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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바다 Jan 03. 2019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독서치유심리학자 김영아의 힐링 책방(6)


행복, 사랑, 이별, 후회… 누구에게나 과거의 시간이 존재합니다. 저는 많은 분들에게 그 시간의 의미에 대해 묻곤 하는데요. 여러분은 어떤 순간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대부분의 중년들은 "다시 시작할 순 없을까?"라며 후회스러운 순간을 가장 많이 털어놓습니다.

우리는 왜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할까요? 오늘은 후회스러운 과거 때문에 마음이 괴로운 때 읽으면 좋은 책을 소개할까 합니다. 


과거의 그림자에 갇히다


제가〈냉정과 열정 사이〉를 추천하면 많은 분들이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우리 인생과는 조금 동떨어진 이야기 같다고 합니다. 하지만 후회와 고민을 반복하는 두 남녀의 모습은 우리 인생과 많이 닮아 있지요. 미술품 복원사인 쥰세이는 8년 전 헤어진 아오이를 잊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인간이란 잊으려 하면 할수록 잊지 못하는 동물이다.(…) 잊으려 하면 할수록 아오이는 기억 속에 머문다. 이를테면 횡단보도를 건너갈 때, 지각하지 않으려고 길을 달릴 때, 망령처럼 불쑥 모습을 드러내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얼마 전 저를 찾아온 내담자는 이 구절에서 자신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2년 전 이혼한 그분은 혼자 생활하고 있었는데 일이 바빠 가족에게 소원했던 게 원인이었습니다. "당신은 정말 이기적이야."라며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의 말에 너무 화가 나 그날로 집을 나와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후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때 왜 그랬을까요? 전 아내가 더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내를 설득해볼 마음도 이야기를 들어줄 생각도 없었어요. 그냥 대화를 거부했죠." 그분은 다시 되돌아갈 수 없으니 괴롭고 자신이 한심스럽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일에 대한 망설임


소설 속 쥰세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후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더 일에 몰두하지만 그럴수록 과거에 더 갇히게 되죠. 


나는 지금 복원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상태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손이 움직여주질 않는다. 완성된 미래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쥰세이는 자신을 생활을 복원할 수 없는 미술품에 비유합니다. 내담자 역시 아내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져 괴로울 때마다 자꾸 술에 의존하게 된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에게 아내를 만나 다시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선뜻 대답을 망설이는 그분께 저는 이 구절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잊을 수 없는 시간만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이 서글픈 일이라고만은 생각지 않는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뒤쫓는 인생이라고 쓸데없는 인생은 아니다. 나는 과거를 그냥 물처러 흘려보내선 안 된다.


지난 세월을 후회하고 술로 달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계속 후회만 하게 될 뿐이지요. 과거를 그냥 물처럼 흘려보내선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을 수 없다는 걸 우린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이 구절을 몇 번이나 다시 읽은 내담자는 아내와의 대화를 한번 고민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현재를 선택하는 의지


오랜 고민 끝에 쥰세이와 아오이도 결심을 내립니다. 마침내 서로를 만나기로 한 건데요. 


내 안에, 이만한 의지가 있었다니, 놀랍다. 아무런 주저도 없었다. 그때 이미 마음이 정해져 있었다. 아침 햇살 속에서, 나는 그저 인정하기만 하면 되었다. 피렌체에 간다는 것을. 두오모에 오른다는 것을. 그 약속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는 것을.

결국 재회한 두 사람은 꿈같은 사흘을 보냅니다. 하지만 과거의 그림자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오이는 다시 떠나고 말죠. 그렇다면 쥰세이는 어땠을까요? 그는 아오이를 찾아 떠납니다.


두려움과 불안과 망설임 때문에 모든 것을 향해 등을 돌려버리면, 새로운 기회는 싹이 잘려 다시는 이 세상에 얼굴을 내밀지 못할 것이다. 후회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현재는 점이 아니라, 영원히 계속되어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내 가슴을 때렸다. 나는 과거를 되살리지 않고, 미래를 기대하지 않고, 현재를 울려 퍼지게 해야 한다.


소설의 이 구절은 묘한 감동을 줍니다. 과거의 속박에서 벗어난 쥰세이의 선택이 우리에게 용기를 주기 때문이겠죠. 오랜 상담 끝에 그분도 용기를 냈습니다. 늦었지만 아내와 조금씩 대화를 해보려고 노력 중이라고 했습니다. 
때론 후회보다 지금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아마 그분의 선택은 지난 2년을 되돌릴 순 없겠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을 바꿔 놓지 않을까요? 우리의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라고 하지요. 선택은 한 번 뿐이고, 그 시간은 냉정하게도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후회가 밀려온다고 해서 낙담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잃어버린 시간을 발판 삼아 한발 더 나아간다면 더 나은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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