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너무 사랑한 나

'과잉 자의식'이라는 숙취에 빠져

by 르미

자의식의 해체.




나는 늘 모든 걸 잘해왔다고 생각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입을 닫았다고 자위했고 어떤 일이 잘 안풀리면 그 원인을 내 자신이 아닌 밖에서 찾으려고 애써왔다.


이것은 얼마 전 읽은 책 '역행자'를 통해 완전히 뒤바뀌었고, 내가 과잉 자의식에 취한 사람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래 자의식이라는 것은 상처 받고 낙담한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정말 좋은 도구다. 가령 내가 원하는 곳에 취업을 하지 못했을 때 내가 더 좋은 곳에 입사하려고 그랬다던지,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더 좋은 일을 위해 액땜을 했을 거라는 식의 자기 위로 말이다. 그러나 이 자의식이 투머치가 될 때 역설적이게도 본인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아닌 본인을 해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외면해왔던 나의 가장 큰 단점인 고집 세고 나를 지적하는 부분에 대해 강하게 방어하는 자세가 과한 자의식에서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학창시절부터 부모님께 그리고 친한 친구들에게 내 단점에 대해 적나라하게 들어왔다. 사실, 이미 내 단점은 너무나도 명확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과잉 자의식이 어디서 왜 어떤 이유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르지만, 5년 뒤 내가 꿈꾸는 목표를 위해서라면 지금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미치자 내 단점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냥 내가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고치면 돼.


이전에는 내 단점을 감추고 가리기 급급했다. 마치 가면 증후군처럼 내 단점이 드러날 것 같은 상황을 철저히 피하며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만 심어주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면서 사람들을 대할 때 에너지를 과하게 사용하면서 지치게 되고, 내가 내가 아닌 사람이 되가면서 혼란스럽게 되고.


이를 끊어내기 위해선 나를 스스로 객관적으로 나를 보는 연습이 필요했다. 내가 남이 지적하는 부분에 대해서 예민한건 나의 어떤 부분에 대한 열등감 때문이지 않을까. 어떤 부분에서 오는 열등감일까? 외모? 학벌? 직업? 연봉? 전공을 살리지 못한 것? 꿈이 확실하지 않은 것? 사회에서 기대하는 성공치에 못미칠까 하는 걱정? 경제력? 흠. 글쎄.


장애 형제와 함께 큰 어린 시절과, 전공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이를 살리지 못한 나에 대한 무한 동정심을 걷어내고 정말 내가 느끼는 열등감의 원인은 뭘까. 실체가 있기는 한걸까. 앞에서 이야기 했던 열등감의 원인들을 아무리 나열해봐도 나에게 해당되는 원인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외부 공격으로부터 나를 방어하기 위해, 지키기 위해, 방어진을 엄청나게 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음에 이렇게 방어막을 치고 있으니 누군가의 말이 들릴 리 없고 나를 지적하는 데 공격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사실은 공격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나는 내 앞에 쳐져있는 수많은 배수진들을 좀 더 철거해서 구멍을 만들고 나 자신을 더 말랑말랑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정말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내게 조언을 해줄 때 귀담아 들을 수 있도록, 그 소중한 사람들이 내가 만든 구멍 속에 더 오래 머물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내가 친 수많은 방어진에 이미 튕겨나간 사람들도 많겠지만, 앞으로 내가 만들 변화의 계기로 인해 소중한 사람들이 내 인생에 더 많아지고 나도 그들에게 소중한 사람으로 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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