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릭 부테린의 탈중앙화된 신뢰 시스템

기술 패권, 미래 사회의 설계자들 - 3

by 능구의 시선

0. 들어가며

지난 두 편의 글에서 우리는 미래 사회의 설계자들을 만나보았다. 피터 틸과 알렉스 카프는 팔란티어라는 중앙화된 의사결정 OS를 통해 데이터를 통치하는 제도를 설계하고 있다. 한편 일론 머스크는 스페이스X, 테슬라 등을 통해 인류 문명이 구동될 새로운 물리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중이다.


오늘 다룰 인물은 이와 반대의 철학에서 출발한다. 그는 중앙화된 권력에 대항하여 개인과 커뮤니티로 탈중앙화된 신뢰 시스템을 설계하는 인물이다. 이는 1편에서 제시'AI가 판단하고 블록체인이 기록하며 암호화폐로 가치를 전송하는 모듈화된 사회'에서 기록하는 블록체인에 해당한다.


세계 시총 30위 자산이자 차세대 인터넷의 기반인 이더리움의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 (Vitalik Buterin).

그의 비전, 기술 그리고 그가 그리는 미래를 살펴보자.



1. 중앙화 vs 탈중앙화

2014년, 부테린은 틸 펠로우십(Thiel Fellowship)의 수혜자였다. 틸 펠로우십은 피터 틸이 2011년 시작한 프로그램으로, 젊은 혁신가들이 학업 대신 창업이나 연구 등에 집중할 수 있도록 10만 달러의 지원금과 멘토링, 네트워킹 등을 지원한다. 젊은 인재들이 학업 대신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돕는 것을 목표한다. 부테린도 틸 펠로우십의 룰에 따라 대학을 중퇴하고 10만 달러를 지원받았다. 혁신적 독점을 추구하는 틸의 자본이 탈중앙화라는 반대의 철학을 싹 틔운 것이다.


틸은 중앙화된 시스템이 효율적이라 믿는다. 그는 민주주의적 합의 과정을 느리고 평범한 결과를 낳는 비효율로 본다. 위대한 창업자나 강력한 주권자의 결단력 있는 의지가 혁신을 만들고 문명을 진보시킨다 생각한다. 에게 합의는 평범함으로 가는 길이다. 한편 부테린은 단일 의지의 위험성을 해소하고자 한다. 그는 단일 주체가 규칙을 임의로 변경할 수 있는 시스템의 폭력성을 경계한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게임에서 그가 아끼던 캐릭터가 일방적 패치로 너프되어 분노했다는 일화는 이 철학의 상징적인 출발점이다.


신뢰 시스템을 구축하는 비탈릭 부테린 (사진1)


틸과 부테린의 철학은 다르다. 럼에도 틸은 파운더스 펀드를 통해 이더리움과 그 생태계(비트마인, 폴리마켓 등)에 투자하고 있다. 틸의 중앙화에 대한 철학이 패배할 경우를 대비해 대안인 탈중앙화의 지분을 확보하는 경제학적·철학적 헷징이해해 볼 수 있다. 이더리움이 암호화폐를 넘어 미래 질서의 주요한 기반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2. 비트코인의 한계와 이더리움 철학

부테린은 중앙화된 권력의 대안비트코인에서 처음 발견했다. 관리자나 은행 없이도 작동하는 P2P 전자 현금 시스템은 그에게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비트코인이 근본적으로 범용성이 부족하다는 한계를 깨닫는다. 비트코인의 스크립트 언어는 의도적으로 기능이 제한되어 있다. 보안에 유리하다는 장점은 있지만, 가치 전송이라는 단 하나의 기능만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부테린은 블록체인 위에 어떤 프로그램이든 올릴 수 있다면 어떨지 상상했다. 가치를 전송하는 것을 넘어, 시스템이 작동하는 로직과 계약 그 자체를 탈중앙화하고 싶었다. 전 세계 누구나 네트워크에 코드를 올리고 그 코드가 검열이나 중단 없이 정확히 약속대로 실행되는 탈중앙화된 시스템, 세계 컴퓨터다.


신뢰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사진2)


부테린은 왜 탈중앙화된 시스템을 꿈꿀까? '신뢰' 때문이다. 인간 사회의 기반은 신뢰다. 화폐가 가치를 저장하고 교환 매개로서 사용될 수 있다는 신뢰, 내가 서비스를 제공하면 손님은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급할 것이라는 신뢰 등이 사회를 돌아가게 한다.


그런데 지금은 신뢰가 중앙화된 조직에 의해 결정된다. 소수의 생각에 따라 계약 조건이나 규약이 변경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테린이 구상하는 세계 컴퓨터에선 신뢰를 '코드'에 둔다. 누구나 검증할 수 있고, 한번 배포되면 변경 불가능하며, 정해진 조건대로만 작동한다.


전 세계 누구나 자신만의 규칙을 코드로 작성해 네트워크에 올릴 수 있다. 그 코드는 중앙 서버 관리자의 검열이나 중단, 혹은 정부의 개입 없이 약속대로 실행된다. 그 코드를 선택해 사용하는 사람 간의 신뢰가 불변하게 유지되는 것이다.



