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패권, 미래 사회의 설계자들 - 1
2045년 새벽 3시, 서울의 한 시민이 긴급 의료 상담이 필요하다. 그는 침대에 누운 채로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증상을 말한다. AI 의료 시스템이 즉시 그의 최근 생체 데이터, 평생 건강 기록, 유전 정보를 분석한다. 0.8초 만에 진단이 완료되고 처방전이 블록체인에 기록된다. 5분 뒤 자율주행 드론에 실린 약이 도착한다. 결제는 자동으로 그의 디지털 지갑에서 스마트 계약을 통해 처리되며, 의료진, 약국 그리고 배달 서비스에 분배된다. 중개자도, 수수료도, 지연도 없다.
같은 시각, 부산에서는 새로운 도시 개발 계획이 제안된다. 환경, 경제, 복지 등을 담당하는 수백 개의 전문 AI 에이전트들이 즉시 분석을 시작한다. 각 에이전트는 자신이 대표하는 전문분야, 우선순위를 바탕으로 이 계획이 미칠 영향을 평가한다. 10분 후 블록체인 거버넌스 네트워크에서 첫 투표가 시작된다. 토론, 수정, 재투표가 진행된다. 모든 과정은 투명하게 기록된다. 투표가 종료되면, 에이전트의 의사결정에 기여한 이들에게 암호화폐로 인센티브가 지급된다.
대전의 한 법률 분쟁은 물리적 법정 없이 해결된다. 양측의 주장과 증거가 블록체인에 제출되고 AI 중재 시스템이 수백만 건의 판례를 분석한다. 합의가 도출되면 스마트 계약이 자동으로 실행되어 배상금이 즉시 지급된다. 전체 과정은 20분이 걸렸지만, 과거에는 최소 2달이 걸렸을 일이다.
이것이 모듈화 된 사회다. 의료, 행정, 정치, 사법은 더 이상 거대한 단일 시스템이 아니다. 그것들은 레고 블록처럼 조립 가능한 디지털 모듈로 분해되어 24시간 쉼 없이 작동한다. AI가 판단하고, 블록체인이 기록하며, 암호화폐로 가치를 전송하고, 필요한 경우 휴머노이드 물리적 시스템이 실행된다.
사회 전환은 이미 시작됐다.
이 변화를 만들어가는 이들의 생각을 살펴본다.
피터 틸(Peter Thiel)과 알렉스 카프(Alex Karp)부터 시작한다.
그들은 기술을 가진 철학자이며, 미래 사회를 위해 기술 패권을 확보하고 있는 설계자들이다. 기술은 질서 재편을 위한 도구다.
1) 피터 틸의 비전
피터 틸은 수많은 타이틀을 갖고 있다. 페이팔의 공동창업자로 일명 '페이팔 마피아'의 핵심 인물이며, 페이스북 초기 투자자이자, 팔란티어의 공동창업자이며, 파운더스 펀드의 공동설립자다. 틸은 개인의 동의 없이 개인 삶에 개입하는 기존 민주주의 시스템을 배제하고자 한다. 새 공간에서 새로운 사회를 실험하기 위해 기술 패권을 쥐고 있다.
틸은 2009년 Cato Institute에 기고한 '자유주의자 교육 (The Education of a Libertarian)'에서 "I no longer believe that freedom and democracy are compatible."라고 썼다. 그는 자유주의자로서 자유와 민주주의가 양립할 수 없다고 믿으며, 자유를 위한 새로운 공간을 만들 수 있는 새로운 기술에 집중한다. 글에서는 새로운 공간으로서 '사이버 공간, 우주, 바다' 세 가지를 제시하는데, 핵심은 '혁신적 독점을 통한 새로운 공간의 창출'이다. 그 공간에서 그가 믿는 자유가 실현될 수 있다.
2) 제로 투 원 : 혁신적 독점
틸은 '혁신적' 독점을 옹호한다. 약탈적 독점을 말하는 게 아니라, 압도적인 기술력으로 독점하는 것이다. 2014년 그의 저서 『제로 투 원 (Zero to One)』은 단순한 스타트업 지침서가 아니다. 기술을 통해 사회를 재구성하라는 선언문이다. 책에서 강조하는 "0에서 1을 만드는 것"은 기존에 없던 것을 창조하는 것이다. 창조란 것은 복사가 아니라 발명을 통해, 개선이 아니라 혁신을 통해 가능하다. 모두가 같은 것을 만들고 가격을 낮추기 위해 경쟁하면 결국 혁신도 탄생할 수 없다. 이 맥락에서 그는 완전 경쟁에 부정적이다. 그러니 "Competition is for losers"다.
