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방학 엄마의 체력 보고서
설 전날 저녁이었다.
밥을 먹는데 왼쪽 코가 욱신거렸다. 콕콕 찌르듯 아팠다.
‘뾰루지가 나려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틀쯤 지나자 열이 났다. 몸에 기운이 없었다.
거울을 보니 코끝이 빨갛게 부어 있었다. 진물이 굳어 딱지가 되었고, 나는 그걸 자꾸 떼어냈다. 상처는 더 도드라졌다. 하지만 설 연휴라 병원을 갈 수 없었다.
연휴 마지막 날,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무심코 턱 아래를 만졌는데 멍울이 잡혔다. 누르면 아팠다. 그때 ‘아, 이거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염증이 번진 것 같았다.
코는 복코처럼 커졌다. 코 주변 뺨까지 딱딱하게 붓기 시작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연휴가 끝나면 제주도로 여행을 가기로 되어 있었다. 겨울방학 두 달을 잘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무리였다는 생각이 스쳤다.
연휴 다음 날, 시댁인 공주에서 올라가 바로 수업을 해야 했다. 오전에 급히 병원을 찾았다. 검색을 해보니 턱 아래 림프절 멍울이 만져지면 이비인후과를 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비인후과로 향했다.
의사는 나를 보더니 정확히 모르겠다고 했다. 대상포진 같기도 하다고 했다. 일단 항생제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았다.
그 약이 문제였다.
집에 와서 귤 몇 개를 먹었는데 수업 도중 다 토해버렸다. 속이 울렁거렸고 온몸에 힘이 빠졌다. 집 근처 내과에 갔더니 소염제가 너무 강하다며 그것만 빼고 먹으라고 했다. 그날 저녁에 먹은 것도 모두 토했다. 그대로 누워 괴로워했다.
다음 날 새벽은 제주도 여행 날이었다. 짐도 싸지 못한 상태였다. 남편이 아이들 저녁을 챙기고 빨래까지 정리해 주었다. 나는 새벽에 겨우 일어나 짐을 쌌다. 속은 계속 울렁거렸다. 그렇게 제주도로 향했다.
코에서는 진물이 계속 났다. 상처는 흉하게 남아 있었다.
아이들과 보낸 겨울방학 두 달이 길긴 길었던 모양이었다.
남편이 교대근무를 하면서도 많이 도와주었지만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오전에는 박물관이며 체험학습을 다녔고, 세끼를 챙겼고, 아이들 하루 일과를 관리했다.
공부방 수업도 했다. 나비프로젝트 미션도 진행했다. 욕심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보다 운동을 덜 한 것도 사실이었다.
몸은 결국 정직하게 반응했다.
제주도에서 돌아와 피부과에 갔다. 염증이라며 무조건 푹 쉬어야 한다고 했다. 다시 항생제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았다. 이번 약은 괜찮았다. 병원을 제대로 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달았다.
그런데도 2주가 지나도록 낫지 않았다.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시댁에 며칠 다녀왔다. 나를 쉬게 해 주기 위해서였다. 고마웠다.
그런데 이상했다.
쉬어도 피곤했다. 자고 일어나도 근육통이 가시지 않았다. 몇 주를 그렇게 체력이 바닥난 상태로 지냈다.
우울해졌다.
부지런한 내가 무기력해졌다. 아무것도 할 의욕이 없었다. 아프니 괜히 주변 사람에게 서운한 마음도 생겼다. ‘나는 이렇게까지 했는데’ 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그제야 인정했다.
체력이 바닥이었다.
체력이 안 되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열심도, 계획도, 의지도 소용이 없었다. 몸이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지속할 수 없다는 걸 배웠다.
아이들이 개학하면 다시 운동을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어제는 용기 내어 비타민 주사도 맞았다.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새벽에 글을 쓸 여유가 생겼다.
절대로 무리하면 안 되었다.
운동을 해서 체력을 길러야 했다. 그래야 내가 하고 싶은 일도 하고, 가족도 돌보고, 나도 웃을 수 있었다.
적절한 휴식이 꼭 필요했다.
아프면 제대로 된 병원을 가야 했다.
이번 염증은 내 몸이 보낸 경고장이었다.
나는 그 경고를, 이제는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