3. DApp의 탄생

세계 컴퓨터라는 비전은 DApp(Decentralized Application, 탈중앙화된 앱) 개념을 탄생시켰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처럼 우리가 흔히 쓰는 기존의 앱은 회사의 중앙 서버가 멈추거나 회사가 계정을 삭제하면 데이터를 잃는다. 반면 DApp은 개발자조차 마음대로 삭제할 수 없다. 앱의 백엔드 로직에 해당하는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이 이더리움 네트워크 전역에 분산되어 실행되는데, 스마트 계약은 한 번 배포되면 네트워크 전역의 장부에 영구적으로 박제되기 때문이다. 이 코드는 전 세계 수만 대의 노드(컴퓨터)에 복제되어 저장된다. 개발자가 마음이 바뀌어 앱을 삭제하고 싶어도, 전 세계에 흩어진 수만 대의 컴퓨터를 동시에 끄거나 해킹하지 않는 이상 코드가 멈추지 않고 작동한다. 이게 검열 저항성(Censorship Resistance)이다.


DApp에서는 백엔드 코드가 탈중앙화된 peer-to-peer 네트워크에서 작동된다. (사진3)


이런 특성 덕분에 DeFi, NFT 등 혁신적인 서비스들이 탄생했다. DeFi는 은행 없는 은행이다. 대출 심사를 하는 은행원도, 장부를 관리하는 전산망도 없다. 오직 '담보가 들어오면 대출해 준다'는 코드가 있을 뿐이다. 중개자가 없으니 수수료가 매우 낮고, 신용등급이나 국적에 상관없이 누구나 24시간 이용할 수 있다. NFT는 중개인 없는 갤러리다. 예술가는 갤러리를 통하지 않고도 전 세계 수집가와 직거래하며, 작품이 재판매될 때마다 로열티가 자동으로 들어오는 코드를 심을 수 있다. 소유권 기록이 누구도 조작할 수 없는 장부에 남아 진품 증명이 확실하다.


하지만 이더리움에도 확장성의 한계가 있었다. 초기의 이더리움은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로써 모든 일을 처리하려 했다. 모든 노드가 모든 거래를 일일이 계산하고, 검증하고, 저장했다. 사용자가 몰리자 네트워크는 꽉 막힌 도로처럼 느려졌고, 단순한 송금 한 번에 큰 수수료를 내야 했다. 비싼 수수료가 대중화를 막는 거대한 장벽이었다. 그래서 이더리움은 철저한 분업화를 택했다. 거대한 컴퓨터 하나가 모든 일을 다 처리하는 비효율을 버리고 역할을 나누는 모듈형 블록체인으로 진화한 것이다. 각각 다른 역할을 하는 3개의 레이어가 있다.


1. 합의 및 보안 레이어(Layer 1) : 이더리움 메인넷이다. 이곳에선 자잘한 거래를 직접 처리하지 않고 최종적인 거래 결과의 유효성만 검증하여 보안을 지킨다. 가장 안전하지만 느리다.

2. 실행 레이어(Layer 2) : 아비트럼, 베이스 같은 롤업(Rollup) 네트워크다. 롤업은 여러 건의 거래를 묶어 압축한 뒤, 그 요약본만 Layer 1에 제출하여 수수료를 낮추고 속도를 높이는 기술이다. 덕분에 수수료는 100분의 1로 줄고 속도는 수십 배 빨라졌다.

3. 데이터 가용성 레이어 : 블롭(Blob)이 적용된 저장소다. 거래 기록 데이터를 비싼 Layer 1 공간이 아닌, 별도의 저렴한 임시 공간에 저장하여 비용을 한번 더 획기적으로 낮췄다.


이 분업화 과정 덕분에 우리는 이더리움의 강력한 보안 위에서 일반 앱처럼 빠르고 저렴하게 작동하는 DApp을 사용할 수 있다.



4. 현재 이더리움은?

인프라가 성숙기에 접어들자 부테린은 AI로 시선을 돌렸다. 그가 직접 AI 모델을 개발하는 건 아니다. 그는 AI라는 강력한 힘이 소수에게 독점되거나 통제 불능이 되는 상황을 경계하며, 이더리움을 그 균형추로 제시한다.