3) 팔란티어 : 미래 시스템의 단서
틸의 비전에 부합하는 회사가 팔란티어다. 카프가 CEO로 있다. 카프는 철학을 전공하고 사회이론 박사를 취득한, 얼핏 보면 테크 기업과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팔란티어는 글로벌 시가총액 22위, 시가총액 4,300억 달러가 넘는 기업이 됐다. PER이 600을 넘을 정도로 주가가 높게 책정되며 많은 사람들이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왜 그럴까? 팔란티어의 지향점이 미래 사회의 결정 OS(운영체제. Operating System)에 가깝기 때문이다.
팔란티어는 '국가와 기업의 의사결정은 결국 데이터 파이프라인으로 구현된다'는 명제를 구현한 회사다. 인공지능 플랫폼(AIP)으로 분산된 데이터를 통합하여 현실 세계를 가상 세계로 재현하는 디지털 트윈을 구축한다. 데이터를 한 곳에 모으는 것을 넘어서 현실 세계의 개체·관계·사건을 모델링하여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는 온톨로지(Ontology) 기술에 기반한다.
과거의 정보 시스템은 부처 혹은 부서 내에서만 데이터를 공유하는 '데이터 사일로'였다. 팔란티어는 사건·인물·자산·거래·위치·시간을 공통 스키마로 표준화하고, 각 테이블 사이에 원인·영향·신뢰도 같은 관계 메타데이터를 붙인다. 이때 중요한 건 정답이 아니라 불확실성의 표현이다. 현장에서 수집된 조각난 사실들을 '가능한 현실들'로 펼쳐 놓고, 새로운 데이터가 들어올 때마다 가능세계의 확률을 업데이트한다. 이것이 고담(Gotham)과 메타컨스텔레이션(MetaConstellation), AIP가 공유하는 엔진이다.
1) 고담 (Gotham)
고담은 수사·안보 분야에서 실시간 상황인식을 중심으로 동작한다. 시스템은 다음을 자동화한다. 이 루프가 반복될수록 조직의 의사결정 지능이 축적되고 개선된다.
상황 인지 : 다양한 로그/현장보고를 실시간 정규화
가설 형성 : 과거 사례 및 유사 패턴과의 매칭, 가설의 확률을 점수화
조치 제안 : 조치의 예상 효과·리스크·법적 제약을 함께 제시
후속 학습 : 실제 결과를 반영해 모델·룰을 업데이트
2) 메타컨스텔레이션 (MetaConstellation)
인간의 동시 정보처리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정찰 위성·드론·현장 카메라·신호 등의 정보가 동시에 들어오면 모든 것을 즉시 처리하지 못한다. 하지만 메타컨스텔레이션은 가능하다. 이 솔루션은 이 정보들의 관계를 통해 의미를 분석하여 작전 단위의 빠른 결정을 가능케 한다. 시공간적으로 이질적인 데이터 스트림을 목표-중심 시각화로 합성한다.
전장에선 센서-사격-지휘가 초 단위로 종결된다.
재난 컨트롤타워에선 피난 경로 재배치–장비 재할당이 자동으로 제안된다.
3) AIP (Artificial Intelligence Platform)
AIP는 기업이 보유한 방대한 데이터를 연결하고,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돕는 인공지능 플랫폼이다. 업무 절차에 직접 결합되는 코파일럿이다. 조직에 '왜 이 결정을 내렸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재현 가능성을 내재화한다. 감사를 위해서 입력 데이터·모델 버전·프롬프트·출력·승인자·적용 범위가 온체인에 로깅되는 등 불변되는 로그로 남는다.
4) 정리
팔란티어는 전쟁, 기업 경영의 사례로 의사결정 체제를 만드는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다. 이는 사회 운영의 문법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이제 정책은 문서를 넘어서 실행가능한 파이프라인(Policy as a Pipeline)이 된다. 또한 변경·승인·감사·복구 등의 버전이 누락 없이 관리된다.
훗날 에이전트 의사결정 운영에 필요한 책임은 이 층에서 성립한다. 결국 팔란티어가 제공하는 것은 '결정을 위한 운영체제'다. 미래 사회의 설계자인 이들은, 데이터 통치가 곧 제도를 통치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가장 먼저 이해하고 그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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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매거진은 AI, 블록체인 기술의 트렌드와 사회·경제적 영향, 그리고 이를 활용한 인간 삶의 변화상을 소개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제시된 정보는 일반적인 참고자료일 뿐, 개별적인 법적·재정적·투자적 조언으로 간주될 수 없습니다.
본 매거진은 AI·블록체인 기술과 관련된 정보를 폭넓게 제공하려 노력하지만, 기술적 세부사항이나 각국의 규제·법률 해석은 시점과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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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버 사진 출처 : Unsplash의Evgeniy Surzhan
* 본문 사진 출처 : 사진1(Unsplash의Dries De Schepper), 사진2(Unsplash의Mariia Shalabaie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