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생산성을 높인다는 환상

우선 JTBD를 생각하세요

by 능구의 시선

1. 이거 만들어줘

22년 말쯤부터 AI가 본격적으로 핫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첫 타자는 챗GPT였다. 대화가 잘 통하고 간단한 자료를 잘 요약해 주는 로봇이었다. 그리고 윌스미스가 괴상하게 스파게티를 먹는 영상이 유희거리로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샌가 유튜브엔 수노로 만든 음악 플레이리스트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어떤 SNS에서건 나노바나나로 만든 콘텐츠가 보인다. 개발자들은 코파일럿 없이 코딩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개발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클로드로 앱을 만들어낼 수 있다. 모두가 생산 도구를 소유한 생산성의 시대가 온 것이다.



2. 문제

스펙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도구를 갖게 됐다. 그럼 모두의 생산성이 높아졌을까?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격차가 극단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누군가는 압도적인 생산성을 내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전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나쁜 결과물을 내고 있다. 비싼 AI 모델을 구독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다.


사고 과정 자체를 AI에 의탁하게 됐기 때문이다.


뭔가를 만들려면 문제와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게 없다면 예쁜 고성능 쓰레기를 만드는 게 된다. 문제를 정의하고 목표를 설정하는 건 사람이 할 일이다. AI는 성능이 매우 좋지만 직까진 도구일 뿐이다. 최소한 AI에게 뭔가를 시키려면 뭐가 문제고 어떤 목표로 어떤 형태의 결과물을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서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냥 '유저에게 상품 추천해 주는 기능 기획해줘/만들어줘'처럼 지시하면 절대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다. 계속 그런 식으로 접근한다면, AI로 생산성을 높인다는 건 환상일 수 있다.



3. JTBD

해결 방법이 있다. AI를 켜서 뭔가 당장 만들어달라고 하고 싶을 때마다 잠깐 멈추고 JTBD를 정리해 보자. JTBD는 특정 문제를 겪는 유저가 기대하는 바를 한두 문장으로 정리한 것으로, Jobs To Be Done의 두문자어다. 보통 '~한 나는 ~하기 위해 ~하고 싶다.'와 같은 포맷으로 정리된다. 아주 간단한 형식이지만 이 한 줄을 기가 막히게 정의해 내면 몇백억 원짜리 기능이 탄생하기도 한다.


기획자들은 새 기능을 만들거나 어떤 경험을 개선할 때 반드시 JTBD를 얘기한다. 예를 들어 유저가 ‘사과를 구매한다’는 행위 하나에도 ‘출근으로 정신없는 아침, 이동 중에 간단히 식사할 수 있게 사과를 구매하고 싶다’거나 ‘오늘 당장 사과잼을 만들기 위해 사과를 대량으로 구매하고 싶다’는 등의 아예 다른 문제 상황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JTBD가 도출될 거고, 솔루션도 아예 다른 게 적용돼야 한다.


Case 1.

JTBD : 출근길에 이동하는 동안, 허기를 건강한 음식으로 달래기 위해 사과를 구매하고 싶다.

Solution : 오피스 밀집 지역 편의점 매대에서 오전 6~9시 시간대에 개별 포장된 세척 사과를 판매한다.


Case 2.

JTBD : 오늘 당장 사과잼을 만들기 위해 사과를 대량으로 구매하고 싶다.

Solution : 겉면에 흠집은 있지만 맛에 차이가 없는 못난이 사과를 벌크 판매하며, 도심 물류 거점을 활용해 1~3시간 내에 배송될 수 있도록 한다.


만약 당신이 '사과를 구매한다'는 행위 자체에만 집중한다면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은 딱 사과를 구매할 수 있기만 한 수준의 구매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이런 뭉툭한 경험은 누구에게도 어필되지 않는다. 하지만 유저가 어떤 문제에 처했는지 잘 정리한다면 AI로 유저의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주는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다.


AI가 보편적으로 공급되며 우리는 너무 급하게 생산자가 되려 한다. 우리는 생산자이기 전에 유저다. 분명 당신도 뭔가를 구매하려 할 때, 알고 싶은 정보나 더 보고 싶은 시각자료가 있을 것이다. 때로는 중간 단계가 귀찮아서 건너뛰고 싶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그런 생각들을 가볍게 흘려보내지 않고 글로 써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야 유저의 진짜 문제를 이해하고 AI로 고품질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 커버 사진 출처: UnsplashUladzislau Petrushkev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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