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러 간 여행에서도 쉬지 못한 1인 원장의 마음

1년 차 원장의 첫가을과 겨울 사이에서

by 포비포노

지난주 우리는 4박 5일로 사이판 여행을 다녀왔다.
공부방을 오픈하고 1년, 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올인클루시브 리조트를 예약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고 쉬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떠나보니, 쉬는 여행은 아니었다.
1인 원장으로 모든 걸 결정하고 책임져온 시간은 여행지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몸은 쉬고 있는데 마음은 계속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사실이 여행이 끝나갈수록 조금은 슬프게 느껴졌다.




11월에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해야 할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겨울방학 특강, 설명회, 크리스마스 파티까지.
카페에 혼자 앉아 하나씩 정리하고 계획하며 ‘그래, 하나하나 하면 되지’ 하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육아와 살림을 병행하며 공부방 수업을 하고 그 외의 모든 일까지 혼자 감당하는 일상이
가끔은 버겁다.
특히 1년 차 원장이 처음 겪는 가을과 겨울은 생각보다 더 무거웠다.


이제 1년이 되어가니 학원 이동 시즌에 맞춰 조금 더 알려지고 문의도 오고
내가 목표한 인원도 채워질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했다.


사이판 여행 일정이 걸렸지만 여행 이틀 뒤로 설명회 날짜를 잡고 카드뉴스를 만들고
블로그, 인스타, 당근까지 홍보를 올렸다.

일주일 후에는 겨울방학 특강도 올렸다.

우리는 원서 위주의 수업을 하고 있으니 두 달이나 되는 겨울방학 동안 영어책을 읽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분명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여름방학 특강 때도 문의가 있었고 특강을 계기로 정규 등록을 한 아이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신청자는 한 명도 없었다.
설명회 신청도 딱 한 분.
그걸로는 부족했다.


주변 원장님들께 조언을 구했고 아파트 게시판 홍보가 중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비용이 부담됐지만 여행 전날까지 주변 아파트 게시판을 붙였다.


그래도 변화는 없었다. 여행 내내 네이버폼을 수시로 열어봤다.

마음이 답답해 나비프로젝트 팀장님께까지 카카오톡으로 문의를 드렸다.
“최선을 다해 홍보해 보세요.”
맘카페 유료 홍보도 추천해 주셨다.


다들 내려놓고 즐기라고 했지만 그게 참 쉽지 않았다.
결국 여행이 끝날 때까지 신청자는 없었다.

설명회 신청해 주셨던 한 분도 연락을 드리니 날짜가 안 된다며 개별로 방문하시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여행 후 피곤한 몸으로 설명회를 하지 않아도 된 건 오히려 다행이었다.


화요일 밤에 집에 도착하고 수요일 오전 짐을 정리하는데 갑자기 허무함과 우울함이 밀려왔다.

너무 답답해서 동기 원장님께 전화를 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함께 버텨주는 원장님들과 옆에서 묵묵히 위로해 주는 남편이 없다면

1인 원장의 삶은 참 견디기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뭐가 부족한 걸까.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변화가 없을까.
역시 이 동네는 아닌 걸까. 생각은 늘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다 문득 ‘이 정도까지 키운 것도 대단하지’라는 마음이 들었다.
내 능력만큼 들어오겠지. 늘 그렇게 마음을 다스려왔다.


수요일 하루는 마음껏 우울해하고 ‘이제 신청은 없나 보다’ 하고 내려놓았다.
설명회도 안 했고 겨울방학에는 오전에 아이들과 박물관이나 다니며 시간을 보내야지 생각하니
이상하게도 목요일부터 마음이 편해졌다.


아직은 내 아이들과 더 시간을 보내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많은 인원이 오면 내가 감당하기 어려우니 능력에 맞게 주어지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도 11월에 신규생 2명, 12월에 1명.

아주 못하고 있는 건 아닐 거라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오늘도 그렇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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