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의 심리치료, 두 번째 이야기

기질을 이해하니 보이기 시작한 것들

by 포비포노

위클래스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우리는 종합심리발달검사를 하게 되었었다.
10%만 자부담이라 부담이 적었고, 아이에게 꼭 필요한 기회라고 생각했었다.

검사 양은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엄마, 아빠가 체크해야 하는 문항만 거의 500문항이었고, 문장완성검사도 양이 꽤 되었었다.
그 과정을 하면서 나는 늘 잘하고만 있다고 여겼던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고,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던 날, 남편이 마침 휴무라 함께 의사 선생님을 만나러 갔었다.
상담 선생님은 아빠의 영향에 대해 여러 번 언급했지만, 의사 선생님은 전혀 다른 시선으로 우리 아이를 바라보고 계셨다.


의사 선생님은 첫째가 태어날 때부터 ‘예민하고 어려운 기질’을 가지고 있었던 아이라고 말씀하셨다.
쉬운 기질의 아이들은 누가 키워도 무난하게 자라지만, 어려운 기질의 아이들은 정말 육아서에서 말하는 방식 그대로 키워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공부 양을 줄여주면 자존감이 더 단단해진다며 본인 아들의 예시도 들려주셨다.
딸은 쉬웠지만 아들은 어려워서 4학년 때까지 하루 5문제 이상은 절대 풀리지 않게 했었다고 말이다.


“부모의 해석을 넣지 마세요.”


나는 의사 선생님께 아이 이야기를 털어놓았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혼자 구석에 있었다고 하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가 말하는 그대로만 들어주세요.
절대 부모의 해석을 섞지 마세요.”


우리는 흔히 “공부 잘하지 않아도 돼”라는 말을 위로라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부모의 해석이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속 깊은 곳이 뜨끔했었다.


또한 요즘 부모들은 아이의 눈을 제대로 바라보며 듣지 않는다고도 하셨다.
핸드폰을 만지거나 집안일을 하면서 건성으로 듣곤 한다고.

그 지적 속에서 나 역시 제 모습을 보게 되었고, 스스로 많은 반성을 하게 되었었다.

나는 아이가 왜 그런지, 무엇이 문제인지 추측만 하고 있었고
정작 아이의 감정 그 자체를 인정해 주는 일은 잘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검사지를 읽으며 처음 마주한 ‘노란 표시’


검사 결과지를 집에서 찬찬히 읽어보는데 노란색으로 강조된 부분이 있었다.
문장완성검사에서 드러난 나의 모습이었다.


“아이의 감정을 억제했을 수 있다.”


나는 맡은 역할에 충실하려는 성향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는 편이었다.
반면 남편은 부정적 감정을 강하게 표현하는 성향이 있었고 그 두 가지가 함께 작용하면서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운 환경이 되었을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 문장을 읽는데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었다.
육아서도 많이 읽고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감정 그 자체를 인정하는 것’을 놓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그날 이후부터 아이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 해석도, 조언도, 해결책도 붙이지 않고
“그때 속상했겠다.”
그 감정 한 가지만 함께 짚어주는 방식으로 바꾸게 되었었다.


의사 선생님이 말했던 것처럼
사회 속에서 겪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아이는 스스로 배워갈 수 있는 존재니까.


아이는 생각보다 빨리 좋아지고 있었다


10회도 되지 않았는데 아이는 눈에 띄게 안정되어 갔다.
언제 마지막으로 울거나 짜증 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며칠 전 상담 선생님도 처음에는 보드게임만 해도 숨이 탁 막혔는데 이제는 아이와 있는 시간이 편해졌다고 하셨다.


우리 첫째는 밖에서는 ‘모범생’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큰 문제는 없었던 아이였다.
단지, 엄마인 나만 알 수 있는 힘들어하는 모습이 느껴졌고 우리가 그것을 도와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때 결정한 선택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고.




위클래스 예산이 끝나 이제는 자부담으로 진행해야 하지만 우리는 꾸준히 이어가 볼 생각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마음도 몸도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 아이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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