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 끝에서 시절인연을 생각하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by 능구의 시선

1. 이십대의 끝

스물아홉 살, 이십대의 끝을 향해 가고 있다.

86일 후면 서른이 된다. 다른 건 몰라도 나이 앞자리가 바뀌니 인생의 꽤 묵직한 이벤트다. 두 가지 질문이 생겼다. 지난번 앞자리가 바뀔 때보다 지금 더 나은 사람이 됐을까. 그리고 다음 10년은 이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2. 지난 시간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2016년. 스무 살이 되고 대학에 입학한 나는 술 마시는 게 좋았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는 게 일상이었다. 쌩쌩한 간 덕분에 술에 잘 취하지 않았고, 사람들과 밤새 얘기를 나누며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과대에 동아리에 대외활동까지 술 마실 일이 한가득이었다. 제대 후 복학 생활도 그랬고, 사실은 회사와 대학원을 다니는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 사이 참 많은 인연이 스쳐갔다. 짧게는 두세 달, 길게는 오륙 년. 자신도 모르게 내 삶의 방향을 바꾼 이들이 있다. 반면교사가 되어 내가 어떤 걸 조심할지 알려준 이들, 만나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이들, 혹은 시련을 주며 내가 성장하도록 도운 이들도 있다. 그들과 동고동락한 시간을 모두 합치면 내 이십대가 된다.


이렇게 몇 마디를 쓰는 잠깐동안 떠오른 이름들이 있다. 기회가 된다면 삶의 어느 순간에 그들과 다시 마주치고 싶다. 전에 좋았든 싫었든 그들이 내 성장을 목격하는 증인이 되어주면 좋겠다.



3. 시절인연

시절인연.

한 시절에 만나는 인연이다.


만날 사람은 때가 되면 만난다. 헤어질 사람 역시 때가 되면 헤어진다. 억지로 만나려 해도 끝끝내 연이 닿지 않는 사람이 있고, 헤어지려 해도 내일 또 보게 되는 사람이 있다. 이십대 초중반의 나는 그걸 몰랐다. 최대한 많은 이들과 이어지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상처받고 상처 주며 많은 에너지를 썼다.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인연의 끈을 당기면 끊어진다. 그걸 이십대 후반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얇은 끈은 끊어지기 쉽다. (사진1)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특정한 시간과 그때에 내가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운명론적 관점의 수동적인 태도와는 다르다. 그저 때를 기다리는 게 아니다. 능동적으로 인연을 잇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 가며 자신의 시절을 여는 것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디가 패션계의 문법과 네트워크를 흡수하며 성장했고, '위대한 쇼맨'의 바넘이 단원들을 영입하고 살롱 - 신문사 - 극장 그리고 청중을 공략했듯 말이다.


누구와 인연을 맺고 싶은가. 나는 똑똑하고 성취의 즐거움을 알며, 취향이 깊고 자기 분야에서 감도 높은 사람이 좋았다. 그런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 스타트업에 들어갔고 P1에서 주말 스터디를 했다. 대학원에서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고 좀 더 큰 회사로 이직을 했다. 여행도 새로운 취미도 일단 해보며 그 특징과 장단점을 내 언어로 서술해 보려 노력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역시 대체로 그랬다.


지난 3년이 쉼 없이 흘러갔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소통과 관계가 있었다. 그러면서 그릿(끝까지 해내는 꾸준함) 마인드셋, 공학적 접근법과 지식, 작은 실험을 반복하며 서비스 개선하기, 낯선 환경이 주는 영감 등을 배우거나 느꼈다. 계단식으로 성장하는 경험도 해보고 내 단점이 '비약적으로 사고하며 축약하여 표현하는 것'임도 알게 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담기도, 덜어내기도 하며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왔다.

인연을 맺고 싶은 사람들을 모방하며 그들이 되어가는 것, 시절인연이다.



4. 앞으로의 시간

삼십대가 되어도 당장 삶에 극적인 변화는 없을 거다.

다만 시선을 조금 바꿔보려 한다. '어떤 인연을 만날까'에서 '내가 어떤 인연이 될까'로.


먼저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 (사진2)


맺어지고 싶은 사람은 대개 이렇다. 약속을 지키고, 말을 아끼되 결과로 보여주고, 질문과 수용을 잘한다. 대단한 조언보다도 작은 도움을 먼저 건넨다. 상대의 시간을 잘 쓰기도 하지만 비워줄 줄도 안다. 시간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한 번 더 공부하고, 다듬고, 기록한다. 그래야 언젠가 누군가의 시간에 편히 놓이는 사람이 될 테니.





* 커버 사진 출처 : UnsplashTaylor Smith

* 본문 사진 출처 : 사진1 (UnsplashJei Lee) , 사진2 (UnsplashMathias Re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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