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를 바라는 선행은 선행인가.

인간의 영악한 내면에 대하여

by 르미

어떤 결과를 바라고 하는 선행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


우리 모두는 어떤 행동을 함에 있어 그에 수반되는 결과, consequences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움직인다. 그리고 예상보다 더 나은 결과가 나올까 기대하고 그렇지 않으면 대개는 실망한다. 그렇다면 선행은 어떨까. 선행의 사전적 의미는 착하고 어진 행실이다. 어떤 결과를 바라고 베푸는 선행은 과연 착하고 어진 행실이라 부를 수 있을까.


최근 회사 사람들과 점심을 먹으러 가던 중 진정한 선행의 의미를 생각해 본 일이 있었다. 요즘 많이 내린 눈이 기온의 급강하로 인해 얼어붙었는데, 우리 앞에 가시던 할머니 한 분이 길을 걸어가시다가 이 눈길에서 미끄러지셨다. 나는 회사분들과 함께 걸어가고 있었는데 이를 보고 누구보다 먼저 뛰어 나갔다. 그리고 나는 할머니가 아닌 할머니가 가지고 계신 수레를 잡았는데, 아차 싶었다. 그리고 돌아보니 회사분들이 할머니를 부축하고 계셔서 나도 급하게 돌아 할머니를 뒤에서 안아 일으켜드렸다. 할머니는 우리에게 연신 고맙다고 하시며 가셨지만 나는 그날 내내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나는 여기서 어떤 불편함을 느꼈을까.


수레가 아닌 할머니를 부축해 드렸어야하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나는 같이 있는 분들에게 착한 사람으로 비치고 싶었는지 모른다. 결국은 정말 도움을 드리고 싶은 깊은 마음이 아니었기에, 마음에서 우러나온 선행이 아니었기에, 남을 의식한 선행이었기에, 내 손은 도움의 주체가 아닌 할머니가 아닌 수레로 향한 것이 아닐까.


그날 이후 나 자신의 행동 양상에 대해 여러 번 돌아보고 행동을 더 조심하게 되었다. 내 옆에 누군가 없더라도 같은 행동을 했을지, 오히려 옆에 누군가 있었기에 더 과하게 행동했던 건 아닌지 곱씹어 보았다.


이런 자각이 있은 뒤로 나는 자기반성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우리 모두는 영악한 자아가 존재한다. 물론 모두에게 감추고 싶고 완벽하고 착한 사람이고 싶지만 나에게 이런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고치려고 노력해야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


어떤 결과를 바라고 하는 선행은 당장은 선행이 아닐지라도 그것이 나를 바꾸어 결국 누군가에게 내가 다시 베풀 수 있게 된다면 결국은 선행으로 이름 붙일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또 하나 더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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