신 고맙다고 말하며, 다시 충전하러 이불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부지런한 남편과 게으른 모녀가 어우러진, 한가로운 주말 풍경화다. 언젠가 비바람이 몰아치고 찬 바람 쌩쌩 불던 시절이 있었다고는 믿기 어려운 풍경이다. 기다리고 버티고 방법을 찾으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긴 오는 모양이다. 관계와 기분은 정말 계절 같은 걸까. 그게 끝이라며 돌아갈 문을 꽉 닫아 버리지만 않으면, 좋은 날도 오는 모양이다. 우울해질 때마다, 관계가 어려울 때마다, 오늘을 기억해야겠다. 그 시간을 견디면, 평생 오지 않을 것만 같은 따스한 날이 온다고 말이다. 바로 오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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