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특별하게 바라보는 시선,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나면 한 학기에 한 번씩 정기 상담이 있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작년부터 1학기만 상담을 진행하기로 했다. 대부분 4월에 진행되다 보니, 선생님 입장에서는 아이들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담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첫째 때부터 방학 전에 감사 인사와 함께 혹시 가정에서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있는지를 여쭙곤 했다. 둘째는 학교생활에 대해 말이 없는 편이라 더욱 궁금했고, 1학기 상담 때 영재검사 권유를 받은 것도 있어 확인하고 싶었다.
7월 중순, 선생님들의 일정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을 것 같아 하이톡으로 연락을 드렸다. 여전히 영재검사가 필요한지, 가정에서 더 도와줘야 할 점은 없는지를 여쭈었다. 선생님께서는 바로 답을 주시기보다는 며칠 시간을 달라고 하셨다. 신중하신 분이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다 방학식이 다가오도록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고, 나는 방학 인사와 함께 다시 연락을 드렸다. 그제야 오후에 통화 가능하냐는 메시지가 왔다. 공부방 수업이 있어 망설여졌지만 아이에 대해 듣고 싶은 마음이 커서 괜찮다고 답을 드렸다. 이후 오후 내내, 수업 중 전화가 오면 어쩌나 생각하며 기다렸지만, 결국 퇴근 시간까지 전화는 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서운한 마음에 ‘어제 오후 내내 기다렸다’는 메시지를 드리자 그제야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차로 이동 중 전화가 왔다. 솔직히 이 부분에서 이미 기분이 상했다. 약속한 전화를 하지 않은 것, 그리고 이동 중이라는 환경에서 상담을 이어간 것이 성의 없어 보였다.
통화가 시작되자 선생님은 아이가 학기 초에 ‘반짝반짝 빛났었다’는 말을 하셨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무난하게 지내고 있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공교육의 구조 속에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씀을 들으며, 선생님께서 우리 아이를 잘 모르시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 둘째는 친하면 활발해지지만 평소 자신의 생각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향이다. 꼭 알고 있는 걸 말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마다 표현 방식은 다르고, 말보다는 글이나 행동으로 더 잘 드러내는 아이도 있다. 그런데 선생님은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고 아이가 평범해졌다고 단정 지으셨다. 게다가, 그 판단은 내가 톡을 드린 후 일주일 남짓 우리 아이를 조금 더 관찰한 결과였다. 한 학기 내내 담임이셨던 분이 그런 식의 판단을 내린 것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선생님은 ‘자신이 우리 아이에게 좋은 선생님이 아닌 것 같다’는 말씀도 하셨다. 다른 아이들은 질문을 하거나 다 끝냈다고 자주 표현하는데, 우리 아이는 그렇지 않다고 하셨다. 그 말 역시 성향을 고려하지 않고 표현 여부만으로 아이를 평가하시는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물론 우리 아이가 눈에 띄는 영재는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언어 능력이 빠르고, 과제에 대한 집착력도 있어 자기가 하겠다고 마음먹은 일은 끝까지 해내는 아이다. 특히 학교 다녀오면 자주 “학교 가기 싫다”, “공부가 너무 많다”, “손이 아플 정도로 많이 쓴다”는 말을 했다. 첫째가 1학년 때보다 워크시트를 훨씬 많이 받아왔고, 그런 양적인 학습이 과연 아이의 글쓰기나 말로 하는 표현력 향상에 도움이 되었을지 의문이 들었다.
내가 바라는 건 모든 아이들의 관리를 위한 수업이 아니라, 아이의 성향을 조금만 이해하고 존중해 주는 시선이었다. 선생님께서 자주 기술적이고 단순한 워크시트를 주셨고, 표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이가 ‘보통이 되었다’고 단정 지으셨다는 점이 참 씁쓸했다. 마지막엔 영재검사는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하셨지만, 이미 상담을 통해 받은 인상은 선뜻 마음이 가지 않게 만들었다.
나는 내 아이가 영재든 아니든 상관없다. 똑똑하다고 해서 나의 육아방식이나 교육관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계속 읽게 해 주고, 예체능도 꾸준히 접하게 하며, 아이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응원하고 지원하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엄마의 모습이다.
선생님은 단지 ‘똑똑해 보인다’는 이유로 학기 초 상담에서는 영재검사를 권하셨고, 말로 자신의 지식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평범해졌다고 섣불리 말씀하셨다. 내가 초등교사가 아니기에, 한 반의 24명 개개인의 성향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사랑하는 아이가 어떤 모습인지 선생님이 조금은 이해해 주시길 바랐다.
며칠이 지나도록 마음에 계속 남아 있는 이 찝찝한 감정은, 결국 내가 아이를 더 깊이 들여다보고 아껴줘야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공부방에 오는 아이들을 지도할 때에도, 아이의 성향을 먼저 이해하고, 그 눈높이에 맞춰 사랑으로 대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