그의 최근 사상은 'd/acc (Defensive Accelerationism, 방어적 가속주의)'로 요약된다. 기술 발전을 멈추자는 비관론도, 덮어놓고 속도만 높이자는 낙관론도 아니다. 핵심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부테린은 세상을 '공격이 쉬운 세상'과 '방어가 쉬운 세상'으로 구분한다. 감시, 해킹, 살상 무기 등의 공격 기술이 발달하면 권력은 중앙으로 집중되고 독재가 쉬워진다. 반면 암호화, 보안, 백신 등의 방어 기술이 발달하면 개인은 안전해지고 민주주의가 강해질 수 있다. 즉, d/acc는 창이 날카로워지는 속도보다 방패가 단단해지는 속도를 더 빠르게 가속해야 한다는 철학이다. 방어 기술을 우위에 두어야 인류가 기술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철학은 이더리움 생태계에 AI 시대를 대비하는 기술적 방파제들이 세워지게 하며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AI 검증 시장(zKML)의 부상이다. 우리는 AI가 내놓은 결과가 편향되었는지, 혹은 조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블랙박스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에 대응해 AI 모델의 추론 과정을 암호학적 기술인 영지식 증명(ZKP)으로 검증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블록체인이 AI 내부를 감시하는 기술적 CCTV가 되어, 중앙 서버의 AI가 내린 판단이 조작되지 않았음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머신러닝 과정은 모델이 스스로 패턴을 학습하는 것이기에, 그 과정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사진4)


또한, AI 봇이 인터넷 여론을 조작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문제에 맞서 인간 증명(Proof of Personhood) 기술이 결합하고 있다. 월드코인과 같은 생체 인증 프로젝트들이 이더리움의 신원 레이어와 통합되면서,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중앙 서버의 로그인 없이도 접속자가 로봇이 아니라는 사실을 블록체인이 보증하게 됐다. 더 나아가 부테린이 지지한 폴리마켓처럼 미래 사건을 예측하는 시장은 AI 시대의 새로운 진실 검증기로 자리 잡고 있다. 딥페이크와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시대에, AI와 인간의 집단지성이 자신의 돈을 걸고 정보의 진위를 가려내며 거짓 정보에 맞서는 방어막을 형성하는 것이다.


2025년 11월 현재, 부테린의 방어적 가속주의가 향하는 곳은 AI뿐만이 아니다. 다가오는 양자 컴퓨터의 위협에 대비하는 것이 이더리움 생태계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양자 컴퓨터의 연산 능력은 기존의 암호화 체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어 블록체인의 존립 자체를 위협한다.


이에 이더리움은 2025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양자 내성 암호(Post-Quantum Cryptography, PQC)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기존의 계정 체계를 업그레이드하여 양자 컴퓨터로도 뚫을 수 없는 새로운 서명 알고리즘을 지갑에 탑재할 수 있도록 계정 추상화(Account Abstraction)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 AI의 독주를 견제하는 것을 넘어, 양자 컴퓨팅이라는 미래의 기술까지 막아낼 수 있는 거대하고 안전한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5. 미래 사회에 이더리움의 역할

이더리움은 미래 사회에 어떤 가치를 가지게 될까. 고도로 모듈화된 미래엔 AI 의사가 당신의 병을 진단하고, 교통경찰 로봇이 교통사고의 과실 여부를 즉석에서 판단한다. 만약 이 모든 시스템이 결과만 남고, 판단 과정은 들여다볼 수 없는 중앙화된 블랙박스라면 어떨까? 데이터가 조작되었는지, 혹은 특정 권력자에게 유리하게 편향된 진단을 내렸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만약 경찰 로봇이 단일 기업 소유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기업이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판단 기준을 몰래 수정한다고 해도, 과연 누가 그 기업을 감시할 수 있을까?


이더리움은 화폐를 넘어서 투명한 글로벌 신뢰 기준으로서 작동하게 될 것이다. 가장 먼저 이더리움은 AI가 반드시 따라야 할 윤리 원칙이나 판단 로직을 스마트 계약에 기록해 둔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AI가 진단을 내릴 때 그 판단 과정이 사전에 합의된 코드대로 수행되었는지 수학적으로 검증받을 수 있다. 과정의 정당성을 증명받는 것이다.


또한, 이더리움은 조작 불가능한 기록 보관소가 된다. AI의 모든 판단 이력과 근거 데이터는 블록체인에 영원히 박제된다. 아무리 강력한 권력자라 해도 과거의 기록을 소급해서 지우거나 자신에게 유리하게 수정할 수 없다. 이 불변의 기록은 그 자체로 AI 시스템이 오작동하거나 악용되지 않도록 감시하는 강력한 안전장치가 된다.


나아가 가치의 중립적 이동 통로가 된다. 미래에는 AI 에이전트끼리 연산 자원을 거래하거나 로봇과 인간 간에 서비스 대가를 지불하는 일이 빈번해질 것이다. 이때 특정 국가의 화폐나 은행망에 의존하지 않는 중립적인 화폐인 ETH를 사용함으로써, 국가나 은행의 자의적인 자산 동결이나 경제적 검열을 차단할 수 있다.


결국 미래 사회에서 이더리움의 진정한 가치는, 강력한 AI와 거대한 로봇 인프라가 세상을 움직이는 와중에도 그것들이 약속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수학적으로 보증하는 신뢰 시스템 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부테린이 설계하고 있는 탈중앙화된 미래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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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버 사진 출처 : UnsplashShubham Dhage

* 본문 사진 출처 : 사진1(metlabs), 사진2(UnsplashAlina Grubnyak), 사진3(Medium의 Shaan Ray), 사진4(Medium의 tankjadu_서울대학교 디사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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