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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능구 Jun 21. 2023

스타트업이 끝난다는 것

아름다운 꿈이 산산조각 날 때, 우리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날의 기록

[2023.04.19.(수)]


- 10:00

대표가 모든 직원에게 개인 면담을 요청한다.


- 12:00

여느 때와 다름없이, 동료들과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갑작스러운 면담 요청에 누구는 성과급을 기대하고, 누구는 별 관심이 없다. 누구는 안 좋은 소식을 들을까 걱정하며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 14:00

동료들이 하나 둘 면담을 하러 떠난다. 내 차례는 6번째다.


- 15:15

앞서 면담하러 간 동료들이 사무실로 돌아오지 않는다. ‘티타임을 갖고 있나?’


- 15:20

대표로부터 이제 와달라는 DM을 받는다.


- 15:23

그와 마주 앉는다.


- 15:25

"... 미안하지만 이번 투자를 못 받게 됐어요. 당신은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회사를 떠나거나, 무급으로 남아 투자유치가 될 때까지 함께 하거나. 어떻게 할지는 오늘 중으로 결정해 주세요. 떠난다면 이번주 금요일까지 정리 부탁해요."


- 15:26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생각보다 별로 충격적이지는 않다. 이곳에 몸담았던 몇 개월이 사라졌지만, 뭐 괜찮다. 어쨌거나 나는 젊고... 한 가지는 배웠다.



아름다운 꿈


스타트업은 아름다운 꿈을, 사명을 갖고 시작한다.


그런데 그중 대부분은 망한다. 통계에 따르면 창업 후 1년 내에 90%의 스타트업이, 5년 내에 70%의 스타트업이 망한다고 한다.


나는 그러지 않을 줄 알았다. 적어도 내가 선택한 스타트업은 그러지 않을 줄 알았다.



왜 그 많은 스타트업들이 망할까. 사람들 능력이 부족했나? 그렇지 않다. 필요한 인재는 모두 있다.


우리 회사의 경우도 그랬다. 똑똑한 사람, 경험 많은 사람, 화술 좋은 사람, 꼼꼼한 사람, 동기부여에 능한 사람 등등... 다 있었다.



문제는 '꿈'이다. 꿈은 양날의 검이다.


꿈은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는 구심점이 된다. 그러나 때로는 모두의 눈을 멀게 하기도 한다. 환상에 빠지면 냉철한 사람이라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우리는 회사의 비전을 되뇌며 가슴 뛰었다. 열심히 일하는 우리 모습이 스스로 자랑스러웠다. 모든 일은 장밋빛 미래를 위한 양분이었다.


더 노력하면 세상의 수많은 이들을 연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았고, 조금 견디면 사람들이 우리 서비스를 사랑해줄 줄 알았다. 그렇게 2023년 4월 19일까지 눈을 감고 달려왔다.


우리의 꿈은 너무 아름다웠다.

그래서 우리만의 꿈이었던 것이다.






* 커버 이미지 출처: UnsplashSigm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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