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기대도 괜찮아.
나에게 2022년에 기억나는 드라마 하나를 꼽으라면 ‘나의 해방일지’를 꼽을 것 같다. 이 드라마는 평범한 우리가 각자 벗어나고 싶은 것들에서 해방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보여줬다. 단군 이래 최대 호황기라 불리는 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이 부족해 해방을 외치는 걸까. 나는 무엇에서 해방이 되고 싶은 걸까.
한참의 고민 끝에 나는 독립이라는 단어가 나를 평생 눌러왔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나는 지금껏 늘 독립적인 사람이기를 바랬고 그렇게 살아왔다. 그 생각을 하기 시작한건 6살 어린 동생이 장애인으로 태어난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어릴 때는 친구들에게 동생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고 집에 친구들이 놀러오더라도 늘 동생을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별 것도 아닌데, 동생이 우유를 마시다 엎지르기라도 하는 날이면 얼굴이 벌개져서 화내기 바빴다. 그리고 동생이 장애뿐만 아니라 선천적으로 심장 판막에도 이상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관심은 늘 동생을 향해있었다. 이 때 차라리 나 좀 봐달라고 소리치고 떼썼다면, 달랐을까. 나는 이 방법을 택하지 않고 나를 마주하고 대화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리고 이런 습관들을 반증하듯 나는 스무살부터 독립했고 30여년 간 살면서 크고 작은 선택들을 혼자 생각하고 결정내려왔다. 큰 결정일수록 누구와 상의도 없이 스스로 결단을 했고 그 선택들에 늘 자신이 있었다.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바로 어학 연수를 떠난 것, 1년을 휴학하고도 추가로 휴학하며 인턴십을 한 것, 잘 다니던 회사도 돌연 그만두고 연고도 없는 지역의 회사로 이직해버린 것 등 이런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독립, 한자로 풀이하면 獨立.
홀로 독에 설 립 자. 홀로 독은 혼자, 홀로 이라는 뜻이고 립은 똑바로 서다, 확고히 서다 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인생, 인간은 모두 사람 인(人)자를 써서 두 명이서 서로 받치고 있는 형상인데 왜 세상은 자꾸 혼자 서라고 하는 걸까. 그 형상이 나는 점점 외로워 보인다. 나는 언제부터 그렇게 독립적인 사람이었을까.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보면 독립적인 인생을 사는 법, 독립적인 내가 되는 방법, 경제적 독립 등 독립에 대한 책들이 참 많이도 나와있다. 의존하지 않는 인생을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가. 그렇다면 나는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성향인데도 왜 외로울까. 결국 나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던게 아닐까.
나는 늘 당당한 모습을 보였지만 감정에 솔직한 사람들을 보며 처음엔 왜 저렇게 본인을 다 꺼내보일 수 있을까, 부끄럽지 않나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는 벽의 높이가 높지 않았다. 나는 그게 본인을 사랑하지 않는 방법이라 생각했지만 나이를 점점 먹으면서 누군가와 깊은 교감을 가지고 그 사람 인생에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벽을 낮춰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을 심어준건 다름 아닌 남편이다. 남편은 나와 동갑의 나이로 가치관은 비슷하나 성격은 정반대다. 그 점 때문에 서로가 끌린건지 우리는 회사 동기로 만나 5년 연애 후 결혼했는데 그간 성격 차이로 인해 많은 싸움과 갈등을 감내애햐 했다. 남편은 작은 고민 하나, 결정 하나도 지인들에게 여러번 물어 결정을 내리고, 그게 최선의 결정인지 돌아보곤 했는데, 그 모습이 참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다른 선택지를 택했을 때의 모습을 그리며 그 선택이 최선이었는지를 계속 생각했다. 내 눈에 비친 남편은 너무도 답답하고 남편의 눈에는 내가 너무 쿨해서 정말 많이도 부딪혔었다.
남편과 연애 시절 계속해서 부딪히면서 나는 내 장점인 독립적인 성향이 결국 이기적인 것인가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좋게 말하면 독립적인 건데 의논 없이 혼자 결정을 내려버리는 것이 남편에게는 독단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거다. 나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남편은 설득하기를 반복,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야 나는 비로소 내 주변의 벽의 높이와 나 자신을 한 걸음 멀리 떨어져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결국 독립이라는 글자에 취해 나 스스로를 돌보지 못해왔던게 아닐까. 나도 울고 싶고 나도 소리지르고 싶은데 이걸 꾹꾹 참아왔기 때문에 독립이라는 벽 속에 나를 가둔 것 같다. 나는 어쩌면, 독립에서 해방되고 싶었던게 아닐까.완전한 해방을 꿈꾸며 나는 오늘도 내 벽을 뚝딱뚝딱 무너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