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마다 다른 속도로, 다른 강점으로 자란다

아이를 평균에 맞추지 않기로 했다

by 포비포노

아이를 키우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나는 점점 ‘잘 키운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최근 읽고 있는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에서 유독 오래 마음에 남은 문장이 있었다.


최고의 감독이 이끌기 때문에 최고의 선수가 된다. (p.211)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도 강하게 다가왔다.


먼저 병사 개개인이 갖고 있는 장점과 약점을 알아야 한다.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어떤 상황에서 자신의 강점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p.212)


이 문장을 읽으며 아이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고명환의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에서도 비슷한 메시지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강점혁명이란 잘하는 것을 더 잘하게 만들자는 말이다. (p.110)
내가 잘하는 분야에서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을 분출하라.
평균에 맞추지 말고 튀는 사람이 되자. (p.112)


두 책을 나란히 읽으며 확신에 가까운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공부방에 오는 아이들까지,
나는 각자의 장점과 약점을 더 잘 알고 그에 맞게 키워주어야겠다고.



1. 아이마다 속도는 다르다


첫째가 어린이집을 다닐 때 소근육이 약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래서 클레이를 해보라, 종이접기를 시켜보라는 조언도 들었다.

엄마는 아이의 장점보다 부족한 점이 먼저 보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클레이도 사고, 워크북도 사봤다. 하지만 아이가 즐기지 않았다.

조금 하다 말게 되었고 나는 또다시 걱정을 시작했다.
‘내가 제대로 못 해줘서 이 아이가 계속 느리면 어떡하지.’


예비 1학년이 되었을 때는 한글이 느리다는 이유로 또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이와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하기도 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걱정이 꼭 필요했던 건 아니었다.


소근육도, 그림도, 한글도 조금 느릴 수는 있지만
때가 되면 결국 다 하게 되어 있었다.


우리나라는 몇 살에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떼야한다는 기준이 마치 평균처럼 존재한다.
그 평균이 부모를 불안하게 만든다.


하지만 조금 늦으면 어떠한가.
그 아이가 준비가 되었을 때 자기 속도로 가면 된다.


예비 초등 4학년을 앞둔 지금, 우리 아이는 전혀 뒤처져 있지 않다.
오히려 1학년 때보다 친구들과의 간격을 차분히 좁혀가고 있다.


아이마다 속도가 다름을 인정하고 그에 맞게 해주는 것이
어른이 해야 할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 강점을 더 강하게 키워주자


어디선가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아이를 만능으로 키우느라 힘들다는 말이었다.

초등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보면 그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매일 느낀다.


컴퓨터, 한자, 피아노 같은 악기 하나, 운동 하나, 독서논술,
그리고 수학과 영어는 기본처럼 여겨진다.


방과 후 수업에 늘봄, 돌봄까지 더해지면 아이들은 쉴 틈이 없다.

맞벌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부모의 욕심 역시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내 아이가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길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은 결국 사회의 분위기가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명환의 말처럼 우리는 아이를 평균에 맞추기보다 강점으로 키워야 하지 않을까.


잘하는 것을 더 잘하게 만들자.


모든 것을 잘할 필요는 없다.
부족한 부분은 부족한 대로 두어도 된다.

결국 모든 것을 조금씩 잘하는 아이보다 한 가지를 제대로 좋아하고 잘하는 아이가
더 단단하게 자란다고 믿는다.


3. 결국 고민해야 하는 건 부모와 교사다


아이를 키우며 나는 육아서와 교육서를 꾸준히 읽어왔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는 내가 비교적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기준으로 간다는 말을 해주기도 했다.


물론 잘하는 아이들이 부럽다.
더 열심히, 더 꼼꼼히 하는 부모들을 보면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나 역시 부모로서, 교사로서 나만의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진심으로 대하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고 칭찬해 주는 것.


공부방에 오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때로는 부모님보다 더 많이
그 아이를 생각하고 고민한다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말할 수 있다.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것처럼 최고의 감독이 되기 위한 길을
나는 지금도 가고 있는 중인 것 같다.


그 길이 쉽지는 않겠지만 아이 한 명 한 명이 힘들지 않게, 자기답게 자란다면
그보다 큰 보상이 있을까.




육아에도, 교육에도 정답은 없다.

엄마도 처음이고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도 처음이다.

아이의 속도에 맞춰 가고 아이가 잘하는 것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돕고
큰 방향만 잃지 않는다면 그렇게 흔들릴 일은 많지 않다.


무엇보다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아이에게 관심이 있고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다.


오늘도 나는 아이들을 떠올리며 최고의 감독이 되기 위한 연습을
조용히 계속하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공부방을 운영하며 손자병법으로 나를 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