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도 있었지만, 결국엔 추억
지난 주말, 우리는 평창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이사를 하고 나서 가족끼리 제대로 여행을 간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근래에는 주변만 다니고 다른 가족들만 만났기에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자연휴양림 예약 사이트에 대기를 걸어놓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연락이 와서 바로 예약을 했다.
겨울엔 자주 캠핑을 다녔지만, 여름엔 더워서 텐트를 치기 힘들다고 하여 이번엔 처음으로 카라반 숙소를 선택했다. 오랜만에 숙소를 잡고 떠나는 여행이라 아이들도 우리 부부도 무척 들떴다. 내가 다리가 다쳤을 때도 우리 여행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어보던 첫째였다.
짐은 복잡하게 챙기지 않았다. 쿠팡으로 필요한 물건을 이것저것 시켜서 간단히 준비했다.
토요일 오전에 출발했는데, 내비게이션으로는 2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였지만 도로에 사고가 몇 군데 있어서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나는 중간에 어디라도 들러서 쉬어가고 싶었지만, 남편은 그냥 도착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결국 아이들도 지루해하고 나도 지쳐가던 차에, 원주역사박물관에 들르기로 했다.
원주역사박물관은 오래된 건물이었고 시설도 다소 낡았지만, 생각보다 볼거리가 있었다.
전시실을 천천히 둘러보고, 어린이문화실도 이용해 보았다. 처음엔 할 게 별로 없어 보였지만, 막상 아이들은 30분 넘게 집중해서 놀았다.
야외에는 전통가옥과 작은 놀이터가 있어서 아이들이 잠시 몸을 풀기에 좋았다.
무더위와 차 안의 지루함을 잊을 수 있었고, 아이들도 다시 기분을 회복했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원주에서 잠시 쉬어가며 여행의 흐름을 다시 다잡을 수 있었다.
입실 시간에 맞춰 평창 자연휴양림에 도착했지만, 막상 가보니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카라반만 덩그러니 있었고, 기대했던 계곡은 관리가 되지 않아 출입이 통제되어 있었다.
놀이터도 폐쇄되어 있었고, 산길도 막혀 있어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아이들이 곤충을 잡겠다며 챙겨 온 채집망과 통도 무용지물이 되어버렸고, 특히 첫째는 크게 실망한 듯했다.
목발을 짚고 아이들과 함께 산책도 해보았지만, 그마저도 금방 끝이 났다.
하는 수 없이 근처에 다른 계곡을 검색해 보았다.
차로 10분 거리에 작은 계곡이 하나 있어 이동했다.
다행히 그곳은 사람도 많지 않았고, 물놀이도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올챙이도 잡고 작은 물고기도 잡으며 정말 즐겁게 놀았다.
나는 기브스를 한 다리로 미끄러운 계곡을 내려가기가 무서웠지만,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 모습을 보며 안심할 수 있었다.
몸의 소중함을 다시금 절실하게 느낀 순간이기도 했다.
계곡에서 돌아온 우리는 저녁을 먹으려 화로에 불을 붙였다.
그런데 갑자기 불길이 훨훨 타오르며 제어가 되지 않았다.
남편 말로는 화로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순간이었다.
결국 카라반 안에서 낡은 프라이팬에 고기를 구워야 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배가 고팠는지 “엄청 맛있다!”며 남김없이 먹어주었다.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이 났다.
이래서 가족 여행은, 늘 예측할 수 없지만 또 그래서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다.
다음 날, 평창에서 무언가 더 보고 싶었지만 돌아가는 길도 만만치 않아 중간에 있는 경기도 광주를 들르기로 전날 계획을 세웠다.
우연히 검색으로 알게 된 곤지암반디숲에 예약을 걸고, 예약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경기도자박물관에 들렀다.
도자박물관은 예상보다 훨씬 규모가 컸고, 다양한 전시와 체험도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도자공원은 산책하기 좋고, 계절이 바뀌면 또 다른 매력을 줄 것 같았다.
봄이나 가을에 꼭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동 후 도착한 반디숲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소였다.
은퇴하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직접 운영하시는데 아이들을 위해 정말 세심하게 준비해 놓은 공간이었다.
작고 얕은 물이 흐르는 곳이었지만 아이들은 2시간 넘게 신나게 놀았다.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며 놀았던 그 시간이 계곡에서의 물놀이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어렸다면 매년 오고 싶었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이번 여행은 분명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실망도 있었고, 예상 못한 일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리 가족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평창의 푸른 산과 계곡, 우연히 들른 박물관과 반디숲, 그리고 우리가 함께여서 완성된 이 여행.
특별한 맛집도, 화려한 코스도 없었지만 그저 우리 넷이 함께 걷고, 보고, 먹고, 웃는 시간이
무척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커가는 이 시기, 앞으로도 자주 이런 가족의 기억을 쌓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