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그만둘 거였다. 내 마음을 너무 뺏기지 말자.
“선생님, 저 진짜 오늘까지만 다닐 거예요.”
교실로 들어오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를 반가워할 선생님이 있을까. 몇 달 전에도 같은 말을 했던 아이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수업 내내 마음이 무거워졌다.
진짜 그만두면 어쩌지? 내가 뭘 더 해줘야 하지? 별별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몇 달 전까지는 고민이었다. 아이를 놓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고, 솔직히 말하면 한 명의 원생도 아쉬웠다.
하지만 오늘, 나는 그 아이에게 “그럼 이제 쉬어도 괜찮아”라고 말했다. 더 이상 이 아이로 인해 나의 에너지가 계속 소모되는 것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아이는 6개월 전, 알파벳도 모른 채 우리 공부방에 왔다. 알파벳부터 하나하나 함께 배웠고, 단모음과 파닉스를 병행했지만 계속 헷갈려했다. 알파벳 음가를 익히는 데만 거의 5개월이 걸렸고, 물어볼 때마다 대답은 늘 어려워했다. 말 그대로 ‘문자가 느린 아이’였다.
나는 아이의 속도에 맞추고 싶었다. 모르면 괜찮다고, 계속 반복해도 된다고, 선생님이 도와줄 거라고 수없이 말했다. 하지만 아이는 숙제를 제대로 해온 적이 거의 없었고, 오는 것 자체를 즐거워하지도 않았다.
초반에는 독서 기록장에 책 제목을 쓰는 것조차 힘들어하며 “여기 다니기 싫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타협을 했다. 네가 두 개 쓰면 선생님이 세 개 써줄게. 그렇게 한동안 내가 대신 써주다가, 한 달 전부터는 아이가 스스로 모든 제목을 써 내려갔다. 그 모습이 기특해서 아, 그래도 포기하지 않길 잘했구나 싶었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다시 “그만둘 거다”라는 말이 시작됐다. 영어뿐 아니라 모든 학습이 힘겨워 보였다. 오기 전마다 엄마에게 조르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나 책 읽기 싫어.”
“집에 가면 바로 게임해도 되지?”
이틀 전에는 숙제를 왜 안 했냐고 묻자, 집에서 할 게 많았다며 나에게 짜증을 냈다. 나는 어른에게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했고, 힘든 점이 있으면 엄마에게 대신 이야기해 주겠다고까지 했다. 그만큼 신경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또다시 20분이나 늦게 오며 “진짜 오늘까지만 다닐 거예요”라고 말하는 순간, 나도 한계에 다다랐다는 걸 느꼈다. 결국 어머님께도 말씀드렸다. 지금은 조금 쉬는 게 필요할 것 같다고, 남은 횟수는 쉬었다가 다시 오셔도 된다고.
몇 달 전 이 아이에 대한 고민을 다른 원장님께 나눈 적이 있다. 그 원장님은 내게 물었다.
“왜 계속 데리고 있어요?”
파닉스가 안 되는 아이는 너무 힘들어서 받지 않는다고, 독서 기반 수업은 특히 아이 성향과 맞아야 한다고 했다. 아이 한 명으로 에너지를 다 쓰기보다 다른 아이들에게 더 집중하는 게 맞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때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 한편이 걸렸다.
이 아이는 독서기록장에 숫자 501을 쓰면서 “이건 어떻게 써요?”라고 묻던 아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본이 충분히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영어든 무엇이든 따라가려니 아이가 얼마나 힘들고 스트레스였을까 싶다.
그런데 상담 전화를 드렸을 때, 어머님은 스피킹 때문에 내년에 화상영어를 고민 중이라고 하셨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답답함이 남았다. 지금 중요한 건 화상영어가 아닌데… 그때도 인풋이 쌓인 후, 4~5학년쯤 시작하라고 권했지만 과연 전달이 되었을까 싶다.
6개월 동안 음가와 결합을 반복하면서도 “왜 나한테 자꾸 어려운 것만 물어보냐”며 화를 내던 아이. 1학년이 되어 계속되는 학습 상황 자체가 아이에게는 큰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얼굴을 찡그리는 틱도 있었다.
아이마다 발달 속도는 다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몇 학년이면 무엇을 끝내야 한다’는 기준으로 부모를 불안하게 만들고, 그 불안이 다시 아이를 몰아붙인다. 정말 중요한 건 지금 내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조금 천천히 가도 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이 힘든지를 부모가 알고 판단하는 일이다.
속도가 느리다고 더 어려운 환경으로 몰아넣기보다는,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는 게 먼저일지도 모른다. 아이가 조른다고 무조건 달래거나 피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왜 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해야 할 일은 하게 하는 것, 그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집에서 규칙이 없는 아이는 밖에서도 규칙을 지키기 어렵다. 가정 안에서 기본을 배우지 못하면, 밖에서 만나는 어른에게도 경계가 흐려질 수 있다. 어렵지만, 가정 안의 기본을 지키는 것이 결국 아이를 바르게 성장시키는 길이다.
‘그만둘 아이는 어차피 그만둔다’는 원장님들의 말이 오늘에서야 와닿았다. 다시 돌아와 잘 다닌다면 고마운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너무 내 마음을 다 빼앗기지는 말자고 다짐해 본다.
오늘은 아이를 보내며, 나 자신도 조금 내려놓는 법을 배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