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게 까주던 오빠

그를 다시 만나다

by 레옴

내가 잘 나간다고 믿었던 20대에 내게는 게 까주던 ‘오빠’가 있었다. 물론 친오빠 얘기는 아니다. “게 좋아하는데, 까먹기 귀찮아서 안 먹어요.”라고 했더니, 그는 내 손에 ‘게 한 방울’ 안 묻게 자기 손으로 알뜰살뜰 까서 내 접시에 올려주었다. 게살 받아먹는 내가 특별한 사람인 것 같았다. 그 딱딱한 껍데기를 부수고 게살이 안경까지 튀는 것도 마다하지 않던 그가 있어서 든든하고 따뜻했다.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무렵이었다. 세월이 흘러 내 아이의 아빠가 된 그는 여전히 게를 아주 섹시하게 발랐다. 가위를 들고 뿌그덕 와그작 집게발을 해체해서 뽀얀 게살을 쭉 뽑아냈다. 달라진 것은 그 게살의 종착역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그윽하게 보다가 이를 살짝 물고 조용히 웃으며 물었다. “맛있어?” 그가 풋 웃더니 미안한지 게살 한 점을 내 접시에 올려주며 말했다. “게 까는 법 알려줄까? 여기를 이렇게 잘라서…” “나한테 게 까주던 오빠가 있었는데, 이젠 알아서 까먹으라네.” 그와 딸은 동시 웃음을 터뜨렸고, 그는 계속해서 게를 까서 자기 입에 넣었다.


어느 주말, 취미 발레를 함께 배우며 친해진 친구 J와 카톡으로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녀는 서울 재즈 페스티벌을 관람하며 직접 촬영한 Lany의 달달한 노래 영상을 보냈다. 피아노 치며 노래하는 목소리가 감미로웠다. “언니, 난 아직도 사랑 노래가 너무 좋아.” “자기는 사랑이 참 많은 사람이야.” 그녀를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그녀는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정말 그런 사람이다. 그녀는 사랑 빼면 뭐가 남냐고 내게 물었고, 나는 1초 만에 “의무”라고 했다.

촉촉하게 사랑에 젖어 자기 가족을 돌보는 J와 의무감으로 살아가는 내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다를지 잠시 생각했다. 무슨 일이든 잘하려면 좋아하는 게 먼저라고 주장하는 내게 ‘행복한 가정’은 지상 최대의 목표 중 하나다. 남편과 내 관계가 그렇게 ‘게’처럼 변해버린 이유가 단지 내가 ‘잡은 물고기’여서만은 아닌 것 같았다. ‘진심으로 사랑해야 하는구나… 어쩌면 J의 말대로 남편도 나도 사랑이 필요한 걸까?’

그 무렵 이슬아의 신간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라는 책이 나왔다. 나는 이메일과는 별 상관없이 살고 있음에도 굳이 그 책을 찾아 읽었다. 이메일을 잘 쓰는 비법서인 줄 알았다. 큰 기대 없이 읽었는데 중반부터는 이슬아 특유의 유머와 감동이 가득했다. 그녀가 말하는 이메일 쓰기의 핵심 비법은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이메일을 잘 써서 상대를 설득하려면, 결국은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져야 한다는 뻔하지 않은 결말. 책에 실린, 그녀가 실제로 주고받은 이메일과 편지들을 읽으며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상대가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어주지 않아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사랑 많은 J와 이슬아에게서 사랑이 전염된 걸까? 내가 밥 한 끼만 같이 먹어줘도 좋아하던 ‘오빠‘가 변했다며 마음속 어딘가에 깔고 있던 원망과 미움의 잔해부터 몰아냈다. 남편이 집에 오면 한 번씩 등과 엉덩이를 토닥이고 안아주었다. 각 방 쓴 지 벌써 오래지만, 하루는 옆에 쓱 누워 그의 거대한 배를 토닥였다. 그는 겁에 질리고 놀라서 “이 아줌마가 와 이라노? 듭다, 저리 가라~”라며 나를 홱 밀어버렸다. “아!” 그의 팔꿈치에 맞아 입안에 피가 맺혔고, 심지어 침대에서 세게 굴러 떨어질 뻔했다. 안 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는 말이 뇌리를 스쳤다. 그는 갑자기 다가온 내가 어이없으면서도 미안한 듯 깔깔 웃었다.


그렇게 한두 달이 흘렀다. 다 큰 것 같은 중학생 딸은 원래 많이 안아줬지만, 안아달라고 하면 나는 즉시 하던 일을 멈추고 안았다. 가끔 보는 남편도 한 번씩 토닥여주고 안아주었다. 부부가 그러고 있으면 딸도 옆에 와서 아빠 안아주기에 합세했으니 19금은 아니었다. 그리고 부녀에게 하는 내 잔소리를 전면 개편했다. 이슬아 책에 소개된 편지의 일부를 표절해서 이전 버전과는 180도 다른 목소리와 언어를 사용했다. “내가 엄~청 사랑하는 거 알지? 방을 조금 치워주면 좋겠어. 물론 안 치워도 똑같이 사랑해.”

효과는 만점이었다. 얼마 전 가족과 함께 뷔페식당에 갔을 때였다. 남편이 접시 한가득 게를 담아 오더니 “오늘은 내가 게 까줄게. 살이 꽉 찼어.” 나는 단 한 번도 그에게 까달라고 요청한 적 없었다. 하지만 그는 통통하고 촉촉하고 뽀얀 게살을 뽑아 내 접시에 잔뜩 올린다. 나는 “어머, 남편 최고! 게 까주는 오빠가 돌아왔네?”라며 함박웃음 지으며 맛있게 집어먹는다. 한참 동안 먹지도 못하고 게만 까는 아빠를 보다 못한 딸이 나를 나무란다. “아빠는 하나도 못 먹잖아요. 이제 엄마가 까먹어요!” ”원래 까면서 먹는 거야~“라고 나는 뻔뻔스레 대꾸한다.

요즘 남편의 별명은 게 까주는 오빠다. 그가 더 이상 내게 해주지 않는 것을 기억하는 대신, 그가 내게 해준 것을 기억한다. ‘게’를 생각하며 나는 그에게 소중한 존재라고 확신하고, 그러면 그는 나를 아껴주는 사람이 된다. 우리는 다시 조금 더 사랑하고 조금 더 사랑받는다. 사랑도, 미움도, 불안도 전염된다면, 나는 사랑을 전염시키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삶을 의무로 견디던 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순간에도 “그래도 너를 사랑해~”라고 내 스스로에게 말한다. 나를 사랑하는 만큼 너를 사랑할 테니까.

작가의 이전글02 샐러드, 담백한 국수, 매운 국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