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총량은 어려움의 총량과 같다.
전화위복.
재앙과 화난이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됨.
전복위화.
복이 바뀌어 오히려 화가 됨.
위의 말은 다들 아는 사자성어이지만, 아래 사자성어는 내가 만든 것으로 복과 화를 동시에 느낀 내 경험을 써 내려가고자 한다.
나는 2023년에 팀 내에서 그토록 바라던 프로젝트 리드 역할을 맡게 되었다.
입사 후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나는 소위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가득 차있었고 그 역할은 나에게 마땅히 주어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심지어 동기마저도 리드 역할을 따내는 것을 보며 나도 언젠가는..이라는 생각을 막연히 해왔고, 지금 내가 하는 역할의 확장판인 프로젝트 리드를 맡는 게 자연 섭리상 맞아 보였다.
리더 역할을 맡고 처음 몇 달은 어렵지 않았다. 그저 그전에도 해왔던 일들의 폭이 조금 더 넓어지고 약간의 책임감이 더 얹어졌을 뿐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2024년이 되고 중반이 넘어가면서 나는 완전히 중심을 잃게 되었다.
실무에 관심 없고 종일 사람들과 담배를 태우는 팀장, 하루에도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새 고객의 연락과 컴플레인들, 그리고 그런 고객들을 상대하기 힘들어하는 우리 팀원들까지.
그 어느 것도 나에게 유리한 상황이 아니었다. 초기에는 고객에게 최대한 맞추고 팀원들을 다독거려 이어나가려고 했고, 그게 워킹하는 상황도 있었지만 아닌 상황이 더 많았다.
이런 상황이 1년쯤 지속되다 보니 무능하고 고객 우선인 팀장에게 들이받는 팀원도 생기고, 나 또한 고객들의 컴플레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됐다.
나는 최대한 팀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부당한 처사에는 강하게 맞서고 최대한 연락을 내가 받곤 했는데, 나는 하루가 다르게 표정이 어두워졌고, 마음의 여유도 급격하게 잃어갔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자꾸 팀원들이 내가 고생하는 바에 대해 알아줬으면 하는 보상 심리도 커져갔다.
우리는 회사 대 고객이 아니라 회사 대 회사로 일하기 때문에 논리를 바탕으로 충분한 테크니컬 설명을 통해 이해를 시키는 편인데,
이번에 만난 고객은 무슨 일이든 감정적으로 맞서고 우리 팀이 실수를 하고 그걸 감추기 위해 급급해한다라는 뉘앙스로 프레임을 씌우기 바빴다.
나도 처음에는 그럴 수 있다, 오해할 수 있다 싶어서 하나하나 풀어나가고 싶었다. 물론 내 평판을 위해서인 것도 있지만 한 두 달 보고 말 사이가 아니기에 관계를 잘 맺고 싶었다.
고객이나 우리나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같은 방향을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은 너도 나도 우리 모두 다 자기 역할을 잘 해내고 싶은 게 다였을 텐데, 근데 그게 과도해서 그랬던 걸 거야 라며 애써 믿어보려 했다.
그런 결심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고객의 선 넘는 요청에 하루 이틀 걸러 좌절되었고 나는 마치 중독된 사람처럼 몇 달째 주 52시간을 넘겨 초과 근무하기 일쑤였다.
사실 한 시간 더 일하고 점심시간을 아껴 일한다고 해도 퇴근 시간이 단축되거나 일이 줄어드는 게 아닐 텐데.
결국 나는 내 욕심에 못 이겨 팀원이 마땅히 해야 할 일도 가져오고 고객의 컴플레인도 듣고 흘리지 못하고 마음 깊이 가져와버리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게 무거운 추가 되어 내 마음이 저 심연으로 가라앉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거 아닐까.
그렇게 한 해를 미친 듯이 달려 벌써 2024년의 막바지에 와 있다.
12월 중순이 돼서야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내 마음을 돌아봤는데 무거운 추를 얹고 몇 달째 저만치 내려가기만 했어서 한숨을 돌려도 쉽게 떠오르지 못했다.
나는 어떤 프로젝트 리더가 되길 바랐나.
내 일에 철학을 담았나. 내 철학은 무엇이었을까. 그 철학은 고객과 주변 동료들에게 전달이 되었는가.
어떤 결정을 내리고 후회를 하는 성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프로젝트 리더를 맡은 것이 후회스러웠다.
내가 그런 깊은 그릇이 아닌데 괜히 맡아서 고객들도 화나고 팀원들도 지치게 하는 건 아닐까.
아무리 과한 요청을 하고 선을 넘나드는 고객이더라도 내가 다르게 할 수 있었던 부분은 없었을까.
작년엔 프로젝트 리더가 되었을 땐 ‘전화위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내가 겪은 어려움과 수모, 노력들이 빛을 발해 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복의 이면에는 책임감으로 점쳐진 반강제적 초과근무와 제한적인 개인 삶이 있음을 알지 못했다.
전복위화.라고 해야 할까. 복이 바뀌어 오히려 화가 될 수 있다는 걸 몰랐다.
하지만 또 이런 화가 있다면 분명 그 뒤엔 내가 아직 보지 못한 복이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의 내가 겪는 어려움과 고민들이 분명 나에게 어떤 체력을 길러주고 그 경험들은 또 나에게 어떤 구슬로 남아 내 주머니를 채워갈 것이다.
어떤 일을 하든 내가 대충 하지 않고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어떤 상황이든 배우는 게 있을 테고 그 배움은 구슬이 되어 내 주머니에 남게 된다.
그리고 전혀 관련 없던 경험들에서 나온 구슬들이 모여 새로운 상황을 이겨내는데 힘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 그 구슬을 만드는 중이라고 생각해야지. 모든 성장의 총량은 어려움의 총량과 같지 않겠나.
전화위복이 전복위화가 되고,
다시 그 화가 전화위복이 될 수 있게 내일도 내년도 열심히 또 구슬을 모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